사람들 앞에 벌거벗고 선 기분이었다. 이제부터 ‘넌 혼자야’라는 판결문을 거머쥐고 법원 문을 나설 때, 사람들의 시선은 돋보기 해 모으듯 나를 향했고 간혹 수군거림까지 환청으로 귀에 박혔다. 이미 바닥에 떨어진 자존감은 주위에서 갖은 처방을 들이댈수록 울컥울컥 부아로 나타났다. 생채기는 이대로 두면 더 곪을 것 같았다. 만원버스에서 갑자기 가슴을 조여 오는 증세가 병이란 것을 알았을 때 ‘도피’를 감행했다.

큰 저수지를 품에 안은, 꽤 높은 농장을 도피처로 정한 것이 그 무렵이었다. 세상과 완전 차단된 곳은 아니지만 애써 사람을 청하지 않으면 그나마 ‘관계’에서 오는 복잡함은 덜만 했다. 때맞춰 쌀밥도 거기로 들어왔다.

녀석은 아직 내 손이 필요한, 갓 젖 뗀 애송이였다. 맑고 투명한 눈망울을 가진 순백의 털복숭이, 그 뽀송한 솜털 때문에 ‘쌀밥’이라 불렀다. 나는 아직도 동물에게 애완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마뜩잖다. 하물며 반려라는 단어에는 오죽했으랴. 당연히 처음엔 쌀밥도 내 손을 탄 강아지는 아니었다. 쌀밥은 그저 집지키는 동물일 뿐이었다.

해가 지면 종일 채워뒀던 쌀밥의 목줄을 풀었다. 밤이나마 ‘자유’를 주겠다는 배려보다 혹시 있을지 모를 산짐승의 해코지를 쌀밥에 기대어 모면하겠다는 얄팍한 이기심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알아듣든 말든 녀석에게 혼잣말을 해대면 가슴이 한결 가벼워지기도 했다.

그날은 블루문의 밤이었다. 저수지 너머로 달이 오르고, 하나뿐인 창을 통해 음기가 그대로 방으로 스며들었다. 간혹 윗마을을 찾아 올라오는 자동차의 거친 엔진소리가 달의 기운을 잠시 잊게 해줄 뿐. 양력 한 달에 두 번 뜬다는 보름달을 두고 세상은 이런저런 의미를 붙여 웅성거렸지만 고즈넉한 산마을은 평소와 다름없이 괴괴할 뿐이었다.

블루문은 유난히 크고 음산했다. 그 달빛을 밟은 채 저수지 끝자락에 세워진 소나무 정자 옆에서 마지막 방광을 비울 때였다. 줄이 풀려 행방을 몰랐던 쌀밥이 목젖이 터져라 짖으며 쏜살같이 정자 쪽으로 달려왔다. 쌀밥의 서너 걸음 앞에는 같은 속력의 시꺼먼 괴물 하나가 정자를 향해 쫓기고 있었다. 멧돼지였다.

급랭한 얼음처럼 얼어붙은 나에게 멧돼지가 도달할 찰나, 쌀밥이 멧돼지 뒷다리를 물고 넘어졌다. 달빛 아래에서도 흙이 튀고 먼지가 회오리처럼 몰아치는 것이 보였다. 쌀밥보다 배 이상 덩치 큰 멧돼지는 다리를 물린 채 괴성과 함께 정자 앞을 뒹굴었다. 그 덕분에 얼음공주의 마법에서 풀린 나는 잽싸게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돌아보면 야박한 처사였지만, 오직 그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이런 일을 대비해 설치해 둔 농장 비상등을 켤 엄두도 내지 못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멧돼지의 꽥꽥거리는 소리가 잦아들고 농장은 다시 밤의 정적 속으로 빠져들었다. 바깥 상황이 궁금하기는 했지만, 끝내 창밖을 내다보지 못했다. 밤새 이불 속에서 오한으로 떨었을 뿐.

여느 때와 같이, 아침은 왔고 나는 어제의 비겁함을 감추며 쌀밥의 안위를 살폈다. 녀석은 간밤의 흔적만 정자 앞에 남긴 채 평소처럼 우리 속에 누워 있었다. 몸의 반쯤은 안에 들어 있고 머리는 비죽하게 나온 채로. 그러나 쌀밥은 이미 어제의 쌀밥이 아니었다. 주둥이 주변은 벌겋게 피로 물들었고 옆구리는 군데군데 찢겨 말라붙은 피로 검은 빛을 띠었다. 그 모습은 자칫 내가 겪었을지도 모를 참상이었다. 그 와중에도 쌀밥은 겨우 고개를 들어 나의 등장에 반가운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기별을 듣고 아랫동네 사는 매형이 올라왔다. 매형은 개에 관한 한 전문가였다. 쌀밥의 상처를 살펴본 후 여기저기 소독을 하고 상처를 꿰매곤 연고를 발라주었다. 그게 치료의 끝이었다.

“개안타. 근데 안 죽은 게 다행이다. 혼자서 멧돼지랑 싸우다니...”

쌀밥은 진돗개 백구의 잡종이다. 여러 피가 섞여, 모양은 진돗개지만 족보는 흔한 똥개에 가까웠다. 그날 쌀밥은 위험에 처한 나를 위해 제 몸속에 눈곱만큼 남은 진돗개의 본능을 혼신으로 끄집어냈던 것이다. 첫 주인을 평생 잊지 않는다는 진돗개 앞에, 가족이라는 세상 가장 귀한 매듭조차 가차 없이 끊어낸 나의 이기심이 부끄럽기만 했다.

매형의 처방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쌀밥은 다시 꼬리를 흔들며 평상을 되찾았다. 멧돼지가 남긴 상처도 아물어갔다. 고작 세치 혀로 남을 해치고,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 채 남의 눈의 티끌 탓만 했던 나에게, 쌀밥은 ‘더불어 사는’ 법을 몸으로 보여 주었다. 하지만 낮에도 목줄을 풀어주고 목욕으로 순백의 털을 찾게 해준 것 말고는 딱히 해준 건 없었다. 그래도 쌀밥은 옷에 붙은 도깨비바늘처럼 종일 내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목줄에서 해방되니 쌀밥은 동네 수캐들과 종종 사랑에 빠졌다. 검은 개와는 ‘탄밥’이란 애비 닮은 까만 새끼를, 누렁개와는 ‘보리밥’을 선물해 주었다. 쌀밥은 크든 작든, 희든 검든 품에 든 새끼들과 농장을 누비며 곳곳에 생기를 불어 넣었고, 그 덕분인지 내 마음병도 빠르게 호전되었다. 나는 다시 세상과 싸워 볼 힘을 얻어 도시로 내려왔지만, 쌀밥은 여전히 농장을 지키며 터주노릇을 다했다.

열두 살. 쌀밥이 짧은 생을 마친 날, 나는 기회가 오면 ‘쌀밥전傳’을 글로 남기리라 다짐했다. 그것이 내가 녀석에게 바치는 유일한 진혼곡이었기 때문이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