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푸치노 사랑법 / 정경희
사랑하는 연인들은 서로에게 편안하게 담겨 있고, 서로 부드럽게 섞여 있다. 그들은 부풀어 있다. 그들은 거품을 하얗게 뒤범벅한 카푸치노처럼 서로 해독(解讀)되지 않는 블랙박스일 때도 있다. 그래서 더 묘미가 있는 걸까. 서로의 사랑이 언제 제 맛과 향기를 잃을지 그들은 모른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바람이 그들의 사랑을 확인하고 맛볼 뿐이다.
커피 중에 내게 인상이 강렬한 커피는 카푸치노이다. 비엔나커피는 왈츠처럼 부드럽게 녹을 것 같고, 헤이즐넛은 향기가 좋지만 커피 맛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에스프레소라는 진한 이탈리아식 커피에는 낭만이 오롯이 들어 있다. 조각상처럼 잘생긴 남자가 베네치아에서 마실 듯한 매력적인 커피다. 그러나 발음이나 그 향기나 맛이 카푸치노만큼 끌리는 것은 아니다.
팔당댐 가는 길, 벽에는 하얀 연서들이 불타고 있다. “민정 영아 사랑해”, “21살 되던 해, 9월 난 널 영원히 사랑해 내 맘 변치 않아”, “나의 영원한 광희”,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터질 것 같아 무엇으로 꼭 남겨야만 될 것 같은 처음 마음이 깊게 새겨졌다. 그러나 돌에 새긴 글자가 희미하게 남아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처음 마음을 서로 단단하게 간직한다는 게 쉬운 일일까. 그 난무하는 사랑의 말 옆에 “용서해”라는 말이 유난히 눈에 띈다. 처음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강은 진즉 알고 있었다는 듯 황톳빛 말들을 연신 콸콸 토해 낸다.
사랑은 그렇게 온갖 수사가 따르는 말로 확인하고 요란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카푸치노와 닮았다. 카푸치노라는 명칭은 카푸치노 수도회의 수사들이 뾰족한 두건으로 머리를 가린 것처럼 이 커피도 우유 거품으로 커피를 완전히 덮어 버렸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사랑은 은밀하고 은은하게 향기를 풍겨야 하지 않을까.
카푸치노 사랑을 해 봐도 좋을 듯싶다.
먼저 에스프레소 한 잔의 뜨거운 열정과 반 잔을 넘지 않은 우유의 부드러움을 준비한 다음, 가슴 두근대는 막대기로 힘껏 젓기. 이내 몽글몽글 사랑이 피어오르고 우유의 거품 속에는 사랑하는 두 마음이 넘쳐흐르는데, 이때 주의할 점은 달콤한 유혹에 취하지는 말 것. 그리고 가끔씩 우유 대신 휘핑크림을 얹어 속에 슬몃 속내를 감출 것. 그 위에 톡톡 쏘는 계피 한 숟갈을 뿌리고 플라멩코 리듬에 맞추어 지중해 포도주 빛 강렬한 눈빛을 교환하기.
그러나 넘칠 듯 말 듯.
는개 오는 봄날에는 비에 젖은 커피 향처럼 은근하게, 긴 머리카락을 만지는 여유로움으로, 속눈썹 가벼운 떨림으로 그의 가슴에 천천히 녹아들고…….
돌아설 때는 ‘카 ․ 푸 ․ 치’ 울림 없는 파열음처럼 허공에 마음을 흩뿌릴 것. 될 수 있는 한 여운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그리하여 아픔도 적게. 그래도 간간이 ‘노’라는 울림이 남는다면 <백학> 노래 같은 낮은 배경 속에 마음을 맡길 것, 그리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 창가에 앉아 <Rain and tears>를 들을 것. 카푸치노 거품 속에 피어나는 그리움만 하나씩 꺼내 읽도록.
사랑은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