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혈胸穴 / 김정화

 

 

과연 고승의 풍모답다. 결가부좌한 다리 위로 가지런히 손을 포개고 정면을 응시하는 그윽한 눈매, 곧고 오뚝한 코 아래 꼭 다문 홀쭉한 입술, 양옆으로 돋은 볼록한 광대에 연륜이 느껴진다. 이마의 세 가닥 주름과 입가로 내려오는 팔자주름, 그리고 툭 튀어나온 울대뼈와 앙상한 쇄골 밑으로 뼈마디가 보이는 손등 탓인지 노승은 더욱 수척해 보인다.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려시대 승상인 건칠희랑대사좌상이다. 이번에 해인사 성보박물관 수장고에 모셔졌던 이 초상을 옮겨와 박물관 특별기획전을 연다고 하기에 한걸음에 달려가 친견하였다. 곳곳에 파이거나 눌린 자국이 있고 색이 긁히거나 조각이 떨어져 나갔지만, 한평생 오롯한 정진으로 일관한 수행자의 모습은 변함없다. 대부분의 불상이 팽팽한 볼살과 함께 단단한 어깨와 넓은 무릎에서 균형 잡힌 비례를 보이는 것과는 달리 희랑대사상은 전체적으로 왜단하고 마른 체격이다. 꼿꼿하고 근엄하나 부드러운 인품과 따뜻한 인간애가 온몸에서 풍겨 나오는 듯하다.

희랑대사가 누구인가. 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으로 알려졌다. 후삼국시대에 합천은 고려와 후백제가 격전을 벌이던 곳으로써 그가 승군을 이끌고 고려 왕건을 도와 후백제 세력을 격퇴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화엄학의 대가로도 명성을 얻었으니 최치원도 그의 화엄경 강론을 찬탄하는 글을 썼다. ≪고운집≫의 <희랑 화상에게 증정하다>라는 시에서 ‘문수께서 동묘에 강림한 것을 알겠도다’라는 구절만 보더라도 깊은 학식을 가진 대사를 문수보살에 비유하여 숭앙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스님의 가슴이 이상하다. 옷섶을 헤쳐 드러난 가슴팍 가운데 어른 손가락 하나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뻐끔 뚫려 있다. 흉혈이라고 했다. 일부에서는 쑥 뜸한 흉터를 형상한 것이거나 오래되어 썩고 좀 먹어 생긴 구멍이라는 설도 있고, 당시 해인사에 모기가 많아 수행하기 힘든 스님들을 위해 희랑 스스로 가슴 구멍을 뚫어 모기들에게 피를 보시하여 생겼다고도 전해진다. 재미있는 것은 중국 변방에 관흉국 또는 천흉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신분이 높은 자들은 흉혈이 있어 이곳을 막대로 꿰어 양쪽에서 두 사람이 떠메고 다녔다는 설화이다. 그 때문에 희랑대사 역시 ‘흉혈국인’이라는 별칭을 얻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법력의 경지에 이른 고승의 자비심이나 신통력의 상징이라는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신성한 구도자의 가슴 구멍은 육안으로 확인되지만, 속인들도 누구나 보이지 않는 흉혈 하나쯤 지니고 있겠다. 어느 시인의 모친은 화병으로 속이 타버려 소다 가루 아홉 말을 잡수셨다 하였고, 모 수필가의 어머니는 생때같은 아들 둘을 앞세운 참척의 고통에 앙가슴을 헤치고 가슴북을 두드리다 돌아가셨다. 오랜 지인은 제주 4‧3사건 때 부모를 잃고서 평생 울울증을 앓고 있으며, 어릴 때 생모에게 버림받은 아픔이 냉혹하여 지금도 쓰린 가슴을 안고 살아가는 도반도 있다. 사랑을 잃은 자들도 노래 가사처럼 '구멍 난 가슴에 추억이 흘러' 넘칠 것이고, 오기로 잘 버텨내고 있는 내 삶인들 삭아 내리지 않은 곳이 얼마나 될까. 그러니 먼 미래에 마음 사진을 찍는 기술이라도 개발된다면 속인들의 사후 영정사진에도 저마다의 흉혈이 드러날까.

좌대를 한 바퀴 돌아본다. 석재나 진흙도 아니며 금동이나 철불도 아니다. 뒷면은 분명 나무인데 앞면은 언뜻언뜻 삼베가 드러나는 건칠 기법이다. 도저히 천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다. 세필로 그린 하얗게 센 뒷머리며 약간 굽은 어깨마저 계산된 듯 섬세함이 느껴진다. 훗날 채색하였다는 화려한 점무늬 장삼과 홍록색 가사에서는 가야산 바람결이 일렁일 것만 같다. 그런데 흉혈만 뚫린 것이 아니라 조각상 내부가 텅 비었다고 한다. 속 비우기를 하면 무게를 줄이고 복장물을 봉안하기 위한 공간도 생기겠으나, 결국 삶과 죽음은 덜어내는 일이라는 것을 중생에게 일깨워주려는 것이 아닐까.

흔히 얼굴과 신체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된 조각상을 진영상眞影像이라고 하는데 희랑대사상도 생전의 모습과 거의 흡사하리라 여겨진다. 물론 이 좌상이 전신사리라고 일컫는 육신불은 아니지만 노스님이 곁에 앉은 듯한 착시마저 인다. 육신상은 고승의 유해에 옻칠이나 금박, 혹은 진흙 등의 층을 입혀서 미라로 만든 상이다. 중국에서 육신불은 인간으로 태어나 수행을 거쳐 득도한 뒤 입적한 승려의 상징으로서 부처에 버금가는 신앙 대상으로 숭배되고 있다.

그 때문일까. 나는 희랑대사상의 생생한 묘사에 진즉부터 ≪등신불≫을 떠올리고 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은 금불각 속에 모셔져 있는 등신불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화자에게 불상은 관세음보살의 미소로 이상화되어 있는데 그것과는 달리 고뇌와 슬픔이 아로새겨진 등신불에 의문을 가지며 소신공양한 인물의 내력을 탐색해 나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이후에 나는 어느 잡지에서 중국 광둥성 남화사에 안치되어 있다는 육조 혜능의 진짜 등신불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먹빛 얼굴에 지그시 두 눈을 감고 앉은 채 열반에 든 자세였는데 침묵의 언어가 너무나 경건하여 그 자체로도 전율이 일었다. 마음을 비우면 헛된 생각도 잦아든다는 법문을 거듭 새기지 않을 수 없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이미 희랑대사는 옅은 미소를 머금고 가슴을 열어 흉혈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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