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박지에 피는 꽃 / 김순경 

 

 

버려진 섬처럼 널브러져 있다. 닻을 내린 채 접안 순서를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느라 꿈쩍도 하지 않는다. 먼 길을 돌아온 배는 사력을 다한 마라톤 선수처럼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지친 몸을 바다에 뉜다. 언제부터 정박하고 있었는지도 알 수 없는 대형 화물선을 향해 바지선 한 척이 힘겹게 다가간다.

 

배는 암초에 뿌리를 내렸다. 어쩌다 파도가 철썩거려도 본체만체한다. 간을 보듯 부딪치던 물결도 제풀에 지쳤는지 이내 잦아든다. 잔물결에도 들썩거리는 작은 배와 달리 가끔 항구를 드나드는 큰 배가 만든 너울이 힘차게 밀려와도 수문장처럼 제자리를 지킨다. 때로는 탯줄을 자르고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안태본 조선소가 멀리 보여도 가만히 바라볼 뿐 말이 없다.

 

묘박지錨泊地는 닻을 내린 배들이 머무는 곳이다. 여객선이나 소형선박은 접안 시설을 사용하지만, 대형 선박은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다. 대형 유조선이나 화물선은 먼 곳에서 별도의 하역설비나 바지선을 통해 선적하고 하역할 때가 많다. 큰 배가 머무는 곳은 충분한 면적과 수심은 물론 갈고리를 잡아 줄 수 있는 견고한 암초도 있어야 한다. 방향과 위치를 알려주는 등대나 부표는 기본이고 무엇보다 파도가 사납지 않아야 작업이 순조롭다. 비좁고 얕은 부두는 늘 바쁘게 북적대는 곳이라 정박지에서 기관을 수리하고 연료를 공급받기도 한다.

 

정착하는 것은 아니다. 무작정 오래 머무르지도 않는다. 집을 짓고 새끼를 키우다 때가 되면 훌쩍 떠나는 제비처럼 출항준비가 끝나면 가뭇없이 떠난다. 생사기로에서 헤맬 때마다 다시는 배를 타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기력이 회복되기도 전에 바닷가에 나와 출항 일정을 살핀다. 온갖 난관이 기다리고 있는 줄 알면서도 가족의 얼굴을 떠올리며 승선한다. 날마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어둠과 박명을 맞이하고 보내다 보니 와글거리는 좁은 공간, 삶에 지친 뭇사람들의 표정,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이 몸에 배지 않아 도피하듯 바닷길을 나선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회사는 부두를 갖고 있었다. 수심이 얕고 접안 시설이 턱없이 작아 대형 화물선은 들어올 수가 없었다. 날마다 들락거리는 수천 톤의 철강을 바지선이 운반했다. 바다를 건너왔든 아니든 가공이 끝나면 다시 물길을 따라 어디론가 떠나갔다. 덕분에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 국내 최초로 일억 불 수출탑을 두 번이나 수상하기도 했다. 산업의 쌀이라 불리던 강철을 가득 실은 무동력 바지선이 자맥질하듯 천천히 나갔다가 엉덩이를 흔들며 들어올 때마다 달러도 따라 들어왔다.

 

틈만 나면 콘크리트 방파제에 나갔다. 먼바다에는 다양한 배들이 떠 있었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가 늘 궁금했다. 일이 늦게 끝나거나 숙직하는 날은 저녁에도 나갔다. 간단없이 밀려드는 파도 소리를 벗 삼아 서산 그림자가 바다에 빠져들기를 기다렸다. 반대편 산기슭에 따개비처럼 붙어 있는 산동네가 검게 변하고, 핏빛 노을마저 서산을 넘어가면 갈매기들은 지친 날개를 퍼덕이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종일토록 바닷속 열명길을 들락거리던 해녀들도 마지막 숨비소리를 남기고 테왁을 챙겨 뭍으로 올라왔다.

 

어둠이 내리면 바다에는 붉은 꽃이 피었다. 밤에만 핀다는 달맞이꽃처럼 슬며시 피어났다. 샛별처럼 모습을 드러낸 불빛은 물결이 일렁일 때마다 파도에 부서져 흩어졌다. 밤바다에 어둠이 짙게 깔리면 곳곳을 밝히는 희미한 전등불은 흐트러진 별자리가 되었다. 오징어잡이 배처럼 지나치게 밝지도 않고 유람선 같이 화려하거나 눈부시지도 않았다. 겨우 자신의 존재만 알려주는 울 밑에 핀 봉숭아처럼 언제나 이별의 처연함이 녹아 있었다.

 

새벽이면 여명과 함께 꽃이 사라졌다. 붉은 태양이 치솟는 일출보다 국적조차 알 수 없는 배들이 밤을 새운 묘박지에 먼저 눈이 갔다. 어둠이 걷히고 안개마저 제자리로 돌아가면 물 위를 날던 갈매기도 선체에 앉아 깃털을 매만졌다. 밤새 누가 떠났고 들어왔는지를 살폈다. 나그네들의 휴식처 같은 그곳에는 상처투성이의 풀죽은 배도 있고 금의환향하듯 의기양양한 자태를 뽐내는 선박도 있었다. 가끔은 수많은 병사를 갑판에 도열시킨 잿빛 전함이 정박지를 헤집고 으스대며 들어왔다.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든 정해진 시간이면 모두가 떠나갔다.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구도의 길을 걷는 수행자도 한 번쯤은 망설인다. 안정되고 익숙한 삶을 팽개치고 불안하고 힘든 길을 선택하려면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사무치게 파고드는 연을 과감하게 떨쳐내지 않고는 한 걸음도 떼지 못한다. 육지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마다 가슴을 파고드는 가족의 얼굴은 늘 서럽게 다가온다. 갖가지 사연들을 가슴에 담은 채 소박한 꿈을 향해 나아간다. 많은 것을 바라거나 특별한 삶을 기대하지 않아도 어느 것 하나 녹록지가 않다.

 

큰형님도 배를 타려고 했다. 보릿고개에서 해방되려는 몸부림이었다.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있던 그때는 변변한 공장도 일자리도 없어 의식주 해결도 힘들었다. 온 식구가 죽을힘을 다해 농사를 지어봐야 입에 풀칠도 힘들었다. 전쟁 중인 베트남 건설현장이나 두더지처럼 석탄을 캐는 독일 광부를 선호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외항선 마도로스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그 또한 조건이 까다로웠다. 가족들의 기대를 한몸에 안고 수년간 노력했지만 원양 어선조차 타보지 못하고 꿈을 접었다.

 

나도 그런 적이 있다. 열사의 나라 중동 건설현장의 용접공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얼마나 열악한 환경인지 어떤 나라인지도 잘 몰랐다. 오직 기울어 가는 집안을 일으켜 세우려는 생각뿐이었다. 일 년 동안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오직 용접기 앞에만 앉아 있었다. 쇠를 녹이면서 발생하는 가스에 정신이 혼미해지고 이마에서 흐른 땀이 뜨거운 쇳덩이에 떨어져 소리를 질러도 생명줄이라 생각하고 용접기를 놓지 않았다. 때로는 화상을 입고 물집이 생겨도 반창고만 바르고 용접봉을 태웠다. 조선소 앞바다에 떠 있는 선박을 바라보며 날마다 희망에 부풀었다. 가끔은 정박한 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가는 꿈도 꾸었지만,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한낱 허상이 되었다. 열 배의 임금도 가족들의 희망과 꿈도 일시에 무너져내렸다. 유난히 바닷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그해 겨울, 붉은 꽃이 조선소 바다에 피어나는 저녁 무렵에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다.

 

수년이 지나 묘박지의 선체에 올랐다. 지난날 그렇게 타고 싶었던 큰 배였다. 가까이 갈수록 절벽처럼 다가왔다. 파도가 칠 때마다 그네처럼 흔들리는 줄사다리를 잡았다. 발을 옮기려고 할 때마다 흔들리는 바람에 외줄 타기 유격훈련을 받을 때보다 더 떨렸다. 거미처럼 가뿐하게 올라간 선원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갑판에 올랐다. 일만 톤도 되지 않는 화물선이었지만 멀리서 볼 때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기관실부터 식당 휴게실까지 돌아보고 갑판에 올라서니 멀리 보이는 십만 평의 회사 건물도 모형처럼 보였다. 분주하게 오가던 선원들이 제자리를 잡자 힘찬 스크루 소리와 함께 배가 움직였다.

 

배는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아무리 오래 머물러도 마찬가지였다. 암초처럼 먼발치에 있든 앞산을 가릴 정도로 앞에 있든, 잠시 머물렀든 몇 달 동안 떠 있었든 떠나면 그만이었다. 누가 얼마나 정박했는지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고 기억도 하지 않았다. 그냥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망막에 비쳤을 뿐 언제 어떻게 떠났는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사람도 늘 떠돌지만, 관심 가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원하는 학교나 직장을 찾아가고 시대의 물결에 떠밀려가도 이야깃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빠져들어 갈등과 고통으로 밤을 새워도 그러려니 할 뿐이다. 학교의 선택, 성적관리와 직업선택, 결혼과 육아, 내 집 마련과 노후 걱정 등 알고 보면 모두가 자신만의 문제이다. 혼자서 힘들어하고 아파하며 밤새 가슴을 쥐어뜯어도 결국 자신의 문제일 뿐이다.

 

세상 만물은 한곳으로 돌아간다. 약간의 시차는 있을지언정 다른 길이 없다. 후세에 이름을 남기려 야단법석을 떠는 무리도 있으나, 그 또한 부질없는 짓이다. 자신만의 만다라를 찾아 구름처럼 떠다니는 수행자들은 늘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번민에 허덕이지만, 그 또한 다르지 않다. 묘박지를 들락거리는 거대한 선박도 언젠가는 붉은 녹이 되고 바람이 되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바다는 딱히 누구를 기다리지 않는다. 찾아오면 받아주고 떠나도 미련 두지 않는다. 지금도 묘박지에는 크고 작은 붉은 꽃들이 끊임없이 피고 진다. 이 땅에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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