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용(巖龍) 위에 큰 뜻을 세우니 / 이승희
전통 묵집에서 무심코 눈길이 머문다. 부석사의 장엄한 전경 한 장, 이곳이 화엄의 땅임을 짐작게 한다. 길을 따라 병풍 같은 소백의 줄기가 펼쳐진다. 맑은 기운을 받으며 얼마나 들어갔을까. 저만치 소백의 명당 봉황산 품에 부석사가 자리를 잡고 있다.
부석사로 들어가는 연못에는 무지개가 떠 있다. 맞다. 이 땅은 몽골리안들이 동경하는 무지개의 나라. 무지개의 나라에서 가장 무지개 같은 곳, 가람으로 오르는 입구에는 속세와의 경계를 알려주는 당간지주가 서 있다.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 깃대인 당간. 당간을 양쪽으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 당간지주. 혼자보다는 둘이 났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인지. 폐사지의 당간지주는 멀리서도 또렷하게 보였으나, 이곳 당간지주에 서면 고개를 자연스럽게 올려야 하늘이 보인다.
천왕문을 지나 한 발 두 발 오른다. 하늘로 오르는 계단이다. 부라리는 눈이 무서워 고개를 숙여 피하던 사천왕도 이 절에서는 고개를 들어 눈 맞춤하게 된다. 무량수전까지 오르는 길, 층층이 밟는 계단은 더 높은 깨달음으로 오르는 아홉 단계다. 한 숨 두 숨 내뱉을 때마다 등줄기에서는 아홉 배가 더해져 땀이 흐른다. 한 계단 오를수록 땅이 멀어지고, 하늘이 가까워진다. 범종루와 안양루를 지나는 동안 올려야 하는 고개가 다시 숙인다.
때마침 하얀 구름이 솜이불처럼 봉황산의 무량수전을 감싼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다. 건물은 단청도 없이 소박하고 간결하다. 주심포 양식의 공포에 배흘림기둥의 곡선미가 돋보인다. 기둥의 가운데가 불룩한 배흘림기둥은 지붕을 떠받드는 공포의 기둥이 하중 분산을 하도록 하기 위한 건축학적인 고려다. 구조상의 안정성과 착시현상을 교정하기 위한 기법이다. 처마의 곡선이 선형미를 더해 무량수전은 정토에나 있을 법한 고전미를 풍긴다.
무량수전 뒤쪽을 돌아보니, 저 위에 작은 건물이 보인다. 산신각인가 싶어 지나치려 하는데, 건물 왼쪽으로 배롱나무 한그루가 꽃을 피웠다. 궁녀가 분홍색 부채를 흔들고 있는 모양이다. 꽃에 이끌려 다가가 건물의 현판을 보니 산신각이 아니라 선묘각이다. 한 여인이 구름 위를 날고 있는 용을 타고 있다. 여인의 얼굴은 우리와 비슷했지만, 옷차림이 다르다. 보통 사찰에는 산신각이나 칠성각이 있는데, 왜 여기는 당나라 사람을 모시는 사당을 세웠을까.
의상이 처음 밟은 땅이 산둥반도 북쪽 등주였다. 의상이 머무는 집에는 선묘라는 딸이 있었다. 의상이 적산에 있는 법화원으로 옮겨 머무는 동안 선묘는 멀리서 의상을 바라보며 흠모했다. 선묘는 의상에게 연모하는 마음을 전하려 했으나 의상은 끝내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안으로 가서 유학을 마친 의상이 신라로 떠날 때, 선묘는 손수 지은 법복을 전하려고 서둘러 바닷가로 뛰어갔다. 그러나 의상을 태운 배는 이미 수평선을 넘은 뒤였다.
선묘는 의상이 무사히 신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빌었다. 의상을 따라갈 수 없는 선묘는 자신이 용이 되게 해달라고 하늘에 빌면서 바다에 몸을 던졌다. 이에 하늘이 감읍하여 선묘는 용이 되었고, 용은 의상이 탄 배가 신라까지 무사히 갈 수 있도록 보살폈다. 신라에 도착한 의상은 용이 된 선묘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의상이 봉황산 자락에 절을 지으려 하였다. 이미 이곳에 절을 짓고 사는 오백 명 다른 종파 불승들이 있었다. 그들은 의상을 내쫓았다. 의상이 부처님께 어려움을 호소하자 하늘에서 바위로 변한 선묘의 용이 나타났다. 용이 사흘 동안 공중에 머물면서 반대하는 불승들을 향해 내리칠 듯 위협하니 그들은 두려워 달아났다. 바위가 되어 내려앉은 선묘를 의상은 부석(뜬바위)이라 이름 짓고, 선묘의 희생 위에 지은 가람을 ‘부석사’라고 지었다.
스님과 스님을 흠모하는 여인과의 사랑은 통속적이다. 선묘설화는 그렇지 않다. 스님은 세속의 경계를 넘지 않았고 선묘도 종교의 신성을 넘지 않았다. 의상과 선묘는 서로 정신적 교감을 나누었을 뿐이다. 이루지 못할 사랑을 선묘는 죽음으로 승화했다. 선묘설화는 희생이라는 가치 위에 지었기에 아름답고 의상의 신성성을 해치지 않았기에 더욱 성스럽다.
무량수전 마당 땅속에는 용이 묻혀 있다. 석등 아래에서부터 무량수전 안까지 바위 용이 누워 있다. 암용은 부석사의 수호신으로 그 길이가 무려 십삼 미터다. 의상은 암용의 머리 위에 무량수전을 세우고 아미타여래를 모셨다. 아미타여래가 동쪽을 바라보는데, 그 까닭이 있다. 아미타여래를 마주 보면 자연스럽게 서쪽을 보게 된다. 참배객이 부처님이 오신 서방정토를 향하게 배치했으니, 이 얼마나 절묘한 배치인가.
화엄(華嚴)의 도량 부석사도 가람의 배치가 절묘하다. 꽃이 핀다는 ‘華’자 모양의 상형문자로 가람 자체가 활짝 핀 꽃 한 송이다. 아름다운 설화 위에 아름다운 무량수전을 세워 그 의미를 더했으니, 이보다 아름다운 사상의 꽃이 있을까. 선묘는 이 땅에 화엄이 저 배롱나무처럼 오래오래 꽃 피기를 바랐을 것이다.
순례를 끝내고 발길을 돌려 계단을 내려온다. 한 계단 두 계단 내려갈수록 속세가 가까워진다. 당간지주 앞에 멈추고 뒤를 올려다본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길을 떠났는데, 오늘 나는 부석사에서 무엇을 얻고 내 자리로 돌아가는 것일까. 문득 스치는 생각을 노트에 적바림한다.
암용(巖龍) 위에 큰 뜻을 세우니, 소백 기슭에 화엄(華嚴)이 꽃피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