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학 전공 / 최진

 

 

 

다시 공부하게 된다면 일상학을 전공하고 싶다. 일상학이라는 학문이 학교에 과목으로 개설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매일의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은 사실 겪으면 겪을수록 재미있다.

 

프랑스 명상공동체인 플럼 빌리지를 운영하는 틱 낫한 스님의 오래전 인터뷰가 아직도 생각난다. 십 년도 훨씬 더 된 것 같은 인터뷰의 내용은 ‘설거지를 하면서 우주를 느끼고 명상에 빠진다’는 것이었는데 듣는 순간 완전히 공감이 갔다. 역시 세계 곳곳에는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공감의 메시지를 뿌려대는 고수들이 도사리고 있다.

 

사실 나도 늘 비슷한 생각을 해왔다. 가장 작고 소박한 어떤 것, 우리의 평범한 일상들도 어떻게 재단하고 얼마만큼 몰두하느냐에 따라 그것 자체로 하나의 훌륭한 시적 시간으로 완성될 수 있다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그저 무심하게 지나치면 의미 없는 잡일들로 이루어진 시간의 흐름일 뿐이지만, 그것에 마음을 주고 정성을 기울이면 그저 그런 하루도 빛나는 순간으로 반전될 수 있다.

 

그런 일들은 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다. 인식하는 순간 달라진 시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의 남자인 나의 남편은 아침으로 가끔 핫케이크를 구워준다. 핫케이크만큼은 나에게 맡기지 않는다. 뭐 특별한 반죽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시판된 가루에 계란과 우유를 섞는 정도이지만 정성 들여 한 장 한 장 구워낸다. 어느 순간 별거 아닌 핫케이크 굽기에 진한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기름도 두르지 않고, 약한 불에 팬을 달궈 세심하게 구워내는데, 아무리 핫케이크를 층층이 쌓아도 모양이 삐져나오지 않고, 거의 비슷한 크기와 동그란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다. 나는 집중하고 있는 그 모습이 너무 감탄스러워 남편에게 ‘핫케이크를 굽는 발레리노’라고 이름 붙여주었다. 어쩐지 동작들이 날렵하고, 섬세한 고급기술을 선보이는 발레리노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을 좋아한다. 그것에 마음을 주어 특별한 시간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내가 이야기하는 일상들이 집 안을 반짝반짝 윤기 나게 관리하거나, 정갈한 밑반찬을 만들어두는 것, 정기적인 취미생활을 하는 등의 기능적인 종류의 것들은 결단코 아니다. 일반화되지 않은 내게 특별한 단 하나의 개별적인 행위들을 찾아내 즐기면서 집중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일상의 기쁨이다.

 

지금도 나는 마치 매일의 일기를 채워 넣듯이 ‘아! 내가 이런 것들을 좋아 하는구나’ 하면서 인식하고 있다. 기도를 걸으면서 하는 것,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몰래 신나게 춤을 추는 것, 마음을 때리는 노래를 편집적으로 질릴 때까지 듣는 것, 두꺼운 책의 좋아하는 구절만 야금야금 읽는 것, 영화관에 스며들어 시원하게 우는 것, 대화 통하는 친구와 시간이 날아가는 것을 느끼는 것, 나를 이해하는 헤어디자이너와 손쉬운 머리모양을 찾아내는 것, 커피의 매력적인 농도를 맞춰가는 것, 재미있는 농담과 장난들을 나누는 것 등등이다. 변함없이 좋아하고 집중이 되는 순간들이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우리 주변에서 그와 같은 일상의 고수들은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예전 동네의 수위아저씨 한 분은 너무나 열정적으로 단지청소를 하셨다. 날씨와도 상관없이 몇 년을 유지해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청소하면서 뭐가 그렇게 매일 신이 나시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대답은 준비된 듯 즉각적으로 나왔는데, 본인은 청소하는 것이 그렇게 좋다고 하셨다. 청소의 동작들이 그분에게는 최고의 명상이고 기도였을 것이다. 몰두하는 순간 우리는 가장 순수하고 평온해진다.

 

별거 아니다. 잘 살아낸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저절로 집중되어지는 것이 있다. 하지만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인식하는 순간 그것들은 ‘내가 좋아하는 어떤 것’이라는 특별한 이름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사는 동안 내게는 더 많은 일상의 좋아하는 것들이 생겨날 것이다. 절대로 흘려버리지 않고 꼭 인식하고 즐기는 기쁨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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