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더하기 / 권민정
잠들기 전, 남편이 몸이 좀 아프다고 했다. 한밤중, 통증이 조금씩 심해졌다. 응급실에 가자고 했으나 날이 밝으면 동네 병원에 가겠다고 한다. 그러나 더 참을 수가 없는지 새벽에 택시를 불러 타고 종합병원 응급실에 갔다. 병원에서는 여러 검사를 하고 CT를 찍더니 요로결석이라 했다. 몇 시간 병원에 있는 동안 주사한 진통제 덕분에 통증은 없어졌고, 돌은 저절로 빠져나갈 수가 있으니 집에 가서 물을 많이 마시고 2주 후에 다시 와서 검사받으라고 했다. 만일 2주 후까지 돌이 남아있으면 그때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CT에 좀 이상한 게 보인다고 했다. 췌장 쪽에 뭔가 이상이 보이니 그쪽 전문의를 만나보라는 것이다. 췌장 전문 의사는 자세한 말을 해 주지 않았다. 정밀 검사를 다시 해봐야 한다는 말만을 했다. 다시 CT를 찍고, MRI 검사를 하고, 결과가 나오는 약 3주 동안 남편의 중세는 입 밖으로는 내지 않고 있지만 심각하게 보였다. 의사가 자세한 말을 안 해주니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거기에 나오는 췌장암 증상과 비슷한 점이 있었다. 췌장암은 증세가 나타났을 때는 이미 절망적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일까?
불길한 생각을 하게 되면 점점 더 그 쪽으로 생각이 더해진다. 너무 늦게 암을 발견하여 치료다운 치료도 받지 못하고, 진단 후 두 달도 안 되어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났다.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시아버님도 떠올랐다.
평온한 날이 계속될 때 기도는 진심보다는 습관적일 때가 많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나님 어젯밤에도 잠 잘 자게 해 주시고 건강한 몸으로 일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밤에 잠들기 전 “하나님 오늘도 건강한 하루를 잘 보내개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한다. 밥 먹을 때도 기도를 잊고 먼저 밥 한술 떠 놓고는 생각이 나서 음식을 입에 문 채 “감사합니다.” 할 때도 있다.
그런데 이제는 일상의 하루하루가 예사롭지가 않게 되었다. 기도가 습관이 아니라 절실함으로 바뀌었다. 밤에 10분 정도 채 하지 않던 기도 시간이 30분, 1시간으로 늘어났다. 입으로 중얼거리던 소리가 저절로 가슴속에서부터 올라와 울음으로 터져 나왔다. 내 생명의 길이가 얼마인지도 모르면서 내 시간을 조금 빼서 남편에게 더해달라는, 그래서 같이 살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진단결과가 암이 아니고 염으로 밝혀졌다. 몇 주 컴컴한 터널 속에 있다 환한 세상으로 빠져나온 것 같았다. 이제는 습관적으로 일상을 살던 3주 전과는 분명히 세상이 바뀌어 있다.
나는 ‘시간 더하기’ 카페에 앉아 있다. 카페 이름이 시간 더하기라니! 힘든 시간을 보낼 때 남편의 시간이 더해지기를 간절히 구해서인지 나는 그 이름을 보자말자 반해 버렸다. 나는 카페에 앉아 여기서 말하는 ‘시간 더하기’란 도대체 뭘까 그 의미를 골몰히 생각한다. 글자 그대로 시간이 더해지는 것일 수도, 고무줄 같은 시간이니 느리게 흘러 두 배 세 배도 풍요로울 수도, 저 먼 창조의 순간 이후 공간에 시간이 더해져 역사가 만들어졌으니 역사 만들기일 수도 있겠다.
이곳은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에 있는 가시리(加時里)이다.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인 녹산로를 따라 드라이브하다가 유채꽃축제를 하는 현수막을 보고 들어왔다. 축제 기간은 이미 지났지만 아직 끝없이 펼쳐진 유채꽃,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유채꽃밭일 것 같다. 바람 많은 제주에서도 특히 더 바람이 많은 곳인지 이곳에서는 풍력발전기가 많다. 바람이 불 때마다 유채꽃이 파도처럼 출렁인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곳은 시간을 더하는 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일까?
이 마을은 고려의 충신 청주한씨 한천이 조선왕조 개국에 불복하여 제주에 유배된 후 처음 살기 시작하여 마을이 됐다. 마음의 기원이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을 준다. 가시오름(가스름)이 가까이 있어 가시리라는 이름이 정해졌고, 넓은 초원을 이용해 말들을 많이 키웠으며 옛날 임금님께 진상했던 최고의 말인 감마장(甲馬場)이 있던 곳이다. 또 따라비오름을 비롯해 오름이 13개나 있는 곳이며, 43사건 때는 수많은 억울한 죽음을 당했으며, 마을 집들이 다 불타버려 폐허의 땅이었던 중산간 마을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마을에서는 거의 다 팔아버린 공동목장을 지켜내어 200만 평이 넘는 마을목장을 가진 마을이며 그 목장을 이용하여 유채꽃축제를 한다. 마을 내에는 잔디축구장이 있고, 마을 아이들의 동시집을 엮어냈으며 폐교를 자연사랑갤러리로 개조하였고, 우리나라 유일의 리립(里立)박물관을 설립한 문화의 마을이다.
수십 년 전, 그들의 부모세대에서 타인에 의해 시간을 빼앗긴 한(恨) 때문일까? 그 후손들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마치 시간을 더한 것 같은, 더불어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이곳은 이제 슬픔을 딛고 희망을 일군 마을이 되었다.
나는 가만히 생각한다. 절망적인 일을 당한 누군가가 이곳에 와서 희망을 찾을 수 있기를. 제주의 수많은 오름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따라비 오름’에 올라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바람을 맞는다면, 테우리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광활한 평원을 달리는 말들을 본다면, 유채꽃과 벚꽃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녹산로 길을 걷는다면, 바람 부는 날 들판 가득 은빛 억새가 흔들리는 신비한 풍경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 간다면, 하루에 또 하루가 더해지는 그런 기적 같은 일이 현실이 될 것 같은 환상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