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그락지 / 정재순

 

열 살 쯤으로 기억된다.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와 처음 만난 외숙모는 키가 나직하고 야위었다. 어딘지 모르게 귀티가 흘렀으나 좀처럼 감정을 표현하지 않아 쌀쌀맞게 보였다. 밥상 위에 차린 반찬들은 먹음직스러웠지만 앉은자리가 불편했다.

외삼촌에게 두 번째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인물이 출중한데다 씀씀이가 커 멋쟁이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집안에선 쥐락펴락하는 독불장군이었다. 심지어 그 여자가 낳은 아들이 제 집처럼 드나들었고, 가까운 친척들도 그들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여자의 고통 중에 가장 힘든 일이 배우자의 외도라고 한다. 바람 끼가 유난한 남자는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옆을 본다고 했던가. 감당하기 벅찬 나날들, 고문당하는 것처럼 외숙모의 삶은 하루하루 메마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젊을 적엔 바깥으로 돌다가 집에 들어오면 고함만 버럭 지르던 외삼촌이었다. 칠순을 눈앞에 두고부터 한결 고분고분해졌다. 서너 살 아이마냥 잠시 눈에서 멀어지면 어디 갔다 왔냐며 눈물을 글썽였다. 아내 자리의 소중함을 그제야 깨달았나 보다.

옹그려져 겨우 두어 뼘 됨직한 외숙모의 가슴이 웅숭깊은 데가 있다. 이미 다 지나간 일이라는 듯, 긴긴 세월을 고통 속에 살았음에도 지아비를 묵묵히 하늘처럼 떠받든다. 참고 또 참아내느라 저리 오그라든 걸까. 그런 당신을 보면 가을 햇살에 꼬들꼬들하게 잘 말린 무말랭이가 생각난다.

무는 햇볕에 말리면 단맛이 풍부해지고 칼슘과 비타민 함량이 늘어난다. 볶아서 식수로 끓여먹으면 고소하고 기관지에도 좋다. 무말랭이를 갖은양념으로 버무리면 오그락지가 된다. 오독오독 씹히는 소리가 그야말로 마법 같다. 무더운 여름날에 집 나간 입맛을 돌아오게 한다.

분명 가을무였다. 늦가을이면 엄마는 무를 나박나박 썰어 햇볕에 말렸다. 그즈음이 속이 단단하고 맛나기 때문이리라. 부지런히 썰던 엄마는 파란 부분을 큼지막하게 잘라 내게 주었다. 달다는 말에 마지못해 한 입 베어 물었는데 그다지 단 줄은 몰랐다.

엄마를 여읜 후, 당신이 해주던 오그락지가 먹고 싶었다. 시장에서 무말랭이를 사서 몇 번 흉내 내어 보았다. 싱겁고 푸슬푸슬한데다 뭔가 빠진 듯 형편없는 맛에 급기야 오그락지 만들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반찬가게에서 사 먹어봤으나 실망감만 안겨주었다.

수태한 딸이 외할머니가 만든 오그락지 맛이 그립다고 해 다시 도전하기로 맘먹었다. 훌륭한 요리를 하려면 무엇보다 재료가 으뜸이어야 하리. 엄마 어깨너머로 본 기억을 찬찬히 떠올리며 이번엔 하나하나 까다롭게 골라보기로 작정했다.

마침 금방 밭에서 뽑아온 듯한 무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무청이 싱싱하고 미끈한 무를 정성껏 씻어서 알맞은 크기로 썰었다. 무를 입으로 가져간 내가 달다는 말을 연거푸 쏟아내며 어느새 딸한테 무를 건네고 있었다. 무심코 받아먹던 딸은 오만상을 찡그렸다.

다 썬 무를 채반에 가지런히 펴 햇살 아래 널었다. 무는 모든 걸 숙명으로 받아들이는지 자신을 송두리째 내맡겼다. 비 오면 들이고 햇볕 좋은 날엔 내다 놓기를 반복했다. 처음엔 새들하니 볼품이 없더니 차츰 꾸덕꾸덕 말라갔다. 드디어 무말랭이가 자기만의 품을 갖추었다.

무말랭이와 말린 고춧잎을 물에 담갔다가 헹구어 물기를 짠다. 고춧가루에 다진 마늘, 조청, 매실 청, 진간장, 맑은 멸치젓국을 골고루 섞는다. 무말랭이와 고춧잎을 넣고 버무린다. 소금으로 짭짤하게 간을 맞추고 통깨로 마무리해 며칠 숙성시킨다. 고슬고슬한 밥과 먹으니 엄마 손맛을 쪼끔 닮은 것 같다.

돌이켜보면 살면서 경험한 고비들은 삶의 스승이나 다름없었다. 하고많은 시름을 겪으면서 비로소 깨우치게 된다. 무가 바람과 따가운 햇볕을 견뎌내고서야 무말랭이가 되고 오그락지로 거듭나는 것처럼. 세상의 무엇이건 제대로 여물어야 깊은 맛을 내는 모양이다.

속 깊은 사랑이 오늘을 일구어냈다. 늦게나마 마음 편히 지내는 외숙모 모습이 흐뭇하다. 부부가 노년을 서로 의지하며 함께 보내는 것은 여간한 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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