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게 한 달 수입이 얼마냐고 묻기는 쉽지 않다. 밥은 먹고 살 형편인지 확인하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인천 사는 딸네 부부가 오자 살만하냐고 에둘러 물었다. 둘은 대답 대신 빙긋 웃었다. 부모 앞에서 경박하게 입을 놀리지 말자고 약속이나 한듯했다.
딸내미가 학원 선생을 그만둔 지 제법 되었다. 대신 권투도장에서 근력운동을 하고 수영도 즐기는 것 같았다. 며칠 전엔 비싼 요가복을, 그것도 여러 벌 샀다는 소문이 들렸다. 사위와 미주알고주알 터놓고 사는 아내가 흘려준 말이다. 손주가 들어서지 않아 사돈댁에 미안하긴 하지만 잘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결혼 전엔 사위를 변변찮게 여겼다. 연예기획사에 다니면서 허드렛일을 하는 정도로만 알았다. 딸내미조차 저를 먹여 살릴 수 있을까 싶어 주저하는 눈치였다. 석류를 빈번히 보내길래 고맙다고 생각했더니 나중에 털어놓길, 청과물시장 야간 아르바이트도 했단다.
고생 끝에 독립한 사위는 편곡으로 먹고산다. 클래식을 자장가나 다른 곡으로 바꾸는 것이다. 작가 사후 70년이 지나 저작권이 소멸한 곡으로 편곡하여 저작료를 받는다니 희한하다. 네이버 사이트에서 제 이름을 확인시켜줘도 긴가민가하다. 사위가 곡을 쓰고 딸내미가 감수한다니 오붓한 수입이다. 가요 쪽이 더 낫지 않느냐고 했더니, 꾸준히 한 우물을 판단다. 방탄소년단(BTS)을 보시란다.
나는 쉰 세대다. 트로트가 편한 것만 봐도 알만하다. 갓 바른 방바닥에 콩기름 먹이듯 내 삶에 절은 가락이다. 트로트에 깔린 베이스기타의 둔탁한 소리가 북소리처럼 심장을 울리는 까닭이다. 아이돌(idol) 노래는 불편하다. 음질이 까랑까랑해도 싫다. 풍부한 음원이 아까워서 귀에 익히려 해 봤지만 헛일이었다.
하룻밤 자고 난 딸네가 떠나자 나는 밭고랑에 물을 대고 섰다. 고춧물 하염없고 땡볕 유월 해 긴데, 물 더딘 꼴이 마치 굼벵이 같았다.
“카톡”
사위가 보낸 방탄소년단 동영상이었다. 소개를 했지만 설마 장인영감이 일부러 찾아봤을까 긴가민가했던 것이리라.
나는 밭머리에 주저앉아 그들의 춤에 빠져들었다. ‘칼 군무’로 일컬어지는 그룹 댄스가 현란했다. 수십 년 밥 먹듯 하던 태권도도 허구한 날 하급에 머무른 나다. 2시간만 추면 다리 마비가 온다는 춤을 하루에 12시간씩, 그것도 몇 년을 연습했다니 기가 막혔다. 죽어라고 연습을 한 팀이기 때문에 살았다는 음악평론가의 말이 옳다. 그야말로 필사즉생必死卽生이다. 나는 환호하는 관중들을 따라 넋을 잃고, 숙연해지다가 끝내 눈물이 났다.
“우린 열심히 해요, 그것 외에는 없습니다.”
독일의 세계적인 보컬 코치가 BTS의 이 말을 증명했다.
“춤을 추면서 노래하는 걸 ‘왕의 절제력’이라는 건데, 그 정도로 절제력을 최고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춤추느라 숨이 차서 잘못된 타이밍에 숨을 들이쉬거나 숨이 모자라서 발성에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실수가 표정입니다. 정말 많은 연습을 해야 하는데, 흠잡을 데가 없군요.”
구보훈련 중에 군가를 해본 사람은 안다. 얼마나 숨이 차는지. 무장 무게만으로도 벅찬데 자꾸 군가를 시키면 이가 갈린다. 나는 BTS의 ‘열심히’가 의미하는 비중을 군대 구보에 빗대어 절감한다. 세계에 어마어마한 파장을 몰고 온 UN 영어연설문은 또 얼마나 연습했을까.
BTS는 사람이 가져야 할 가치를 일깨운다. 열정을 되살리고 노동의 가치를 역설한다. 잘난 사람은 더 잘나고 못난 사람은 밟히는 빈익빈 부익부의 세상이지만 열심히만 하면 성공한다는 실증을 보였다. 곡조는 가볍고 가사는 묵직하다. 사랑이니 뭐니, 말초신경이나 자극하는 내용이 아니다. 청춘, 자유, 인생에 대한 목표, 사회시스템에 대한 저항과 같은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
경제효과가 몇조 원이라 하고, 대표이사의 재산은 시쳇말로 ‘어마무시’하다. 돈은 저절로 따라가기 마련이며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노력하는 사람들, 특히 흙수저들은 행복해야 마땅하다.
폭발적인 인기의 근간에는 리얼함이 깔려있다. 가식이 아닌 진짜, 실제, 진정이 묻어 나온다. 단칸방 합숙 시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들어서 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동영상 속 멤버들은 모두 인간미가 있다. 가사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한 수양과 자기 암시가 있었으리라.
수필이라고 다를 바 있으랴. 인간미 넘치는 글을 읽고 그 작가를 존경했는데, 불미스러운 일이 불거져 얼떨떨했던 적이 있었다. 진실이라 믿었던 스토리가 허구란 걸 알게 되었을 때는 허망했다. 글의 주창과 작가의 언행은 같아야 한다. 쓴 글에 책임지는 것은 작가의 체면을 세우는 일이자 독자에 대한 도리가 아닐까 한다. 세상 곳곳에 스승이 있다더니, BTS 춤을 보며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