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위 / 김순경

 

 

금세 물살을 탄다. 악보도 지휘자도 없는 합주의 물결에 휩쓸린다. 강물처럼 고요하던 장단이 점차 격렬하게 흐르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가락을 듣는다. 계곡에서 흘러든 지류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세를 불리듯 갖가지 풀벌레 소리가 모여든다.

가을이 되면 풀벌레의 시나위를 듣는다. 서늘한 기운이 흐르는 강변에는 저녁마다 연주회가 열린다. 넓은 공연장이나 무대도 없고 시작을 알리는 장구나 악공도 없지만 해만 지면 어김없이 펼쳐진다. 붉은 노을마저 서산을 넘어가고 산자락의 어둠이 강물에 깔리면 관객이 있든 없든 공연이 시작된다. 어슴푸레한 가로등이 불을 밝히면 기다렸다는 듯이 기를 토해내는 풀벌레 소리가 물살을 이룬다. 무더운 여름 내내 쌓아두었던 내공을 거침없이 쏟아내면 달빛에 번쩍이던 강물도 물비늘을 잠시 내린다.

우연찮게 시나위 공연을 본 적이 있다. 객석이 많지도 않은 작은 국악 공연장이었다. 무대가 서서히 밝아지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악사들이 나타났다. 오랜 연륜을 쌓은 데서 나오는 여유로운 모습이 단번에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세속을 벗어난 듯 잔잔한 미소를 띤 연주자의 얼굴에는 어떤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 장구재비가 정적을 깨고 가볍게 추임새를 넣자 악기를 지긋이 내려다보던 악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가락을 탄다.

단번에 소리의 물살이 공연장을 쓸고 지나갔다. 연미복의 지휘자와 검은 단복의 연주자로 구성된 대규모 관현악단과는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연주자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일제히 터져 나오는 악기 소리는 우렁찼다. 아쟁이나 해금의 슬픈 곡조가 애잔하게 흐르면 대금이나 피리가 받아주고 지겨울 겨를도 없이 가야금과 거문고가 방향을 틀었다. 신나게 한 순배 돌고 나면 어느새 한데 모여 다시 큰 물줄기를 이루었다. 시나위의 선율은 블랙홀처럼 청중의 숨소리마저 빨아들였다.

시나위는 무속 음악이다. 여러 설이 있지만, 굿판에서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합주 형식이다. 무가의 선율인 살풀이장단에 맞춰 연주하던 시나위가 지금은 애잔한 진양조나 중모리장단은 물론이고 중중모리나 자진모리장단같이 신명 나는 산조까지 연주한다. 장단이 다양해지면서 단순한 대금, 피리, 해금, 장구, 징 등에서 거문고나 가야금, 아쟁 같은 현악기까지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지정된 지휘자나 소리꾼이 없다. 장구가 첫 박을 두드리면 동시에 몸이 반응하면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장단이나 곡조가 전해지지 않아 악기마다 신나게 두드리고 뜯고 불기를 반복한다. 한바탕 놀았다 싶으면 장구의 신호에 따라 합주가 아닌 악기별 산조가 시작된다. 힘차게 흐르는 격류도 소를 만나면 잠시 쉬듯이 악기를 연주하는 악공들도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며 기를 모은다. 우렁찬 거문고 소리를 듣다 보면 맑은 가야금 소리에 젖어 들고 기다렸다는 듯이 구슬픈 아쟁 소리가 추임새를 타고 들어온다. 징과 장구 소리는 끊임없이 늘어지는 현악기나 관악기의 가락에 윤기와 탄력을 더해 관객들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시나위에도 불문율이 있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한 악기가 하성(下聲)을 내면 다음 악기는 중성(中聲)과 상성(上聲)으로 이어간다. 평조의 합주가 지루해지기도 전에 슬프고 애잔한 계면조 소리로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고수들이라 차례를 미리 정하거나 의논하지 않고 악사들이 서로 눈을 맞추지 않아도 들어가고 나오는 시점을 정확히 알고 있다. 이음매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다 보니 관객들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다. 모든 연주자는 거침없이 나아가는 배에다 몸을 싣고 시나위의 파장에 혼을 싣는다.

딱히 정해진 악기는 없다. 사물놀이처럼 곡이나 역할이 확실하거나 요란하지도 않다. 거문고나 가야금이 없어도 되고 아쟁이 없으면 해금으로 대신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한 사람이 여러 악기를 번갈아 가면서 연주하기도 하고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연주를 해도 어색하지가 않다. 서슴없이 서로의 영역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것 같지만 모두가 합주의 물결에 맞는 자신의 소리를 낸다. 시나위는 무정형 악장의 육자배기 가락을 바탕으로 불협화음도 서로 잘 어울리게 한다.

유년시절 할머니를 따라 굿판에 간 적이 있다. 굿을 한다는 소문만 들려도 온 마을이 술렁거릴 때였다. 농사만 짓는 농촌에는 마땅한 구경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이었다. 왜 굿을 하는지보다는 어떤 무당이 오는지가 더 큰 관심사였다. 오방색 천 조각을 달고 굿하는 집 담에 기대고 서 있는 대나무가 구경꾼들을 불러 모았다. 해가 채 지지도 않은 해거름이지만, 이슬과 서리를 막아주는 흰 광목 차일 안에는 여러 개의 등불이 걸렸다. 어둠이 짙어지자 멍석에 내려와 있던 희미한 불빛이 점점 밝아졌다.

하얀 수건을 이마에 동여맨 무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코가 오뚝 선 하얀 버선이 사뿐사뿐 들어오면 지켜보는 구경꾼들은 자리를 고쳐 앉고 침을 삼켰다. 굿판 한쪽에 자리 잡은 연주자들도 악기를 무릎 가까이 당겼다. 준비가 끝나자 장구가 먼저 정적을 깨고 굿판의 시작을 알렸다. 방석에 앉은 악사들이 육자배기 가락을 연주하면 장구재비는 추임새를 넣고 징잡이는 무당의 말을 받아 굿판을 달구었다.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빨라지던 시나위는 자연스럽게 어깨가 들썩거리는 자진모리장단으로 바뀌었다. 장단이 격랑을 이루자 연주자도 무당도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접신(接神)의 굿판으로 몰고 갔다. 구경꾼들마저 어깨를 들썩이면 지켜보던 등잔의 불꽃도 그을음을 마구 흔들어댔다.

풀밭 무대를 둘러본다. 작심하고 들여다봐도 연주자는 보이지 않는다. 강변을 따라 걷는 내내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귀뚜라미의 애절한 소리가 길게 이어지면 가던 발걸음을 잠시 멈춘다. 잔잔하게 흐르던 평조가 애절한 계면조로 바뀌고 다양한 선율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보면 고수가 분명하다. 못 들은 척 외면해도 전혀 개의치 않고 연주를 이어간다. 누구는 가을 풀벌레 소리가 처량하다고 하지만 내게는 애절하게만 들린다. 가을 하늘의 달빛이 차가워질수록 그 소리는 더 크고 진하게 다가온다.

세상은 쉼 없이 각자의 소리를 낸다. 날이 갈수록 엇박자와 불협화음이 늘어난다. 그러나 여러 악기가 모여 나름대로 질러대는 불협화음도 서로 청을 맞추면 하나의 변주곡이 된다. 합주 속에 자신만의 소리 색을 가진 시나위 같은 세상이 훨씬 살맛 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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