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 고운 시월이다. 벼가 출렁이던 들녘이 온통 마늘 논으로 변해간다. 갈 길 먼 나그네처럼 조급해진 농부들이 가을일을 서두른다. 콤바인이 벼를 베 넘기는가 싶더니 떡시루처럼 논이 갈리고 마늘이 심어지는 게 순식간이다.
들판 변하는 정경이 수채화 물감 번지는 듯하다. 트랙터 엔진 소리와 파종기 철컥대는 마찰음이 들판을 뒤덮는다. 마치 수많은 식판을 덜그럭 대며 먹는데 몰두하는 훈련소 식당같이 수런거린다. 특유의 그 분위기에 젖어들면 누구나 뚝딱 먹고 얼른 일어서기 마련이다. 일 철 동네 돌아가는 품세가 어찌 그리 닮았는지 고즈넉하던 시골이 모처럼 활기차다. 왕성한 생존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마늘을 심는 방식이 두 가지가 있다. 자동식 파종 기계와 수동식 유공 마늘이다. 유공 마늘은 순전히 사람 손으로 심는다. 촘촘한 비닐 구멍에 하나씩 마늘쪽을 박아 넣는다. 5 조니 66 조니 한꺼번에 여러 쪽을 심는 파종기를 마다하고 유공을 선호하는 까닭이 있다. 기계식 파종보다 일찍 심어 소출이 많고, 마늘 싹을 뽑아 올려야 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다. 씨 마늘도 헤프지 않아서 적게 든다. 농사기법도 유행을 타는지 이태쯤 전부턴 너나없이 유공이다. 하지만 일손 부족이 문제다.
‘본동 할매’ 집 일손 도우미는 대구 쪽에서 왔다. 인도나 필리핀을 누볐음 직한 낡은 봉고가 논머리에 서자 한 무리가 내렸다. 챙 넓은 모자를 쓴 복면 차림이라 국적은 물론 남녀노소조차 식별이 잘되지 않는다. 컵라면이 배분되고, 커피로 입가심하면 요기가 된다. 집집이 얼추 고정된 메뉴니 안 봐도 척이다. 그 사이 할머니는 씨 마늘을 비닐 위에 흩뿌려 놓는다. 아내가 까준 마늘쪽도 섞여 있을 것이다.
새참 먹을 때 봤더니 까무잡잡한 외국 청년 두엇이 끼어있다. 어찌하다 품을 팔러 이역만리 시골구석까지 왔을까, 집 떠나면 고생이라 마음이 짠하다. 내 마음을 알기나 할까, 뭉그적거리며 마늘 꼽기에 열중할 뿐이다. 할머니가 연신 구시렁대며 손짓·발짓으로 뭐라고 하는 걸 보니 일손 수준이 알만하다. 아는 게 OK뿐이지만, 간간이 웃음꽃도 핀다.
광풍이 지나듯 마늘심기가 끝났다. 온 들판이 스프링클러나 점적 호스로 물을 흠뻑 준 터라 우후죽순처럼 마늘 싹이 돋아 올랐다. 닥쳐올 겨울을 어찌 나랴 싶지만 푸른 잎 그대로 견디는 마늘이다. 그런데 아뿔싸! 할머니네 마늘 논만 휑뎅그렁하였다. 아내와 나는 들녘을 오갈 때마다 “어허 이 집 참 낭팰세.” 하며 혀를 끌끌 차곤 했다. 한두 마지기래야 말이지, 허리 수술한 할머니 처지에 곰보딱지같이 빈 구멍을 어느 세월에 다 메우랴. 비싼 품을 다시 들이긴 뭣 할 텐데 싶어 주제넘은 걱정이 늘어졌다. 동네 사람들도 종자 탓에 발아율이 낮은 거라 수군거렸다. 나는 어둔한 외국사람 탓에 더할 거라며 아내에게 입단속을 시켰다.
불난 집에 부채질할까 싶어 쉬쉬하며 지켜본 지 얼마나 지났을까. 쥐 뜯어먹듯 뻐끔뻐끔하던 논이 마늘 싹으로 파릇파릇 채워지고 있는 게 아닌가. 대기만성大器晩成도 유분수지, 희한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시월의 마지막 날 아침이었다. 마늘 논에 엎드린 할머니를 발견하곤 경운기를 멈췄다.
“할매요, 허리 아픈데 뭐 하시니껴?”
“마늘 안 빼 올리나.”
뚫린 구멍을 찾지 못해 비닐 속으로 자라는 마늘 싹을 밖으로 빼는 작업이다. 그러고 보니 온 논이 겨울 보리밭처럼 풋풋하다. 빈 구멍마다 추가로 마늘을 심지 않을까 싶은 추측이 빗나갔다. 알고 보니 양수기를 수리하느라 물을 늦게 푼 탓에 발아가 늦었단다. 오지랖도 넓지, 그런 줄도 모르고 아이고 두야 이 석두石頭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