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시 / 공순해

 

 

이제 시간은 곧 옷을 벗을 것이다. 산봉우리 안개 풀어지듯, 밤송이 아람 벌어지듯, 그러면 속절없이 속살을 드러내게 되겠지, 대지는 거부할 수 없는 힘에 무장 해제 당하듯 나신을 드러내겠지. 그때 우리는 다시 그의 맨살을 만져 보게 될 것이다.

그땐 비발디를 들을까? 비발디는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나누며 술과 춤으로 잔치를 벌이는 가을 광경을 음악으로 묘사했다. 그래서 그 음악을 음시(音詩)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음시는 가을에만 있지 않다. 봄이 되면 그리그의 『아침』을, 여름이면 베토벤의 『전원 교향악』을, 가을엔 운명의 물레를 돌리며 부르는 『솔베이지의 노래』를, 겨울이면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듣는다. 혹자는 위의 곡들이 음시냐고 되물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 음시이고, 이런 음악이 있어 위로가 된다.

그럼, 그림은 어떨까, 봄이면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 차오르는 생명을 느껴 보고, 여름이면 정조(正祖)의 『파초도』를 즐긴다. 화폭을 둘로 가르며 중앙의 밑에서 위로 솟구쳐 오르는 파초, 넓은 잎사귀에 도르르 구르는 순정한 물방울들이 보일 듯한 파초, 아마 그가 왕이기에 보이는 기상이며, 고귀한 성정이기에 느껴지는 섬세함일지도 모른다.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자신감 넘치는 붓질, 유쾌 상쾌 통쾌의 결정판, 그런 이의 곧은 성품이 그대로 느껴지는 『파초도』는 여름 완상용으로 제격이다. 가을이면 들판에서 비를 홀랑 맞으며 그림 그리다 병을 얻어 저세상으로 간 세잔의 『생트 빅트와르산』에서 충만과 쇠락의 질감을 느끼고, 겨울이면 거침없는 붓질의 대가인 김명국의 『설중귀려도』를 들여다보고 또 본다. 은설(銀雪) 속으로 길 떠날 나귀의 시틋한 표정엔 절로 웃음이 솟구친다.

음악과 그림이 이처럼 일상을 함께 한다면 문학은 어떨까? 요즘은 걸핏하면 국민 xx란 명칭을 붙이는데, 문학엔 국민 xx을 붙일 작품이 수두룩하다.

봄이면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부르며, 박목월의 『윤사월』에서 ‘산지기 외딴집 눈먼 처녀’를 사모했고, 오월이 오면 노천명의 『푸른 오월』에서 ‘계절의 여왕 오월’을 우러렀으며, 김영랑의『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아직 나는 나의 봄을 기두리고 있을래요.’하며 인내를 배웠다. 초하(初)가 되면 또 어떠한가, 육사의 그 그리운 구절‘내 고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 『청포도』를 읊조리며 7월을 보냈다. 그리고 가을이 오면 한국인에게 반백 년 회자된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와 더불어‘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을 그리워했다. 하여 드디어 겨울 김광균의 l『설야』, 눈 오는 밤의 소리가 ‘먼 곳에서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들린다던 그 에로틱하고 신선한 발상에 가슴 졸이며 청춘을 완성했다.

이제 가을의 발소리가 사풋사풋 들려온다. 도르르 구르는 낙엽들, 그러기에 가을은 낙엽을 태우면 갓 볶은 커피 냄새가 난다던 이효석의 가을이다. 한국인 누구나 고교 시절만 거치면 그로 해서 커피에 대한 향수를 갖게 됐다. 한데 그는 낙엽은 꿈의 시체라고 했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더욱 생활인이 된다고도 했다. 삶에 활기가 돈다는 말일게다. 왜 그는 가을에 활기를 느꼈을까? 침잠하는 우주 속에서 활기를 느낀다니 그도 참 독특한 사람이다. 어쨌거나 한국인은 『낙엽을 태우며』 와 더불어 서양 풍습의 생활양식을 동경하며 성인이 됐다.

그리하여 그 문구들은 생활 숙어가 됐다. 한국인 누구에게나 5 월은 계절의 여왕이며, 7 월은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고, 가을의 낙엽은 커피 볶는 냄새가 나는 것이다. 일종의 진부한 습관어다. 단물 다 빠진 껌같이, 문학으로서의 사명을 다 한 셈인가, 하니 이젠 생활 숙어도 세대교체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체할 만한 것들이 있던가?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더라』?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 ?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입에 익은 말은 『홀로서기』 일 것이다. 이 말은 80년대 여성 잡지사 기자들이 만들어 낸 조어(?)인데, 결정적으로 쇄기 박은 사람은 서정윤이다. 문학적 성취와 상관없이 이 말은 곧 인기어가 돼, 그의 시집『홀로서기』는 낙양의 지가를 올렸다. 이 말이 그의 시에서 관습어로 확정됐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도 즐겨 이 말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약하다. 좀 더 풍부하게 생활 감정을 담아낼 문학어가 필요하다. 앞으로 누가 있어 한국인의 정서를 풍부하게 해 줄까?

어떤 시가 있어 국민 시(國民詩)에 등극하게 될까?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이 정도 가지곤 턱도 없다. 글 쓰는 사람들의 책임이 참으로 막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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