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늠 / 김순경
다시 CD를 굽는다. 휴대전화기에 녹음된 소리 파일이다. 몇 달 전에도 배우고 있던 판소리를 편집한 적이 있다. 출퇴근 시간에 듣다 보면 아무리 극심한 교통체증도 답답하지 않고 조급함도 사라졌다. 여러 번 접하다 보니 사설과 장단이 낯설지 않고 숨어 있는 시김새와 독특한 성음도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명창의 소리만 갖고 다녔다. 차에다 준비해두고 틈만 나면 틀었다. 늘 귓등에 머물렀던 소리가 어느 날부터 조금씩 귓속으로 들어왔다. 따로 놀던 장단과 흩날리던 사설이 귀에 익자 산만하던 사연이 줄줄이 엮이기 시작했다. 어쩌다 모르는 가사가 나오면 신호를 받을 때마다 복사해둔 책자를 펼쳐 확인했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 고어나 고사성어가 많아 확인하지 않으면 맥이 끊겨 전후 사정을 알 수가 없었다. 특히 남도 사투리가 진하게 배어나는 부분은 여러 번 반복해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춘향가 중 <쑥대머리>를 자주 들었다. 옥중에 갇힌 춘향이 오지 않는 서방님을 생각하며 한탄하듯 구슬프게 이어가는 눈대목은 명창 임방울의 데뷔곡이다.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창법으로 단번에 최고의 명곡으로 만들었고 타고난 천구성과 오랜 수련으로 얻어진 걸걸하고 쉰 듯한 수리성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임방울의 더늠이 되었다. 선생은 창극이 성행하던 시절에도 한눈팔지 않고 동편제와 서편제를 두루 섭렵하여 판소리 다섯 마당에 정통하였다. 언제나 특유의 방울목으로 공연장을 뜨겁게 달구었고 즉흥적으로 개작하는 능력까지 탁월해 명창을 넘어 국창이라 불리기도 했다.
더늠은 경지에 오른 소리꾼이 독특한 성음과 가락으로 다듬은 판소리를 말한다. 《조선창극사》를 보면 손꼽을 만한 명창들은 대개 더늠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오랜 세월 전승된 전통적인 소리를 시대의 흐름에 맞게 새롭게 단장하여 자신의 대표 소리로 만들었다. 뛰어난 소리꾼은 소리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연주와 작곡 능력도 갖추어야 할 덕목이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크게 인정받지 못해도 경쟁적으로 시도하다 보니 판소리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처음부터 민요를 좋아한 것은 아니다. 유년 시절 밤마다 이어지는 형님들의 하모니카와 기타연주에 세뇌되어 동요보다 유행가를 좋아했고,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서도 소리와 농악을 배우면서 전통 가락에 매료되었다. 두꺼운 쇠가죽의 떨림과 둔탁한 나무통의 진동이 어우러지는 소리북의 장단에 끌렸다. 수많은 장르 중에서도 자연의 소리까지 품어주는 판소리를 듣고 있으면 답답한 가슴이 후련해졌다. 운전 중에도 전통 가락이 나오면 바로 채널을 고정하고 볼륨을 높였다.
단가를 한두 곡 배우고 판소리를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나만의 소리를 다듬고 싶었다. 어디 가서 자랑하고 거들먹거리려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고함을 지르며 반복해도 가슴속 응어리를 녹이고 토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수없이 흥얼거리고 불렀지만 늘 허기를 느꼈다. 이미 여러 사람 앞에서 불러본 경험이 있어 늘 하던 대로 단전에 힘을 주며 중모리장단으로 천천히 밀고 갔다. 북도 잡지 않고 가만히 듣고 있던 스승은 노래가 끝나도 반응이 없었다. 어디를 가도 박수받으며 얼씨구 소리를 들었는데 정적이 이어지자 등에서 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순간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군에 있을 때였다. 틈만 나면 유명 화가들의 화풍을 감상하며 흉내 냈다. 화선지를 펼쳐놓고 먹만 갈아도 마치 화가가 된 것 같았다. 먹물이 화선지에 스며들면 농담을 달리하는 산들이 겹겹이 쌓여가고 사물이 형체를 드러냈다. 잘 아는 화가가 있다는 후임자의 말을 듣고 평을 받아보기로 했다. 가장 잘 그린 그림 한 점과 당장 나갈 수 있는 외박증을 끊어 주었다. 배운 적이 없는 그림이라 약간 긴장되었다. 귀대한 후임자는 선뜻 말을 꺼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고 했다. 그때도 순간적으로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현기증이 났다.
정적을 깨고 한마디 한다. 장단은 제쳐두고 시김새가 없다고. 음식을 만들면서 양념을 치지 않은 격이다. 물에 물 탄 듯 밍밍한 소리는 남도의 소리가 아니다, 깊고 진한 맛이 없는 음식처럼 감흥이 없으면 단순한 흉내에 불과하다, 꺾고 떨고 밀고 나가는 기교가 없으니 사설 내용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다, 평생을 갈고 닦은 소리꾼도 시김새가 잘되지 않는 날은 애를 먹는다며 소리의 맛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판소리를 가요 부르듯 불렀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시김새도 모르면서 소리 공부를 시작했다. 당연히 전통 장단이나 가락도 잘 몰랐다. 귀동냥으로 겨우 몇 대목 따라 하다 보니 용어부터가 생소한 것이 많았다. 정상적으로 배운 적이 없는지라 처음 듣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기가 죽었다. 한동안 마음먹은 대로 장단을 타지도 못하고 목청도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지금 배워서 뭐 하겠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이왕 시작한 것 한 곡 정도는 배워보고 판단하기로 했다. 스승의 추임새를 업고 복식과 단전호흡으로 기를 모아 소리를 지르다 보면 금세 땀범벅이 되었다. 단가 하나 배우러 왔다가 지금은 판소리 다섯 마당의 눈대목을 차례로 배우고 있다.
열심히 한다고 소리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갈고 닦아도 분명 한계가 있다. 인간의 능력이 무한하다고 하지만 다 이루지는 못한다. 혼신의 노력을 다해도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다. 유명한 스승을 찾아다니며 사사하고 산속에 들어가 오랜 세월 독공을 해도 자신만의 소리를 얻기는 어렵다. 지나치게 스승의 소리를 흉내 내다 보면 박음 소리라는 말을 듣는다. 때가 되면 둥지를 떠나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그래야 내공이 쌓이고 근육이 생겨 한 단계 높은 경지에 오를 수가 있다. 오늘도 많은 소리꾼이 피를 토하듯 소리를 지르며 더늠을 찾아 헤맨다.
인간은 늘 새길을 갈망한다. 누구의 발길도 스치지 않은 새로운 세상을 찾아 몸부림친다. 설사 그 길이 가시밭이고 천 길 낭떠러지라 해도 포기하지 않는다. 어떠한 작은 길도 저절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누군가의 처절한 노력과 희생의 결과물이다. 설사 하찮은 짐승이 다니는 길이라 해도 다르지 않다.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수 있기에 함부로 갈 수도 없다.
교통체증이 또 시작된다. 새로 만든 CD를 넣자 성글고 풋내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탁 트인 통성이나 절묘한 시김새도 없지만, 장단 맞춰 흥얼거리고 추임새를 넣다 보면 빠르게 젖어든다. 이제는 빨간 신호가 아무리 길어도 서두르지 않는다. 더늠 한 대목을 얻으려면 참고 견디는 인내심부터 길러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