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새벽/ 고양이
새벽은 고양이 발걸음처럼 조용히 온다. 한껏 발효된 공기가 어둠의 등을 들어 올리면 그 사이로 가만가만 스며든다. 바닥에 엎드려 있던 새벽이 높은 빌딩까지 올라가려면 살아 있는 것들의 생생한 숨소리가 필요하다. 밤의 지친 육신을 벗고 생기로워지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이 빛을 깨운다.
새벽은 얇고 투명하다. 두꺼운 어둠을 뚫고 나왔기에 새초롬하고 새뜻하다. 밤이 지쳐 나가떨어질 즈음, 남은 마지막 기운이 새벽의 살 속으로 옮겨 온다. 폐기 처분된 희망과 촉을 세우려는 절망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간을 지나고 나면 새벽은 없는 듯 찾아온다.
저녁이 소멸하면서 잉태한 희미한 빛 속에는 가 버린 시간과 남아 있는 시간이 넘나든다. 저녁의 발길질에 차여 상처가 난무하는 도시의 옆구리 속에는 비애가 웅크리고 있다. 어둠이 슬픔을 다독이는 소리가 절정에 달하면 빛은 오히려 현란하고 이성은 마비된다. 새벽이 태어난 자리에서 진한 살냄새가 나는 건, 누군가가 어둠을 밀어내기 위해 몸부림친 흔적이 남아 있어서다.
도시의 밤은 추상의 세계다. 불면과 수면이 공존하고 또렷하지 않은 윤곽들이 밤길을 서성인다. 허공을 떠돌던 소음과 발소리는 건물의 귀퉁이에서 어설픈 잠을 청하고 오직 절박한 숨소리만이 고요한 침묵을 흔들고 지나간다. 도시의 새벽은 계단처럼 층을 이룬다. 하늘과 맞닿은 꼭대기의 채도가 다르고, 땅을 디딘 바닥의 명도가 다르다. 서 있는 자와 앉아 있는 자, 엎드린 자의 시선처럼 어둠도 빛을 달리한다.
고양이가 물고 다니던 깊은 허기와 외로움은 고독한 눈빛을 지나 하현달에 다다른다. 빛과 빛의 교감, 사그라드는 달빛과 허무의 눈빛은 절박함이 닮아 있다. 새벽이 하현달을 앞세우는 건 부담스럽지 않은 빛이 가진 절제 때문이다. 미세한 촉수를 뻗은 안개가 희미한 달빛을 품을 때 새벽은 만물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직업과 삶의 질에 따라 나뉜 새벽을 바라본 지 오랜 날들이다. 인공의 빛 속에서 도시는 깨어 있으려고 발버둥 친 흔적이 보인다. 밤새 불을 밝힌 경비실은 새벽이 슬쩍 비켜 간 자리이다. 밤낮이 뒤바뀐 사람들에게는 저녁 어스름이 새벽빛처럼 희끄무레할지도 모른다. 불 켜진 어느 집에는 전날의 피로가 쌓여 있고, 불 꺼진 창에는 밤의 여운이 웅크리고 있다.
환한 대낮에 각을 세웠던 건물들이 새벽이면 일제히 모서리를 버린다. 사람들의 아우성과 분노가 고여 만들어진 모서리, 날카로운 선과 선이 만난 직각이 새벽빛 속에서는 면으로 보인다. 아마도 모서리는 그 시간 참선에 드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세울 수밖에 없음을 알기에 부서지지 않도록 건물은 조용한 틈을 타 명상에 드는 것인지도…. 건물이 둥그렇게 안으로 다듬어지는 시간, 어디선가 밤을 헤맨 고양이도 꼬리를 동그랗게 말고 나지막이 웅얼거린다.
어느 날부터인가 눈보다 귀가 밝아졌다. 전에 듣지 못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건 새벽이 서서히 몸에 깃들면서부터였다. 소리는 몸속에 저장된 어떤 이미지처럼 또렷했다. 현실인지 착각인지 알 수 없는 날들이 얼마간 이어졌다. 몸을 일으켰을 때 어디선가 고양이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별이 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창밖에는 하현달이 절대의 고독인 양 떠 있었다.
짙은 어둠 속에서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었다. 인시(寅時), 4시를 막 지나 5시로 흐르던 시간이었다. 명징한 달빛 속에 오래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기운이 흘렀다. 절대의 고요는 아름답고 아득했다. 고요한 시간은 그렇게 나에게로 왔다. 오랜 날들을 거쳐 소리로, 감각으로 왔다. 육체가 아닌 의식이 이끄는 힘이 새벽을 불렀다. 그건 살고 싶은, 살고자 하는 간절함이기도 했다. 의식이 점점 옮겨 오면서 저절로 엷고 푸른 새벽빛에 감각이 요동친다. 불면 속에서 어느 한때 동경했던, 간절했던 시간이다.
새벽을 찾으면서 밤을 놓았다. 아니, 놓아 버리고 싶은 밤이기도 했다. 밤은 한때 야차의 목덜미처럼 두려운 것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시간일지 모르나 밤은 내게 견딤의 나날이었다. 안락과 평온, 쉼과 여유를 잃어버린 밤을 건너뛰어 새벽으로 치닫고 싶었던 열망이 심연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었을까. 아니면 무의식 깊은 골짜기에 숨어 있는 내면 아이의 바람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두려움을 씻어 낼 푸른 기운이 필요했다. 시작을 모른 채 체화되어 버린 불안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새벽은 한동안 도피의 시간이었다. 삶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밤을 건너뛰고 싶던 갈망이 불러온 의식이었다. 이제 스스로를 도닥거리고 싶은 시간 앞에 헝클어진 기억을 펼친다.
새벽을 몸속에 들이면서부터 혼자라는 게 기껍다. 푸른 지구의 나뭇가지에 올라앉은 것처럼 몸과 마음이 투명해진다. 시르죽어 있던 의식을 채우는 갓 맑은 평온의 냄새 속에서 한낮의 번잡함을 잊는다. 도시의 핏줄처럼 이어진 도로에 선 나무의 몸 터는 소리가 들린다. 나무가 일으킨 바람으로 공기는 알맞게 삽상하다. 모서리가 둥글어진 건물 사이로 대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세포를 낱낱이 깨운다. 지나간 시간의 어디쯤, 깃들어 있던 풍경이 왈칵 다가오는 중이다.
그때도 둥근 초가 위를 비추던 하현달은 오늘처럼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맑은 정화수 앞에 비손하는 정결한 손과 달빛 사이로 다만,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무것도 끼어들면 안 될 것 같은 신성한 기운을 지키던 그 둥근 등, 어머니의 하얀 저고리가 푸른빛을 머금었을 때 내 나이 열네 살이었다. 무엇이 그토록 간절했기에 새벽마다 달빛에 몸을 푸셨을까. 어머니가 딱히 말해 주지 않아도 알게 된 간절함이 수년을 거쳐 내게로 이어졌다.
탁 트인 마당이 아닌, 딱딱한 마루에 발을 딛고 서서 새벽바람에 손을 씻는다. 정화수 대신 풀지 못한 인생의 문장 하나 허공에 걸어 놓고 달빛의 조언을 듣는다. 아아, 이 찬란한 외로움이여. 스스로 터득한 진실에 야릇한 환희가 차오른다. 오직 지금만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이 가슴에서 요동친다.
동글게 몸을 만 고양이가 야윈 달 속으로 기어든다. 달은 어느덧 자신의 색을 버리기 시작하고 건너편 건물은 숨긴 각을 내민다. 새벽은 남은 어둠을 토닥거리며 마지막 책장을 가만히 덮는다.
<아르코문학창작지원금 발표지원 선정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