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또 수족관 앞이다. 계절 음식점‘다도해’의 주꾸미 수족관은 출근하듯 드나드는 구립도서관 길목 횡단보도에 면해 있다. 수족관 옆 플라스틱 화분에는 늙은 동백나무가 기를 쓰고 피워낸 붉은 꽃송이들이 뚝뚝 떨어지면서 봄날을 뜨겁게 만들고 있다.
오늘 수족관은 새 물로 가득 채워졌다. 새로 입수된 주꾸미들이 연갈색 물방울무늬가 수 놓인 물갈퀴를 우산처럼 활짝 펼치며 헤엄을 치고 있다. 좁은 수조 안이지만 미끈한 머리로 물을 가르면서 힘차게 발을 쭉쭉 뻗치고 하얀 빨판을 하나하나 세우면서 무희의 춤 선처럼 섬세한 모양을 만들기도 한다. 그중 성마른 놈 몇은 여덟 개의 발로 제 몸을 칭칭 감은 채 눌러놓은 꽃처럼 유리 벽에 따닥따닥 붙어서 머리통이 부어오르도록 거친 숨을 내쉬고 있다. 낚시꾼들이 던져놓은 피뿔고둥이나 반짝거리는 캔 속에 들앉았다가 졸지에 잡혀 왔지만 그래도 아직은 견딜만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꾸미들의 움직임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다도해 주인이 봄철의 별미가 싱싱하게 살아있도록 쉴 새 없이 찬물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수족관의 온도가 봄 바다처럼 따뜻하면 주꾸미들이 활발하게 유영을 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서로 부딪혀 자극을 받은 녀석들끼리 물어뜯기 때문에 움직임을 최소화 시키려는 것이다. 하루 또 하루, 살아남은 주꾸미들은 체온 조절을 위해 제 몸을 칭칭 감고 수조 바닥에 붙어 있거나 알이 가득 찬 머리를 늘어뜨린 채 속수무책 유리 벽에 매달려 있다. 그들이 헤엄치던 푸른 연안의 따뜻한 물을 그리워하면서.
그날도 그랬다. 수족관에 입수된 지 사흘째. 날마다 도서관을 오가면서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넸지만 그새 안녕하지 못한 주꾸미들이 벌써 반 이상이었다. 북적대는 정오의 낌새를 알아챈 듯 수족관 바닥에 잔뜩 웅크리고 있는 녀석들 중 하나가 문득 움직이기 시작했다. 녀석은 조금씩 빨판을 움직여 반질반질한 유리 벽을 타고 위로,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는 물을 공급하는 호스 때문에 살짝 벌어진 틈새로 달걀 같은 머리통을 들이미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온몸을 수족관 밖으로 빼내는 게 아닌가. 어! 하는 순간 녀석은 봄날의 햇살 한 줌 잡을 새 없이 그대로 보도블록으로 떨어졌다. 납작해진 주꾸미는 충격이 어지간했는지 죽은 듯 미동도 없더니 갑자기 파르르 다리를 떨었다. 웃음과 한탄이 동시에 터졌다.
마침 초록불로 바뀐 횡단보도를 건너려다가 뜬금없이 주꾸미의 삶과 죽음의 향방이 내 손에 있다는 거창한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끓는 물 속으로 들어갈 것, 지금 수조 안에 넣어 몇 시간 연명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머뭇대다가 그래도 지금 이 순간 살아 있으니까, 하는 생각에 서둘러 주꾸미를 집어 수족관에 넣었다. 탈출 미수에 그친 녀석은 제 몸을 둘둘 말고 가만히 엎드려 있다. 내가 녀석을 보자 녀석도 날 빤히 쳐다보았다.
어쩌다 우리는 이 자리에 있는 걸까?
나는 올해 초, 확신했던 재임용에 실패하고 학교를 떠나야 했다. 마음으로는 교실 문설주를 움켜쥐고 뻗댔지만, 손으로는 짐을 싸면서 머리가 부풀어 터질 것만 같았다. 십수 년 동안 쉬지 않고 해오던 일이 하루아침에 무 자르듯 없어지고 차고 넘치는 지루한 나날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엉클어져 날 덮쳤다. 학교 이전에는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지 거짓말처럼 생각나지 않았다.
너는 연안의 시간이 생각나니? 내가 묻자 주꾸미는 알이 가득 들은 머리통을 떨구었다.
백화난만의 화사한 봄날, 어미 주꾸미들은 알을 낳기 위해 따뜻한 물과 먹이를 찾아 서해 연안으로 몰려든다. 그리고 머리에 가득 품은 알을 무사히 낳기 위해 피뿔고둥 안으로 들어간다. 알을 낳은 어미 주꾸미들은 오이씨 같이 미끈하고 예쁜 알을 빨판으로 세심하게 닦아주고 들숨날숨 잘 쉴 수 있도록 물도 흘려보내 주면서 그렇게 보살피고 지키다가 마침내 탈진하여 죽는다. 그러니까 어미 주꾸미들의 꿈은 안전하게 알을 낳고 새끼들을 지키다 죽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주꾸미의 습성을 이용해 피뿔고둥의 껍데기에 구멍을 뚫거나 아예 플라스틱 소라 방을 만들어 주꾸미들을 유인한다. 더러는 다도해 주인장처럼 맥주 캔을 줄줄이 매달아 바다 밑에 가라앉히기도 하면서.
내 꿈은 무엇이었을까? 훌륭한 교사? 따뜻한 선생님? 나는 남편이라는 소라 방에 안주하느라 너무나 쉽게 학교를 떠났다. 그리고 중년이 되도록 몇 번이고 뒤통수치는 삶의 속성에 밀려 기간제 교사가 되어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새로운 세상은 차가운 물줄기를 퍼붓는 날이 더 많았지만 힘차게 유영하다 보니 내가 지켜야 할 것들을 꿈꾸며 살게 되었는데, 이제 또 어찌해야 하나.
녀석들은 수족관 안에서 땡땡이 물갈퀴로 물방울을 퉁기며 힘차게 유영한다. 이제 곧 지는 봄을 끌어안고 끓는 물 속으로 들어갈 테지만 아직은 꿈틀거리는 생이니까.
탈출을 감행했던 녀석은 이제 없다. 그날 이후로 다도해 주인은 수족관 물갈이를 두 번쯤 더 했으니까. 어미 주꾸미는 펄펄 끓는 육수 국물로 들어가는 순간 떠올렸을까? 수족관 위에 섰을 때 부시게 쏟아지던 푸른 햇살을, 그리하여 제가 품은 알들이 반짝반짝 투명하게 빛나던 순간을. 어쩌면 그 모험의 기억이 그를 행복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얼마 전, 집에서 꽤나 떨어진 어느 시골 중학교에 채용지원서를 냈고 서류전형에 합격해 수업 시연을 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남편이 먼저 펄펄 뛰었다.
“있던 학교에서도 나이가 많아서 재임용이 안 됐는데 딴 학교에서 합격이 되겠나? 형식적으로 3배수를 맞추려는 거야. 왜 그리 현실감이 없어. 이제 미련 좀 그만 떨어. 애들도 다 컸고 당신, 그만하면 할 만큼 한 거야.”
쉬어서 맘고생 중인 날 보고 아들도 이제 좀 쉬라면서, 집 떠나 혼자 사실 거냐고 에둘러 말렸다. 그래도 나는 수업 시연 지도안을 작성하며 즐겁다. 입시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중학교라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여러 가지 수업모형을 구상하면서 도서관에서 참고자료도 찾아보고 틈틈이 가족도 설득하면서 모처럼 피가 뜨겁다.
아직은 움직임이 활발한 입수 첫날인데 수족관 밑바닥에 가라앉은 어미 주꾸미 몇 놈이 꿈쩍도 않는다. 죽은 걸까 싶어서 무릎을 굽히고 수족관에 눈을 바짝 대고 들여다보니 온몸으로 불룩불룩 분기탱천한 숨을 내쉬고 있다.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살갑게 말 건네는 나를 향해 녀석은 온 힘을 다해 빨판을 곤두세우고 쭉쭉 발길질을 해댄다. 도서관을 오가느라 하루에 두 번은 만나는 너와 나, 우린 어쩌다가 여기서 만났을까? 내가 묻자 녀석은 살아있으니까, 라면서 거품까지 문다.
부른 배를 잔뜩 내민 아내를 앞장세우고 젊은 부부 한 쌍이 다도해로 들어간다. 사장은 종종종 수족관으로 와서 주꾸미들을 뜰채로 건져가면서 그 와중에도 잊지 않고 내게 퉁을 놓는다.
“거, 구경도 사 먹어 가면서 하소.”
제 눈을 뜨고 맨 처음 본 세상은 고둥 속이었지. 따뜻한 그 기억 때문에 어미가 된 주꾸미들은 고둥 속으로 들어갔지. 제 어미가 품었던 꿈처럼 제 새끼를 지키지는 못했지만 이제 화창한 봄날, 저 산모의 몸으로 들어가 건강한 아기의 작은 뼈마디로 다시 태어나길.
죽음에 이르는 시간이야 저나 나나 알 수 없다. 이슬시간 만큼 가까이 와 있는지, 동백이 수십 번 피고 지고를 되풀이할 만큼 저편에 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 살아있으므로 탈출을 시도하고 꼬꾸라지기도 하면서 좁은 수조 안을 맹렬히 헤엄치고 있는 것이다. 늙은 나, 건강한 몸통과 팔다리로 땅에 서 있다. 무엇을 꿈꾸지 못하랴.
벽돌 다섯 장이 얹혀있는 수족관의 널빤지 뚜껑을 슬쩍 민다. 그리고 어미 주꾸미들에게 바다처럼 푸르른 봄 하늘을 한 뼘 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