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귀와 입 그리고 코 / 곽흥렬 -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오래전부터 알아 온 스님이 있다. 적막이 밤안개처럼 내려 깔리는 깊디깊은 산속에, 토굴을 파고 수십 년 세월을 참선으로 정진하던 눈 밝은 수행승이었다. 이름 모를 산새며 풀벌레들만이 스님의 벗이었다. 문명과 철저히 담을 쌓고 정진한 수도修道 생활은 영혼을 맑히고, 영혼이 맑으니 자연 마음의 눈으로 앞날을 내다보는 천리안이 생겨나게 되었던 게다. 이따금 도회의 시멘트 가루 묻힌 중생들이 찾아가 세상살이에서 입은 내면의 상처로 응어리진 가슴의 답답증을 하소연하면, 스님은 그때마다 시원스럽게 운세 풀이를 한 뒤 적절한 처방을 내려 주곤 했었다.
그랬던 스님이, 무슨 인연에서였던지 산속 생활을 접고 북적거리는 대도시로 거처를 옮겼다. 생활은 자판기처럼 편리해지고 육신은 양털방석같이 안락하게 바뀌었다. 하지만 이 생활의 편리와 육신의 안락이 스님한테는 그만 독약이 되고 말았다. 예전엔 그렇게도 훤히 보이던 마음의 눈이 한 치 앞도 분간 못 하게 완전히 멀어버린 것이다. “아! 내 눈이, 내 눈이……” 스님은 그 답답함을 쥐어뜯으며 깊은 탄식을 쏟아내었다. 수도승에게 있어 고행이 어째서 종요로운 방편인가를 새삼 헤아려 보게 만드는 대목이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첩첩산중에서 오랜 세월 도를 닦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의 우물을 들여다볼 수 있는 본능적인 눈이 떠지는가 보다. 그래서 속인들이 갖지 못한 신통력을 지니게 되는 모양이다. 이것은 어쩌면 그 누구에게나 가능성이 열려 있는 동물적 감수성 같은 것이 아닌가 한다.
삼십여 년 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근처에서 일어났던 대지진을 기억하리라. 그 지진의 여파로 거대한 쓰나미가 밀어닥쳤을 때, 수십만 명의 무고한 사람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은 엄청난 재변이 일어났었다. 하지만, 그런 처참한 상황 속에서도 동물들은 거의 화를 입지 않고 고스란히 살아남았다. 동물들의 본능적 감각이 그들의 목숨을 죽음으로부터 구해낸 것이다. 자연과의 소통이 멀어지면서 인간은 이 원초적인 기능을 깡그리 상실하고 말았다, 한때 예의 그 스님이 고이 간직하고 있었던 천리안을 그만 잃어버린 것처럼.
문명화는 자연과의 거리 두기다. 인간의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자연과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졌다. 문명은 우리에게 생활의 편리라는 당의정을 선물해 주었지만, 그 반대급부로 자연의 혜택으로부터 소외시키는 벌칙도 내렸다. 응달에서 햇빛을 받지 못하고 자라난 풀처럼, 문명의 안락함에 길들어 감으로써 인간은 시나브로 나약해져 왔음이 틀림없다. 외부의 작은 충격에도 맥없이 쓰러져 버리는 것은 필시 그런 연유일 터이다.
원시 시대에는 신발이라는 보호 장구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때 사람들은 으레껏 맨발이었다. 맨발로 산길을 걷고, 맨발로 바위를 오르고, 맨발로 들판을 쏘다녔다. 자연히 거친 대지의 호흡을 온몸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자연과의 소통이며 교감이다. 그 소통과 교감을 통해 그들은 자연의 성정을 익히고 자연과 친화하는 법을 배웠다.
시대가 바뀌고, 진화라는 이름으로 신발의 힘에 의지하면서부터 인간은 그만 흙의 숨소리를 놓치고 말았다. 이것이 자연과 멀어지기 시작하는 출발점이 된다. 자전거며 오토바이, 자동차 같은 탈것들의 발명은 그 거리를 띄워 놓는 데 결정적인 동인動因으로 작용했다. 그로 인해 흙의 숨소리뿐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안뜰에서 일어나는 울림조차 깨닫지 못한다. 예지력은 자연과 가까워질 때 열릴 수 있는 법이거늘, 거꾸로 자연과 멀어지다 보니 그런 감각들도 따라 무디어진 것이다.
집만 하여도 그렇다. 보다 꾸밈새가 소박했던 우리의 전통 창호는 바람의 기운이 자유자재로 드나드는 열린 구조였었다. 그 덕분으로 방 안에 들어앉아서도 대자연의 숨결을 고스란히 감지할 수 있었다. 새들이 주고받는 대화며 빗줄기가 켜는 노래를 들을 수 있었고, 함박눈의 속삭임을 알아차릴 수도 있었다.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서의 생활은 그러한 소통을 차단시켜 버렸다. 이중 삼중의 겹유리로 짜인 견고한 창문은 외부세계와의 접촉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폐쇄적인 공간에서는 바깥 날씨를 아예 잊고 산다. 창밖에 비가 오는지 바람이 부는지, 일기가 차가운지 따뜻한지를 감지하는 생래의 육감소자肉感素子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그저 사람들이 우산을 받치고 가면 비가 오는가 보다, 외투 깃으로 목덜미를 꽁꽁 감싼 채 종종걸음을 치면 바람살이 매운가 보다 하고 무성영화의 관객처럼 멀거니 바라다볼 뿐이다. 오늘날의 기계문명은 한시도 귀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쉴 새 없이 고막을 난타하는 가지가지 소음으로, 우리는 가슴속에서 울려 나오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 귀를 잃은 지 이미 오래다.
혀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현대인의 맛봉오리 세포는 식품첨가물의 과다한 사용으로 깡그리 망가졌다. 화학조미료의 강렬한 맛에 길들어진 우리 혀는 천연조미료의 은근한 맛을 읽어 내지 못한다. 노상 간편함에 젖어, 불러서 먹는 외식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제 엄마가 사랑으로 만들어 주는 음식엔 매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톡 쏘는 콜라의 맛을 알고 나면 담백한 물의 맛은 밍밍하여 먹히지가 않는다. 무미한 듯 깊은 미감을 지닌 우리의 우물물 맛, 정작 물리지 않는 것은 그 담백함에서 오는데도 말이다.
후각 기능은 또 어떤가. 인공 향에 익숙해진 코는 자연이 빚어내는 천연 향엔 무감각해진다. 꿈의 향수로 불리면서 전 세계 여성들을 매료시키는 샤넬 넘버 5도 동양란의 은은한 향기에는 비할 바가 되지 못하리라.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극적인 인공의 향에 익사 당하고 말았다. 게다가 노상 공장 굴뚝이며 자동차 머플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역한 배기가스에 찌든 코가 천연의 향을 감지해 내기란 애당초 틀린 것이 아닐까.
문명의 발달은 인간의 감각 기능들을 간단없이 퇴화시켜 왔다. 그 역작용으로 우리의 영혼의 뜰도 날로 거칠어지고 있다. 영혼의 뜰이 황폐화하다 보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살가운 정마저 함께 메말라 간다. 이웃과 서로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지내는 현대인들의 모래알 같은 관계 방식이 어쩌면 이런 갖가지 현상들과 얽히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내 배가 부르면 종의 굶주림을 살피지 못하듯, 내가 따뜻하니 남의 떨고 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이것이 참 편리해서 살기 좋다며 자랑을 늘어놓는 오늘 우리 삶의 현주소이다.
모르긴 몰라도, 원시인들의 감각 기능은 지금 사람들에 비할 바가 아니게 잘 발달해 있었음에 틀림이 없지 싶다. 그들은 본능적인 예지능력으로 천지자연의 미세한 변화와 떨림에도 곤충의 더듬이처럼 예민하게 반응했을 것이다. 일상에서 신변에 닥치는 위험을 감지해 내려면 항시 눈과 귀와 입 그리고 코를 열어 두지 않으면 아니 되었을 것이 아닌가. 그 싱그러운 산나물 같은 감각들이 새삼 귀하게 여겨지는 시대이다.
마음으로 세상의 모습을 보는 눈을 갖고 싶다. 마음으로 세상의 소리를 듣는 귀를 갖고 싶다. 마음으로 세상의 맛을 느끼는 혀를 갖고 싶고, 마음으로 세상의 냄새를 맡는 코를 갖고 싶다. 세상이 날로 어지러워져 가다 보니,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가 본래 지니고 있었던 이런 잃어버린 것들이 더더욱 그리워진다, 어릴 적의 그 풋풋했던 고향의 품이 못내 그리워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