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부고 / 최지안

 

화요일의 비. 봄비는 소나기처럼 내리지 않는다. 새싹들을 위해 살살 내리라고 자연이 배려해준 설정이다. 이 비에 작년에 떨어진 낙엽은 썩고 움튼 싹은 고개를 들 것이다. 그 사이 매화 꽃눈이 겨울의 봉제선을 뜯으며 카운트다운을 한다. 이미 기울어진 것들은 새로운 것들의 거름이 되라고, 그런 거라고 다독이듯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그의 페이스북에 들어가니 부고가 와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부고였다. 종이였다면 벌써 모서리가 해지고 구겨졌을 시간. ‘고 James님은 OO년 O월 O일 소천하셨습니다.’ 자신의 부고를 누군가에게서 댓글로 받은 사내. 페이스북에 누군가 그의 죽음을 메시지로 알린 것이었다. 그것을 끝으로 그의 페이스북엔 올라온 소식이 없었다. 한동안 연락이 없는 사람의 집에 궁금해서 갔다가 사망한 사실을 알게 된 듯 황망했다.

갈아놓은 커피를 비알레티 주전자에 꾹꾹 눌러 담아 끓인다. 커피 향 감도는 집안에서 비 오는 창밖을 바라본다. 커피는 향으로, 비는 소리로, 서로를 끌어당겨 한 장의 사진처럼 풍경을 만든다. 어느 시인이 그랬다. 빗소리는 비가 내는 소리가 아니라 비가 부딪치는 소리라고. 창밖의 비보다는 창 안의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자면, 창 안에서 본 창밖의 풍경, 누군가의 죽음보다 SNS라는 프레임을 통해 죽음을 보는 자신이 슬퍼지는 것이라고 해석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겠지.

잡곡들이 들은 병을 행주로 닦는다. 차르르 차르르. 병을 기울이면 낟알들이 기울어진 쪽으로 쏠리며 마찰음을 낸다. 흑미, 귀리, 현미, 보리, 콩, 찹쌀. 유리병 안에 든 낟알들이 내는 소리는 크기에 따라 다르다. 낟알의 입자가 크면 요란하게, 자잘하면 조용하게 나는 소리들. 무게 중심이 기울어지며 무거운 쪽으로 내려가는 소리. 그 소리에 마음이 내려갔다 올라간다. 이미 기울어진 어떤 생은 무게를 던지고 지금쯤 가벼워졌겠지.

언제부터였을까. 그러니까 작년에 그가 죽었고 그때부터 우리는 소통하지 않고 있었다. 소식을 올리지 않으면 그대로 잊히는 것이 그 세계의 특성이니까. 얼굴도, 나이도,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SNS 친구. 그는 가끔 기타를 연주하며 부른 노래를 올렸다. 노래는 잔잔했다. 적당히 허스키하고 낮았다.

화분을 테라스로 옮겼다. 비를 맛본 가녀린 잎사귀가 고개를 쳐들었다. 축하 난 ‘만천홍’을 받쳐주기 위해 따라온 미니야자다. 만천홍은 꽃이 지고는 얼마 살지 못하고 뽑혀나갔다. 곁방살이하던 미니야자는 저 혼자 남아 넉넉하게 화분을 차지했다. 미니야자의 생은 손바닥 뒤집듯 조연에서 주연으로 바뀌었다. 짧은 주연보다 길게 남는 조연. 나라면 어느 쪽을 선택했을까. 짧지만 강한 생일까. 길고 싱거운 생일까.

자신의 흔적을 미처 가져가지 못한 사내. 마지막 그가 남긴 노래는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였다. 향긋한 5월의 꽃향기가 목젖으로 넘나드는 40대, 혹은 50대 남자의 목소리.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것일까? 광화문 연가라니.

그는 지상에 없고 불렀던 노래는 SNS에 남았다. 가끔 고음에서 가늘어지는 노래는 생전 그의 존재 가치에 비하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노래가 그의 존재보다 무거울 수 없으니까. 그러나 지금 그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가 불렀던 노래는 남아 있어서 이제는 죽은 그보다 더 무겁다. 그만큼 인간은 가벼운 존재였던가. 그가 죽음으로써 그는 노래보다 더 가벼운 존재가 되었다.

매일 같은 풍경의 창밖을 본다. 어두워지는 책상 앞에서 저녁이 도착하는 것을 지키고 옆집 창에 불이 켜지고 보일러 연통에서 김이 피어오르는 저녁을 응시한다. 조심스럽게 울타리 위를 지나는 고양이의 보송한 발목을 쳐다보는 날은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는 행동. 무겁거나 가볍게 채색되는 일상들은 평온하다. 그러나 생이 기울어질 때 그런 일상은 간절하고 소중해지겠지. 그리고 어느 날에는 그 일상이 나보다 더 무겁게 남겠지. 내가 없는 지상에서 책이나 SNS에 남긴 사진이나 글이 남겠지. 주인은 없는데.

지금쯤 그는 희미해졌을 것이다. 그가 무거웠던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영혼을 거둬 존재의 중심 밖으로 가지고 나간 후 지상에 남겨진 그의 생물학적 육체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서를 밟아 거벼워졌겠지. 무거운 것은 거볍게 되었고 거벼운 것은 무겁게 되었다. 낟알이 무게 중심을 옮기듯 무겁다가도 가벼워지고 가볍다가도 무거워지면서 돌고 도는 것이겠지.

무언가 가슴을 뚫고 창밖으로 빠져나간다. 뚫린 사이를 빗소리가 채운다. 누군가 그의 계정을 삭제하고 탈퇴 처리를 하지 않는 이상 목이 쉬도록 노래를 반복할 사내. 하긴 지상에서는 타인이 장례식을 치러주지만 SNS상에서는 본인도, 누구도 장례를 치를 수는 없겠지.

SNS가 파놓은 무덤으로 걸어 들어간 남자. 그가 마지막으로 불렀던 노래를 듣는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간다고. 그래도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은 남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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