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젓 항아리 / 장경미 - 2022년 호미문학대전 흑구문학상
입이 푼푼한 항아리에 가을빛이 흥건하다. 각진 소금에 살찐 새우등이 톡톡 터지는 소리가 오후 햇살을 튕긴다. 소금의 짠맛에 구부렸던 고집마저 내려놓았는가. 딱딱하고 날카롭던 껍질이 흐물흐물 녹아내려 색의 절정을 이루었다. 뽀얗게 우러난 빛깔이 곱기도 하다.
작은 몸에 담았던 바다가 풀어져야 맛의 결정체를 이루는 추젓. 구룡포 조용한 마을 한 자락에서 가을의 깊은 맛을 내던 추젓이다. 배릿한 바다 냄새 속에 꾹꾹 눌러 보내온 추젓을 풀자 고모의 눈물이 철철 흘러넘친다. 소금과 새우가 만들어놓은 뽀얀 국물 속에는 고모의 처절한 삶이 녹아있다. 쉬이 놓지 못하고 떠나보낼 수도 없는 바다가 담겼다.
가을 바다를 넉넉히 품은 추젓을 고종 동생은 무척이나 좋아했다. 한 숟가락 듬뿍 떠서 콩나물국에 넣고 휘휘 저으면 베지근한 맛이 절로 우러났다. 동생은 경배하듯 국그릇 앞에 앉아 뱃일에 지친 허기를 채웠다. 하얀 쌀밥 한 공기를 말아서 게걸스레 먹고는 갈비탕보다 더 진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엄지손가락을 척척 치켜세우며 고모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게 했던 사내였다.
갯내를 후루룩후루룩 삼키며 벙글거리던 그는 아예 바다로 가버렸다. “나고 자란 바다가 얼마나 좋았으면 그냥 바다가 되었냐.”라고 누군가 지나가는 말처럼 애도했을 때 인정 없는 세상에 화가 났다. 어둠과 맞짱 뜨며 생의 순간순간 바다의 손에 잡혀 흔들렸을 그의 죽음을 그리 쉽게 말할 순 없는 것이었다. 사내를 삼켜버린 바다는 날마다 고모의 심장을 후려쳤다.
장가도 못 간 생때같은 자식을 바다에 빼앗겨 버린 후 십여 년이 넘도록 고모네 장독간에선 추젓 항아리를 볼 수 없었다. 메마른 항아리처럼 고모의 가슴도 바삭거렸다. 사진을 보지 않으면 아들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며 흐릿한 빛깔만으로 남은 자식을 가슴에 품었다. 그러던 고모가 다시 추젓을 담그기 시작했다. 신안 앞바다에서 잡힌 젓새우만을 고집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젓새우에 2년 이상 간수를 뺀 천일염을 버무려 배가 불룩한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았다.
고모는 새우잡이를 하던 목포 남자를 만나 스물다섯에 결혼했다. 과묵하고 숫기가 없던 고모부는 술이 한 잔 들어가면 딴사람이 되었다. 새우나 여자는 물때를 잘 맞춰야 한다며 포항 아가씨를 신부로 맞이한 속내를 털어놓곤 했다. 그럴 때면 검붉은 얼굴에 싱글거리던 고모부의 하얀 치아가 유난히 빛났다.
젓새우는 조류를 타고 흘러 다니기 때문에 밀물과 썰물이 들고나는 길목에 그물을 놓아 잡는다. 그물 양쪽을 닻으로 고정해두는 닻자망 방식으로 조업을 한다. 고모를 그물에 걸린 새우에 비유하며 사람 낚는 것에도 재주가 있다고 자랑했다. 슬쩍 고모의 눈치를 살필 때면 순박함이 묻어났다. 술만 마시면 똑같은 레퍼토리라며 곁에서 핀잔을 주던 고모도 그리 싫지 않은 눈치였다. 두 사람이 만나게 된 물때와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 모습에서 운명의 의미를 읽었다.
고모는 목포에서 이십 년도 채 못 살고 친정으로 돌아왔다. 고모부는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된 뱃일을 털어내려 마시던 술이 도리어 화가 되었다. 술이 잡아갔다고도 하고 바다가 삼켰다고도 했다. 목포에서의 살림을 정리하고 아들과 둘이 떠나올 때 고모는 여자로서 한창 피어날 사십 대였다. 일찍 가버린 남편을 원망하면서도 투박한 그리움을 거친 소금에 절였다. 깊은 한숨이 사그라질 즈음 짜디짠 항아리에서 추젓은 진한 맛을 냈다. 고모의 그리움은 해마다 넘쳐 가을이면 내게도 전해졌다.
사촌 동생은 사춘기를 맞더니 집 밖을 돌며 섣부른 객기를 채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바로 해병대에 입대했다. 제대 후엔 불쑥 배를 타겠다는 동생에게 고모는 노발대발했다. 가장 두려워했던 일이 운명처럼 밀어닥친 걸 애써 부정하고 싶어 했지만 아무리 말려본들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있을까. 동생은 기어코 바다로 나갔다. 아버지를 닮은 아들의 뒷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외아들의 사고 소식을 듣던 날 고모는 혼절했다. 정신을 차린 뒤 허깨비 같은 모습으로 한동안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렸다. 어찌 온전한 정신으로 살 수 있었겠는가. 아들을 위해, 아들만 보며 버텨온 삶이 한순간 무너져 버렸는데…….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져 버린 막막함을 견뎌내야 하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남편과 아들을 잡아먹은 귀신이 붙었다며 스스로 굿판까지 벌였다. 친지들마저 팔자 운운하며 혀를 찼다. 모든 불운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가슴을 쥐어뜯었다. 거침없이 쏘아대는 욕설은 본인에게 하는 애끓는 저주였다. 무언가에 홀린 듯 바닷가를 헤매고 다니며 아들 이름을 부르다 목이 쉬었다. 어른들 입에서 고모를 정신병원에 보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이성은 혼돈의 시간을 넘나들었다. 고모까지 잘못될까 봐 다들 걱정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콩나물국에 풀어진 추젓은 짭조름하고 감칠맛 나는 바다향을 몰고 온다. 새우와 소금, 햇빛이 버무려지듯 세 사람의 그리운 자국이 배어 나온다. 고모부를 꼭 빼닮아 검게 탄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던 동생의 푸른 미소가 흐른다. 소주 한 잔으로 속을 풀어내던 가장의 고달픔도 보인다. 고모의 처절한 그리움까지 얹혀 목구멍에 걸린다.
바다가 원망스럽기도 하련만 고모는 좀체 그곳을 떠나지 못한다. 날마다 파도가 부려놓고 가는 사연을 읽으며 눈물을 뿌리는 노인의 가슴에 남은 건 무엇일까. 놓을 수 없는 자식을 품고 바다를 서성일 고모의 발걸음을 생각한다. 근처에 사는 삼촌이 가끔 둘러본다지만 혼자서 지내는 고모가 눈에 밟힌다. 화석처럼 지워지지 않는 응어리를 안고 숨만 쉰다는 고모에게 누구도 제대로 된 위로를 건네지 못했다. 아니,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음을 주위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고모의 장독간에는 낡은 항아리들이 모여 있다. 목포에서 사용하던 것이다. 고모의 아픈 시간을 함께 보냈던 항아리에서 하얀 눈물 자국을 본 적이 있다. 항아리가 숨을 쉰다더니 미세한 공기구멍으로 뱉어놓은 노폐물이었다. 낡은 항아리는 고모가 틈만 나면 닦아 반지레 윤이 났다. 닦아도 끈적끈적하게 흘러내리는 하얀 소금기는 고모의 오래된 그리움이었다.
고모는 한때 항아리 속으로 신안 앞바다를 끌고 왔었다. 거기엔 젓새우를 잡던 까무잡잡한 고모부가 있었다. 이제 고모의 항아리엔 또 다른 바다가 담겼다. 소금인형처럼 녹아내리는 아들의 기억을 간신히 붙들고 있다. 추억도 늙음에는 어쩔 도리가 없나 보다. 허물어지는 새우껍질처럼 아들 모습이 자꾸만 흐릿해진단다. 단풍처럼 발그레한 꼬리가 끝내 색을 지키고 있듯 바다로 가겠다는 자식을 말리지 못한 죄책감만 선명히 남은 것일까. 날마다 헤진 속을 바닷바람에 널어놓는다. 시간만이 고모를 일으켜 세웠던 것인지 추젓의 깊은 맛이 다시 돌아왔을 때 그해 가을은 유난히도 산과 들이 붉었다.
고모에게서는 오래 묵은 짠 내가 난다. 마흔 중반에 과부가 되어 외아들을 길렀고, 참척의 쓰라린 아픔도 겪었다. 감당하기 힘든 절망 앞에 두 번이나 무릎을 꿇어야 했으니 눈물이 다 말라버린 탓일지도 모른다. 고모는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하며 서서히 삭고 있다. 추젓을 품고 짠 내를 온몸에 가두는 항아리 같다. 살짝 손만 대도 바스러질 것만 같은 낡은 오지항아리. 그런 고모를 잊고 살다가 가을이 다가오면 어느새 내 마음도 동해로 달려간다.
발효는 빳빳한 시간이 뭉개지고 지워지기를 반복하며 새로움으로 거듭나는 외로운 길이다. 추젓이 곰삭아서 깊은 맛이 우러날 때까지 항아리가 감내한 시간이기도 하다. 고모의 가슴도 바다에 다 내어주면 비로소 잔잔해지려나.
짠 내와 쓴맛마저 넘어선 고모의 시간은 지금 어디에 머물러 있을까. 새우처럼 굽어가는 등이 바다에 가닿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