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의 시간은 느리다 / 최장순

 

 

거품 물고 달려오던 파도가 모래사장을 만나 스스로 힘을 풀듯, 가속도가 붙은 차량의 흐름이 광화문 앞에 이르러 완만해진다. 쫒기 듯 서두르던 내 발걸음도 서촌으로 방향을 틀면서 속도를 늦춘다.

서촌은 청운동, 효자동, 그리고 사직동 일대로 경복궁을 중심으로 나눈 서쪽 마을이다. 삼청동, 계동, 원서동 일대인 북촌이 유명세를 타면서 이곳 서촌도 입소문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외지인의 발 빠른 정보와는 달리 정작 오래전부터 정착하고 있는 주민들에게는 아직 생경한 지명이다. 입품을 팔아가는 길 찾기가 처음엔 쉽지 않다. 하지만 길은 어디로든 통한다는 원리만 알면 타임머신을 타고 골목에서 골목으로 건너가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아니, 늘 보던 곳이듯 낯익기까지 하다.

 

​​​​​​​ 서촌은 나지막하다.

멀리 건너다보이는 종합청사와는 대조적이다. 그 흔한 고층 아파트도 없다. 골목들은 추억이 밟힐 것 같은 노인의 잔등처럼 낮게 휘어져있다. 서촌에 들어서면 눈높이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간판들이 왠지 모를 평안함을 가져다준다. 당장이라도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터져 나올듯한 구립 어린이집, 낡고 오래된 헌 책방이 발길을 잡아끈다. 쿰쿰한 냄새가 배어나오는 서가에서 낯익은 동화작가는 이미 내용을 꿰고 있는 정겨운 동화를 읽어주고, 고인이 된 어느 과학자는 눈빛을 초롱거리게 만드는 흥미로운 우주이야기를 쏟아낸다. 책방 주인은 전혀 귀찮지도 않다는 듯이 해묵은 입담을 팔고 있다. GOD, LOVE, DESIGN 같은 영문 간판이 낮은 골목의 정취와 그럭저럭 어울린다. 아마 그것들이 나보다 키를 세우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서촌은 친근하다.

태어나고 자란 장소는 저마다 다르지만 어릴 적 매일 마주쳤던 장면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말을 걸고 있다. 하품을 뱉고 있는 오래된 이발소엔 모처럼 찾아온 손님을 의자에 앉히고 웃자란 머리를 쳐내고 있을 것이다. 몇 발짝 더 가면 주인과 단골이 함께 늙어가는 미용실. 내로라하는 헤어숍도 많지만, 그 머리 모양만을 고수하는 단골들 덕에 전기 고대기가 아닌 재래식 고대기가 쩔꺽쩔꺽 머리에 부푼 바람을 넣고 있지 않을까. 능숙한 손이 누님의 머리를 한껏 틀어 올려주던 그 시절, 오래 적부터 전수되었을 그 머리모양은 풋내기는 감히 접근 못할 자존심이었을 지도 모른다. 아줌마들의 수다가 미용실 문을 통해 새어나올 것 같아 잠시 호기심으로 기웃거려본다. 한 모퉁이를 더 돌아간 벽돌담 앞에는 수더분한 토종의 꽃들이 반기고 스티로폼에서 푸성귀가 제철 입맛을 키우고 있다. 담벼락에 쳐놓은 빨랫줄에는 미로를 따라온 한 가닥 햇살이 옷가지 위에서 제 몸을 말리고 있다.

불과 한 블록 더 안쪽으로 들어왔을 뿐인데도 마치 바깥세계와 단절된 듯 구부정한 골목. 이곳에는 서글픔과 정겨움이 뒤엉킨 추억이 스멀스멀 되살아난다. 생계를 얹었던 엿장수 손수레가 마디 굵은 손을 놓은 채 쉬고, 바람이 대신 가위를 쩔꺽거린다. 빈 박스며 폐휴지를 채곡히 쌓아놓은 어느 집 앞에 이르자 바지런하시던 노모를 만난 듯 가슴이 뭉클하다. 막다른 골목에서는 불량한 상급생이 내 얇은 주머니를 털던 기억이 되살아나 슬그머니 주머니에 손을 질러 넣어본다. 문간방에서는 볼륨을 있는 대로 높인 부부싸움 끝에 쨍그렁, 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져나오는듯하다. 그런 골목에서도 소박한 동심은 자라서 구슬치기, 딱지치기, 술래잡기가 즐거웠다. 막 한글을 깨우치는 아이가 있는지 들여다보이는 창문으로 벽에 붙인 한글판이 낯익다. 골목 끝 빨간 대문의 어린 시절 집에는 가, 갸, 거, 겨, 한 자 한 자 연필에 침을 묻혀 사각의 칸에 삐뚜름 글씨를 구겨 넣던 내가 있었다. 내 이름을 부르며 옆집 동무가 뛰어나올 것 같아서 나는 자꾸만 골목을 뒤돌아본다.

 

서촌에는 손맛이 살아있다.

수타 짜장, 손칼국수, 해장국, 감자탕, 통닭집, 떡집에는 푼돈으로 언제든 궁금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중국집이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것도 순전히 손맛 때문이다. 입품 발품으로 찾아온 손님들로 늘 북적이는 중국집. 계산대 한편에는 단골의 외상값을 적은 치부책이 바구니 한 가득이다. 가슴이 허기진 이 시대에도 외상이 있다니, 주인장의 넉넉한 인심을 본다. 특별한 요리를 시키지 않아도 여유롭게 보통의 짜장면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 삶은 특별할 것도, 과시할 필요도 없는 ‘보통’으로 통일되는 그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허름한 가정집에 빛바랜 간판 하나가 걸려있는 손칼국수집. 할머니 손맛으로 유명하다는 그 집은 오천 원 하는 손칼국수에 강된장과 밥 한 공기, 부추전과 식혜가 덤으로 따라온다. 서촌이기에 맛볼 수 있는 인심이지 싶다. 뒷골목 음식으로 빠지지 않는 해장국집은 대통령이 다녀간 집이라며 집 크기에 걸맞지 않은 현수막을 두르고 있다. 맛 때문인지 아니면 대통령의 입맛을 확인하고픈 호기심 때문인지 손님이 북적거린다.

 

서촌에서는 시간도 더디게 흐른다.

‘빠르게, 더 빠르게’를 외쳐대며 압살할 듯 달려드는 번화한 대로에서 비켜난 때문인지, 이곳에서는 휴대전화의 벨 소리도 다급함이 없고 통화하는 목소리도 느긋하다. 큰길의 직선은 속도와 연관된다. 빠른 속도에서 보는 풍경은 그냥 스칠 뿐이다. 골목은 곡선을 이룬다. 곡선은 속도를 늦추고, 늦춘 속도에 맞춰 모든 게 느림의 미학을 존중한다. 속도를 벗어난 여유는 풍경을 감상하고 그것을 자기만의 것으로 해석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서촌에는 그만의 문화가 있다. 자신의 가옥을 기증해 구립미술관이 된 박노수 미술관, 시 ‘사슴’으로 유명한 노천명 시인과 천재시인 이상이 살았던 흔적들, 그리고 옛 여관 그대로의 모습으로 전시를 하는 실험미술관이 있어 풍요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는 곳, 잠시 시간을 거스른 예술세계에 젖기도 하는 서촌은 그래서 여유롭다.

 

낯선 듯 익숙한 곳, 익숙한 듯 낯선 곳이 도시다. 인생이 길에서 길로 이어지는 것처럼 도시도 길에서 길로 이어진다. 소음에 휩싸인 큰길은 속도로 나를 위협한다. 그러나 대로에서 벗어나 골목으로 접어들면 아무리 초행길이라 해도 어디서 본 듯 낯익다. 특유의 오감을 발휘한 서촌으로의 시간여행. 이곳에 오면 나는 허겁지겁 달려온 삶을 잊은 채, 뒷짐을 지고 어슬렁거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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