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과 친해지기 / 노현희
시청 광장은 싱싱한 초록의 향연 그대로였다. 푹신한 잔디밭에 사람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어 이야기를 나누거나, 엎드려 책을 읽고 있었다. 광장 주위로 끊임없이 오가는 차의 소음도, 하늘을 가리며 치솟은 빌딩들도 그들에겐 비껴 나 있는 것 같았다. 길 건너 대한문 앞에 설치된 임시 분향소조차 평화로운 풍경으로 다가오는 6월의 오후. 나도 신발을 벗고 맨발로 서보았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감촉, 몇 발자국 내딛지도 않았는데 자유로움이랄까. 마음이 가뿐해졌다. 이물스럽게 놓인 내 두발을 간질이는 풀, 정겨운 그 장난질에 나는 괜히 부끄럼을 탔다. 주위에 신경 쓰지 않고 놀이에 열중하는 아이들처럼 풀은 그렇게 천진스럽게 6월의 햇빛을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 풀밭, 나는 인공적인 냄새가 풍기는 잔디밭 대신 그렇게 부르고 싶어졌다.
그러나, 풀밭의 평화로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갑자기 날아든 확성기 소리는 6월의 열기 못지않게 격앙되어 있었고, 날이 선 구호를 쏟아내었다. 언제 시작되었는지 잔디밭 가장자리를 따라 삼보일배를 하고 있는 몇 사람이 보였다. 운구차의 뒤를 따르듯 시국 쇄신을 요구하는 팻말을 든 사람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어수선한 나라 안팎의 분위기에 짓눌려서일까. 평화로운 오후의 한때를 빼앗긴 것에 대한 분노일까. 서울 광장은 푸른 그 기운으로 시민들에게 존재해야 하는 곳이라고, 당신들의 구호 이상으로 평화스럽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다만 목소리를 내지 않을 뿐이라고, 삼보일배는 당신들 당사에서, 아니면 언론사 앞에서나 하라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외침은 목 안에서 제 스스로 사그라졌다. 그곳은 그들에게도 허용되어야 할 공간이었다. 그게 광장이었다.
그곳을 떠나오며 나는 죽어가는 내 선인장을 떠올렸다. 벌써 세 포기가 죽었다. 남아있는 붉은 모자를 쓴 녀석도 밑동이 물렁물렁하다. 얼마 후면 그 녀석도 빈 화분만 남기고 떠날 것 같다.
“가장 키우기 쉬운 생물입니다. 가만 두기만 해도 잘 큽니다.”
상인의 그런 말이 아니래도 나는 식물을 키우는 데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23년째인 결혼기념일과 맞먹는 관음죽도 싱그럽게 자라고 있고, 그 외의 식물들과도 오랫동안 동고동락하며 잘 지내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선인장 녀석들은 좀체 곁을 주지 않았다.
바짝 마른 모래를 보며 한 달에 한 번 정도 물을 주면 좋을 것이라는 안내가 못 미더워 몇 알의 모래를 적실까 싶을 정도의 물을 주었다. 하루가 다르게 새 잎을 틔우는 식물들 옆에서 얼마나 목이 탈까 싶었다. 잎 보듯 들여다보며 하루에도 몇 차례씩 눈을 맞추며 대화를 해도 녀석들은 가시를 세운 채 나를 외면하였다. 그러다 얼마 후 두 녀석이 허리를 꺾으며 주저앉았다. 과다한 수분 탓이라 했다. 마치 허술하고 듬성듬성한 내 성품이 촘촘하고 강인한 자신들과는 맞지 않다고 내치는 것 같았다.
식물과도 궁합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누구나 거둔다는 선인장, 왜 내게는 까다롭게 느껴지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날짜를 정해서 규칙적으로 물을 주는 사람도 있지만 모유를 먹이며 자식을 키운 버릇이랄까, 배고프다고 보채면 시간과 상관없이 젖을 물렸던 것처럼 식물을 길러 왔다. 처져 있는 잎을 보거나 마른 흙을 보면 물을 주었다. 그러면 곧바로 깃을 세우며 답하는 철쭉이며 아이비, 각종 식물들이었다. 그것들은 환호하는 언어로, 혹은 새침하게 돌아선 표정으로 제 이야기를 전했다. 그렇게 나누는 기쁨이 컸다. 하지만 선인장의 낯빛은 한결같아 그 속을 알 길이 없었다.
꼬부라지는 선인장을 보며 나는 관계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우리 삶에 갈등 없이 이루어진 관계가 얼마나 될까. 하지만 죽음의 문턱까지 불협화음으로 치닫는 관계는 당혹스럽다 못해 슬프다. 선인장은 제 특성을 알지 못하는, 아니 알려고 시도조차 않는 나에게 무수히 가시를 쏘아 올리며 항거했지만 나는 그 의미를 헤아리는 일에 소홀했다. 알량한 동정심으로 몇 방울의 물을 건네어 되레 목숨까지 위협하고 말았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진정한 관계는 시작되는 것이라고 선인장은 말하고 있었던 거였다.
삼보일배하는 이들의 구호는 구태의연한 투쟁이 아니라 자신들의 뜻을 제대로 알리고 싶은 간절함이었는지 모른다. 삶의 터전인 사막을 떠나 살아야 하는 한 생명에 대한 배려나 이해심은커녕 다른 식물의 습성대로 길들이려 하는 나에게 죽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었던 선인장처럼.
키우는 재미라고 했던가. 식물을 키우며 난 나름대로 결과보다 과정의 중요성을 역설하곤 했다. 하지만 제 스스로 제 목숨을 거둔 한 생명에 대해서는 좀처럼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다. 그가 소탈하고 거짓을 모르는 지도자였는지, 다소 능력이 모자란 지도자였는지 나는 판단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보며 나는 결과론자가 되어버린다. 끝이 좋지 않으면 그 과정도 퇴색해버리는 거였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분향소를 지날 때마다 나는 외면했다. 우리 모두는 그에게 버림받은 자식이었다. 사람들은 죽은 그를 살려내라며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분향소를 에워싼 전경도,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도 분명 그가 거두어야 할 자식들이었다.
나는 허리를 꺾은 세 번째 선인장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몸통에 비해 지나치게 큰 머리가 처음부터 불안해 보였던 녀석이다. 머리통에 꼿꼿하게 박혀있는 가시가 아직도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오종종하게 심어진 다른 선인장 옆에서 이제는 아예 머리통을 옆으로 뉘어버렸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손을 대보았지만 가시는 여전히 내 손을 찌른다.
선인장과 친해지기. 나는 인터넷으로 선인장을 검색한다. 선인장의 특성과 매력에 대한 글들이 쏟아져 나온다. 모두들 잘 알고 있는 그런 사실을 나는 왜 몰랐던 것일까. 아직도 나는 사막 한가운데서 목숨을 지키며 살아왔을 한 생명의 고독을 알아내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선인장 역시 시시때때로 물을 먹어야만 살 수 있으리라는 내 마음을 헤아리기가 힘들지 않을까. 우리 삶은 언제나 선인장과 나의 관계처럼 이어져 왔는지 모른다. 상대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해 가시를 세우고 서로에게 상처를 내기도 하면서.
사람들은 오늘도 소통을 꿈꾸며 시청광장을 서성이고 있으리라. 냄새나는 내 맨발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감싸주던 광장의 잔디밭, 그 잔디를 가꾸고 지키는 손은 누구의 것인가.
나는 오늘도 화분에 물을 주며 선인장 앞에서, 주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