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종일 추적거린다. 차창으로 번지는 빗물이 함박눈이라면 경치가 얼마나 좋으랴. 눈이 내리지 않는 겨울은 슬프다. 온난화로 정녕 눈을 보기 어려운 겨울인가. 여하튼 노박비가 산사로 가는 길을 막을 순 없다. 비 때문에 이래저래 인간의 마음만 뒤숭숭하다. 지인들은 찬비를 피하여 전각의 처마 밑에 서 있으나 각자 침묵에 든 모습이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웅장하던 고목도 고아하던 삼층석탑도 왜소하고 쓸쓸하게 보인다. 감상에 젖어 들 즈음 ‘비도 상처를 입힌다.’는 지인의 혼잣말이 귓전을 울린다. 순간 얼어붙은 사유에 비수를 꽂는다.
비가 상처를 준다는 말이 아이러니하다. 인간은 오늘 내린 비가 메마른 땅을 해갈하는 단비라고 부른다. 곧은 단비가 처마 밑 자갈돌을 무심히 부딪고 있다. 인정사정없이 한 곳을 파고든다. 보통의 단어로 알고 지냈던 비의 모습이 아니다. 빗살은 공중에서 떨어지며 상처를 예감한 것일까. 빗줄기는 누군가에게 고통을 준다는 것을 아는 듯하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를 즐기던 감상주의자는 이제야 비의 실체를 확인한다.
극락보전을 서성이다 빗살의 현장을 목도한다. 빗살은 땅에 떨어져 흔적을 고스란히 남긴다. 빗줄기는 누군가의 등을 두드리고 살점을 도려내며 서서히 스며든다. 오죽하면, 인간은 땅이 움푹 파이는 걸 대비하여 빗살이 닿는 지점에 자갈을 깔아 놓았으랴. 어디 그뿐인가. 찬비를 피하지 않는 사람도 위험하다. 대부분 빗살을 피하고자 하늘을 향하여 보란 듯 우산을 펼친다. 우산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사람은 장대비를 고스란히 맞아야만 한다.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무른다면, 온몸을 적시고 추위에 떨리라. 그러다 빗살이 비수가 되어 동사로 세상을 등질지도 모른다. 우주 만물은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가는 빗살은 누군가에게 크고 작은 생채기와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다.
빗살도 태양의 빛살처럼 이중성을 지닌다. 빗살은 대지에 상처도 주지만, 대지가 품은 풀꽃들에 생명수가 되기도 한다. 오늘만큼은 법당 앞 기와로 꾸민 아귀밥통도 행복하리라. 늘 허기가 진 아귀도 배가 부를 정도로 밥통에 빗물이 가득 고인다. 아귀(餓鬼)는 생전에 탐욕과 질투가 많아 아귀도(餓鬼道)에 이른 죽은 사람의 영혼이다. 목구멍이 바늘구멍 같아 음식을 삼킬 수 없어 늘 굶주리며 음식물을 구한다. 어찌하여 음식을 먹으려면 불이 되어 목으로 넘기지를 못한다. 그런데도 먹을 것 앞에선 서로 먹으려고 다투고 싸워 ‘아귀다툼’을 부른다. 아귀가 오직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부처님 전에 올린 청정수란다. 부디 오늘 내린 빗물로 그의 마음속 허기라도 달래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귀다툼을 벌이는 족속이 어디 아귀뿐이랴.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난투극을 벌이거나 분노를 밥 먹듯 표출하는 사람이다. 도로에서 인정사정없이 모질고 쌀쌀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던 운전자가 떠오른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소리의 언어. 남자의 사나운 말은 정녕코 말살(抹殺)의 행위이다. 시간이 흘러도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말이 있다. 인간의 말도 빗살처럼 가슴에 깊은 상처를 입힌다.
말은 생물이다. 입에서 떠난 언어는 상대의 가슴에 남아 삶을 흔들리라. 살다 보면, 어떤 상황에선 진실이 왜곡되어 억울함을 침묵하고 지내야 할 때가 있다. ‘어찌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아가느냐’는 암묵적 말이 떠올라 입을 다문 적이 여러 번이다. 차라리 묵언수행이 감당하기 쉬울 때가 있다. 말을 많이 한 날은 왠지 모르게 허전함을 느낀다. 이런 날은 내가 쏟아놓은 말들이 허풍선이가 되어 어디선가 방황하고 있을 것만 같다.
‘사람의 혀는 뼈가 없어도 사람의 뼈를 부순다.’라는 속담이 있다. 말랑한 혀에서 내뱉은 말이 다른 사람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는 뜻이다. 말살을 서슴없이 행하는 자는 마음의 허기가 다분한 사람이리라. 자신의 허기를 채우고자 생각 없이 내뱉은 가시 돋은 말에는 빗살과는 다르게 생명의 기운을 찾아볼 수가 없다. 평소에 알게 모르게 떠벌린 말속에 살(殺)이 돋은 적 있는지 조용히 돌아볼 일이다.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 언어가 입에 감돌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곧은 빗살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빗줄기가 바닥을 치는 소리와 빗물이 바닥에 퍼지는 이미지가 어느 때보다 여운을 남긴다. 생명수가 된 단비가 숭고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비꽃은 대지의 흙먼지를 잠재우고, 빗물은 목이 마른 계곡을 적시며 흘러가리라. 문득 나도 빗살처럼 누군가의 상처를 딛고 서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허물없이 지낸 가족이나 지인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며 달려왔다고 생각하니 숙연해진다.
빗살은 수수한 내 마음을 다독이듯 파고든다. 어디선가 비를 바라보고 있을 그대의 부질없는 욕망도 어루만져주길 원한다. 손바닥을 공중에 펼쳐 빗살을 받는다. 빗물은 손을 간질이며 손가락 사이로 줄줄 흘러내린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빗살의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