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가 생각/김열규
땅거미가 질 무렵, 먼 시골길을 가노라면 언제나 저만큼 외가(外家)가 보인다. 산모퉁이에 비껴앉은 그 후덕스런 집 앞에 외할머니가 서 계신다. 손짓을 하신다. 얇은 소맷자락이 바람에 흔들린다.
환각(幻覺)이라기엔 너무나 아릿한 이 영상(映像)을 만나기 위해, 나는 이따금 어스름에 이끌리듯 먼 들길에 나간다. 그럴 적마다 영상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난다. 집 모양과 외할머니 모습은 천날이 하루 같으나, 그 둘레가 더러더러 달라 보이는 것이다. 소슬한 외할머니 곁에 외숙부께서 우람하게 서 계실 때가 있는가 하면, 울 너머로 고개 내밀고 있는 나무가 가죽나무에서 감나무로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된서리 하이얗게 뒤덮은 개울가의 자갈밭을 건너오는 까마귀 울음. 장작을 지핀 아궁이마다 불똥 튀는 소리. 그리고 외조부의 마른기침 소리.
저녁 이내가 내린 논두렁 저 너머로 외가의 영상이 보이고, 이 소리들마저 들려오면, 내 눈에 설핏하니 느껴지는 이슬 기운.
‘이게 누고, 이게 누고.’
그렇게 외치시는 음성, 덥석 잡으시는 손길.
이슬은 절로 가느다란 비가 된다.
비 기척 감당하지 못해 눈을 감으면 비에 젖은 허이연 꽃망울, 비를 받아 다소곳이 벙그는 박꽃송이가 감은 눈망울에 떠오른다.
해서, 어둠이 꽃을 감싸고 꽃이 나를 감싸면, 온 세상이 주먹 안에 꼭 잡혀지는 충족감을 더불고 찾아올 잠의 예감에 젖는다.
나는 왜 아무데서나 저녁 들길을 외가로 가는 걸음으로 걷는 것일까. 엷은 어둠이 낀 산모퉁이 길이면 어디서나 항용 내가 외가 길을 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물음은 매우 절실한데도, 어릴 적 외가에 가 본 기억은 두 번밖에 없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기 이전에 외가는 옛 터전을 길이 떠나 버렸기 때문이다.
유치원 꼬맹이가 서리 앉은 뜰에서 호박을 찬 것이 외가나들이의 첫 기억이다. 왜 호박을 차느냐고 물으니까 “공차기, 공차기”라며 씩씩거리더라고 사뭇 뒷날 외할머니께서 일러 주시던 사연은 지금에도 늘 곰살맞다.
두 번째 기억은 소학교 졸업할 무렵, 기우는 가을 저녁에 나는 외가 뜰에서 달걀밥을 먹었다. 껍질에 구멍을 내고 흰자위를 빼낸 뒤, 그 작은 구멍에다 한 알 한 알 찹쌀 알을 밀어 넣고는, 창호지로 뚫린 자국을 봉하는 과정이 퍽이나 정성스러웠다.
화톳불에 한참 묻었다가 익혀 낸 달걀밥. 껍질을 벗기면 그것은 잿더미에서 집어 낸 황금 덩어리였다.
“알토란 같은 내 손주.”
단술과 함께 주시면서 외할머니는 그렇게 읊조리셨다.
다만 두 번만의 기억이 남아 있는 것 뿐인데, 더욱이나 도시로 솔가해서 옮긴 외가를 지척에 두고 이십여 년을 살아 왔는데도, 저무는 날 외딴 두멧길을 가노라면, 으레 외가로 향하는 발길인 것은 무슨 영문일까.
눈 내리는 철이면 외가만이 야밤중 한바다의 등대처럼 오롯하게 떠올라 보였다. 비가 내릴라치면 훈기라도 여미듯 가라앉아 있었고, 가을이 짙어 갈 즈음이면 엷은 피멍빛, 그 서러운 핏빛 노을 속에 아슴한 피안의 들목 같아 보였다.
그런 외가에, 지금은 다들 떠나버린 지 서른 해도 더 지난 빈 둥지에 찾아간 것은 재작년 어느 추운 날이었다.
기와버섯이 낀 지붕이 상기도 덩그랗게 남아 있는 아슬한 기억 속의 고샅을 바자니면서도, 나는 물살을 스쳐가는 바람일 뿐이었다.
지아비 뒤따라 스스로 목숨 끊으신 외증조모의 늠렬한 열녀비 앞에서도 나는 바람이었다. 비문 사연에 새겨진 후손들 이름 틈에 내가 끼어 있기는 해도, 그것은 필경 돌에 난 작은 흠집 같은 것. 이름이 남아 되려 더 허망한 목숨도 있는 법이다.
옛 집 안에 지금은 누가 살고 있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닫힌 대문 틈으로 멀건히 들여다보았을 뿐이다. 중문 문지방 돌에 이끼가 짙고, 거기 물기 머금은 그늘이 번져 있었다.
밀어도 열릴 것 같지 않은 문, 굳이 나를 향해 닫혀 있는 것 같은 그 문을 향해 나는 마음속으로 손을 내밀었을 뿐이다. 아니 손을 내미는 흉내를 지었을 뿐이다.
담 너머로 보이는 감나무는 옛날의 그 나무일까…. 가지 끝에서 울고 있는 까치에게 물어 볼 수도 없었다.
가을날 늦은 오후, 바람이 불고 대문을 스친 갈잎들이 고샅에 흩어졌다. 더러는 내 발부리에까지 굴러 왔으나 발길을 떼면서 차마 밟을 수가 없었다.
어둑한 신작로에 나오기까지 그리고 차에 올라 서서히 마을을 등지기까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갈잎들은 구을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차가 등성이길을 크게 돌아 재 하나를 넘었을 때, 외가는 저만큼 내 앞에 있었다. 저 앞에서 내게로 오고 있었다.
갓 떠나온 그 옛집이 아니다. 수십 년 세월의 겹겹이 겹친 골짝을 넘어, 차창 유리 하나 가득 펼쳐지는 외가가 있었다.
온 세계가 주먹 안에 꼭 쥐여지는 충족감과 함께, 나를 감쌀 깊으나 깊은 잠을 생각했다. 나는 이제 바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