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과녁 / 김시래
얼마전 MBC ‘놀면 뭐하니?’를 연출한 김태호 PD가 백상예술대상에서 한 수상소감은 의아했다. 그는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놀면 뭐하니?’가 시즌제로 가야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재석씨가 혼자 끌어가는 것이 큰 스트레스일 거라 생각했는데 어느덧 2년을 향해 달려갑니다. 유재석씨가 데뷔 30주년을 맞았는데 센스있는 백상예술대상에서 그 선물을 준비해 주려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평소 담백했고 겸손한 프로듀서였다. 이날도 수상의 영광을 파트너의 수고와 공으로 돌려 시상식의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한 듯 보인다. 하지만 그는 다소 방심했다. 시상식의 주인공은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아니라 시청자다. 시청율을 올려준 것도, 시상식을 보는 사람도 시청자다. 그는 이점을 간과했다. 그의 소감은 유재석과 둘이 만나 사석에서 주고받을 내용이었다. '센스'나 '선물'이란 찬사를 유재석이 아니라 시청자나 관객에게 돌려주었다면 자신들이 빛났을 것이다. 은연중에 자화자찬으로 들리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있었다. 무한도전과 차별화를 주기 위해 싱글 MC를 내세운 것도, 2년차 인기 프로그램의 숨은 주인공도 결국 자신이기 때문이다. 결국 시청자를 앞에 놓고 두 사람의 파트너쉽을 자랑하는 꼴이 됐다. 어떤 분들은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까탈스럽다고 하실 것이다. 하지만 성공의 이력이 쌓인 사람들이 잊기 쉬운 것이 역지사지의 관점이다. 자기 생각이 굳어져 남을 살필 겨를도 여지도 사라진다. 글쓰기의 고수는 상대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전략적으로 선별한다.
글쓰기의 출발은 생각이다. 내 관점을 세우기전 상대의 의중을 읽어야한다. '읽히더라!' 라는 찬사는 문체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아니라 그의 생각부터 읽어야 한다. 투우사가 소의 입장에서 생각하듯이 상대의 입장에서 시작해라. 영화 '강력3반'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배우 김민준과 허준호는 선후배형사다. 후배가 형사라는 직업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그만 두려고 하자 선배형사가 꺼내든 방법은 무엇이였을까? 그는 말없이 서랍속에 간직해 둔 사직서를 꺼내 보여주었다. 자신도 같은 입장임을 알렸다. 사람은 자신같은 타인을 신뢰한다. 그의 생각부터 살펴라. 살피되 진짜 마음을 살펴야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내 마음 나도 모르니 말이다. 스승의 날, 후배가 아들의 담임선생님에게 감사의 글을 보냈다. 선물 포장지에 붙여진 엽서에 "아이가 공부에 취미를 붙여 다행입니다. 선생님을 존경하고 있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는 모습이 대견합니다. 진정한 공부란 사람에 대한 예의를 배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라고 적었다. 그가 선생님에게만 보낸 글일까? 또 다른 독자가 숨어있다. 엽서를 전달하는 아들이다. 아빠는 아이가 먼저 읽어 글처럼 훌륭하게 자라나길 바랬다. 독자에 대한 심도깊은 조사나 연구를 선행해라.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과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의 관심사는 다르다. 아이가 없는 독신자는 입시문제에 무관심할 것이다. 마음을 읽어야 취향과 관심에 맞는 문장을 쓸 수 있다. 개인주의와 디지털테크 시대의 독자들은 확실한 실리를 쫒는다.
글에 독자에게 챙겨줄 구체적 혜택을 담아내라. 한옥연구가 이상헌 작가는 그의 책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여행'에서 한옥마을의 멋을 자연스런 일상의 언어로 표현했다. “한옥에는 음악처럼 높낮이가 있어 끊임없이 리듬을 만들어낸다. 지붕 선이 리듬을 타고 추녀 끝에 걸리면, 벽면을 채운 재료들이 질감의 변화를 이끌며 흥을 돋운다. 한옥에서 시작한 율동감은 자연스럽게 마을로 이어진다. 가을이 봄처럼 화사한 도래마을이라면 율동감이 당연 도드라진다.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강한 율동감이 몸을 자극해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흥겹다." 라며 읽히는 문장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의 문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읽는 사람이 가져갈 실리를 가미했다. “겉모습을 중시하는 다른나라 건물과 달리 한옥은 사는 사람을 중시한다. 때문에 한옥을 제대로 보려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시선을 가져야 한다.그 집에 사는 사람처럼 대청에 올라 먼산바라기도 하고,방에 앉아 문턱보다 높은 창턱인 머름에 팔을 얹고 마당도 내다봐야 한다."라고 덧붙인 것이다. 한옥마을의 아름다움에 더해 한옥을 감상하는 방법까지 아울렀다. 글의 가치는 자기만의 관점이고 어휘나 문체는 그 관점을 드러내는 수단이다. 새로운 시대의 문장은 독자에게 전해줄 실리적 이득이다. 시대의 흐름이라는 알맹이를 놓치지 말라. 어느 영화에서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라고 했다지만 그것도 과녁을 바라보고 시위를 당겨야 가능할 것이다.
<김시래 성균관대학교 미디어융합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