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여인 / 박금아
작은어머니는 서울로 유학한 작은아버지가 처음으로 구해 들어간 하숙집 주인의 외동딸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중학교 2학년이던 숙모는 여고를 졸업하기도 전에 삼촌과 결혼식을 올렸다. 신행 오던 날, 할아버지 집 마당은 서울 새색시를 보려고 몰려든 구경꾼들로 난리였다.
“진짜 사람이 맞는기가?” “언지예. 오무짜 같십니다예.” “아, 사람입니다예. 눈을 깜빡이네예.”
사람들은 천리 먼 길에서 온 서울 새아*가 신기하기만 했다. 그때만 해도 삼천포에서 서울은, 진주까지 버스로 한 시간을 타고 가서 기차로 갈아타고 다시 열세 시간을 달려가야 닿는 곳이었다. 숙모가 한복 입은 모습만 보고도 놀랐던 어른들은 평상복으로 갈아입자 기가 찼다. 한주먹도 안되는 허리로 갯가 바람에 날려가지나 않을까, 촌에서 못 살겠다고 친정으로 도망가 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런데 그건 순전히 기우였다.
작은어머니는 삼천포 사람이 되려고 작정한 것 같았다. 시집올 때 가져온 예쁜 홈웨어는 며칠만 입었을 뿐, 그곳 아지매들이 입는 월남치마로 바꿔 입고 밑두리콧두리 하나하나를 다 따라 했다. 풋낯만 익힌 정도였지만, 태어나서 처음이었을 생선 다듬는 일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장어 손질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미끄러지며 도망치는 장어를 잡아 도마 끝에 박힌 대못에 대가리를 올려놓고 칼끝 자루로 툭 내리치면 꼼짝 못 했다. 쥐치 껍질을 벗길 때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말씨도 삼천포 사투리로 바꾸려고 애를 썼다.
어른들은 그런 숙모를 귀여워했다. 사업을 물려받은 작은아버지를 도와 꾀꾀로 장부 정리도 잘했다. 서울에 가서 살고 싶지 않냐고 물으면 싱싱한 생선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매일 회사에 가지 않아도 뱃사람들이 돈을 벌어다 주니 삼천포가 좋다며 상글거렸다. 주벽이 심했던 작은아버지에게도 언제나 다정한 아내였다. 집안 어른들이 바가지를 긁어서라도 사업에 신경 좀 쓰게 하라고 하면 대학에서 연극 공부하던 사람이 배우지도 않은 배 사업을 하려면 얼마나 힘들겠냐며 삼촌 편을 들었다. 사내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큰소리 한 번 지른 적이 없었다.
삼촌은 할아버지가 물려 준 사업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이십여 년 만에 서울로 갔다.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 살림살이가 어렵지 않냐고 물으면 작은어머니는 사업할 때보다 훨씬 좋다며 웃었다. 사업을 하면 큰돈이 들어와도 언제 나갈지 몰라 불안했는데, 적은 월급이라도 따박따박 나오니 살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얼마 후에 삼촌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잠시 슬퍼했을 뿐, 숙모는 씩씩하게 자식을 키웠다. 그러던 작은어머니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아이들 모두 짝을 찾아가고 나서였다. 시름시름 하더니 급격히 우울해졌다. 생기라고는 없어 보였다. 반질반질하던 살림살이도 늦가을 떡갈나무 잎새처럼 버석거렸다.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보내온 재혼 소식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친척 모임에서 만난 작은어머니는 살이 많이 오르고, 낯꽃이 피어 잘 여문 복숭아처럼 발그레했다. 사투리라곤 쓰지 않았다. 완벽한 서울말로 교회와 남편 이야기를 하염없이 이어갔다. 숙모는 이번에는 사업가 남편을 만나니 여유가 있어서 좋다며 행복해했다. 작은아버지는 다 잊은 듯했다. 재혼한 남편의 사업이 갑자기 힘들어졌을 때도 한고비만 지나면 괜찮다며 해맑은 표정이었다. 조금 지나자 숙모 소유로 된 집이 은행에 넘어갔고, 남편은 빚덩이를 남긴 채 떠나버렸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 후 어디에서도 숙모를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두어 해가 지난 어느 초가을 저녁, 청천벽력 같은 기별이 들이닥쳤다. 햇살이 산 능선을 넘어가던 시각에 작은어머니는 한 마리 새가 되어 고층 아파트 숲 너머로 훨훨 날아갔다.
체호프의 <귀여운 여인>을 만나며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작은어머니를 떠올렸다.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여인, 올렌카. 결혼 전에는 아버지와 숙모와 프랑스어 선생을 무척이나 사랑했고, 결혼하고서는 자기의 생각과 말까지도 모두 남편의 것으로 채우며 살아가는 여인으로 묘사되어 있다. 첫 번째 결혼 후 남편의 전부를 사랑하여 완전히 그가 되다시피 하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절망에 빠진다. 그러나 금세 또 다른 사랑을 찾고 재혼한다. 이제 그녀에게는 두 번째 남편만 있을 뿐인데 6년 만에 그마저 잃는다. 슬픔에 잠겨 지내던 그녀는 건넌방에 세 들어 살던 유부남과 또 한 번의 사랑에 빠진다. 남자는 아내에게 돌아간다. 실의에 빠져 있던 어느 날 남자가 아내와 아들과 함께 다시 찾아오고, 그녀는 거처가 없는 그들에게 방을 내어 준다. 그러나 부부는 또 떠나고, 올렌카는 혼자 남은 그들의 어린 아들에게 모성애 같은 사랑을 쏟으며 삶의 기쁨을 찾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그런데 어째서 ‘귀여운 여인’인가. 마지막으로 찾아온 사랑이 어린아이였다는 것은, 그녀의 사랑이 아이를 키우는 것으로 완성될 것이라는 귀띔일까. 더 큰 것을 요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 같은 것을 바라보고 같은 생각을 하여 똑같이 되는 것, 과거는 잊고 오직 현재에 만족하는 무한 반복의 순진무구한 사랑을 그녀에게서 본다. 작은어머니가 꼭 그랬다. 어려서는 친정어머니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세 아이를, 그리고 또 다른 한 남자를 어린아이같이 사랑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의 숙모는 자기 자신은 없고 오롯이 사랑하는 대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랬기에 사랑이 떠날 때마다 숙모에게는 남은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텅 비어져 버린 느낌이랄까.
내가 여고생이었을 때, 숙모가 보여준 책 하나가 기억난다. 『女學生』이라는 잡지였는데, 표지사진의 여학생은 놀랍게도 여고 2학년 때의 작은어머니였다. 넓은 깃이 달린 하얀 블라우스에 허리를 잘록 묶은 긴 플레어스커트를 입고서 풀밭에 앉아 먼 데 하늘을 바라보는 소녀는 날아갈 곳을 바라보는 작은 새 같았다.
숙모는 또 다른 사랑을 찾아서 날아갔을 거다. 사랑을 좇아 오래전 멀고도 먼 남쪽, 작은 바닷가 마을까지 어린 날갯짓을 했던 것처럼.
*‘새색시’의 방언
<한국산문 2022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