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짱 없는 베짱이 / 문경희
우화, ‘개미와 베짱이’의 결미는 나라마다 다르게 각색된단다. 일본이나 우리나라는 개미가 과로사를 면치 못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공동생산 공동분배의 시스템에 익숙한 쿠바의 경우, 베짱이는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개미들이 열심히 일을 하는 동안 자신은 아름다운 노래로 귀를 즐겁게 해주었노라고. 그러자 개미는 일밖에 몰랐던 스스로를 뒤돌아보며 ‘이제부터는 함께 춤추며 살자’는 호의로 쾌히 식량을 나누었다나.
미국편은 좀 더 다이내믹(dynamic)하다. 자신의 밥은 자신이 버는 법이라며, 개미는 베짱이의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 후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낙심한 베짱이가 노래로 자신의 처지를 달래고 있는데 마침 지나가던 음반기획자가 이를 듣게 된다. 뛰어난 노래실력을 인정받은 베짱이는 일약 돈방석에 앉게 되는데, 여기서 기막힌 반전이 다시 일어난다. 잘 먹고 잘 살았을 것으로 기대되는 개미는 허리 디스크에 걸려 병원비로 재산을 탕진하고 결국 빈털터리가 된다는 것이다.
‘베짱이가 될 테냐?’
온통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던 것이 베짱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다양화됨에 따라 베짱이의 반전은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을 것이다. 참으로 다행스런 것은, 그 속에 공히 배가 고프거나 얼어 죽는 베짱이는 없다는 사실이다.
이곳, 거우내(鏡川)마을에도 자타가 공인하는 베짱이 한 쌍이 살고 있으니, 바로 우리 부부다. 처음부터 베짱이를 의도한 것은 추호도 아니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뿌연 흙먼지를 덮어쓰고 열심히 일을 하는, 개미 중에 개미들이 포진해 있는 곳에 터전을 잡았다는 사실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할까.
아이들의 뒷바라지라는 의무감에서 해방되고, 이러저러한 상황까지 일조를 해 준 덕분에 시골행을 감행했다. 미련 없이 털고 훌쩍 떠났다가, 자신감 저하로 되돌아왔다가, 하루에도 열두 번씩 생각의 기와집을 지었다 허문 끝에 실행한 일이었다. 경제적 여유와는 상관없이, 복잡다단, 시끌벅적, 숨 쉴 틈 없는 도시의 시스템에서 한 발짝 내려서자는 비장한 시도였다. ‘삶의 파란에 부대끼며 최선으로 살아냈으니 조금은 느슨해질 권리를 찾자’는 것이 귀촌의 모토였다 할까.
자그마한 시골마을에 아담한 주택을 마련했다. 우리가 베짱이로 전락을 하는데 가장 큰 이바지를 한 것이 바로 집이다. 누군가가 전원생활을 염두에 두고 지었다는 주택은 연식이 짧기도 하거니와, 마을 들머리에 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몇 가구 되지 않는 곳이기는 하지만, 지리적으로 마을의 정중앙이자, 출입의 관문이 되는 위치다. 먼 농로로 에두르지 않는 한, 누구라도 우리 대문 앞을 거쳐 갈 수밖에 없다.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고 자연스레 사람들의 일상을 웬만큼은 꿸 수 있다는 이점과, 내 일상이 낱낱이 공개되기도 한다는 맹점을 더불어 지닌 집이다. 게다가 스물네 시간 대문을 개방하다 보니 정거장 같은 곳이 되어버렸다. 덕분에 사람들과의 동화가 빠르고 쉬운 반면 도시에서 당연하게 존중받던 사생활이 더러, 아니, 아주 많이 훼손되기도 한다.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겨우, ‘문 씨네, 오늘 마늘 캐는구나.’ ‘왕할머니께서 고추밭에 나오셨네.’ ‘이장님은 오늘도 읍내행인가 보다.’ 정도, 누구나에게 공유되어지는 것들이다. 그러나 공정하지 못하게도, 마음만 먹으면 사방에서 현미경을 들이 댄 듯 우리 부부의 일거수일투족을 읽어낼 수 있으니 일보다 휴식이 더 많은 우리의 일상은 결코 그들 개미의 바쁘고 부지런한 하루와 비견될 수가 없었다.
이모작 논은 사람들을 잠시도 내버려 두지 않았다. 모름지기 농사란 때를 지켜 이루어지는 작업이었다. 24시간 가동되는 기계처럼, 남녀노소, 그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육신을 굴리는 것이 일상인 사람들이 이곳의 터주들이다.
주말도, 휴가도 꼭꼭 찾아먹어야 하는 도시의 습성이 짙게 밴 우리와, 하늘과 땅이 허락하는 날이 쉬는 날인 그들. 딱히 하는 일이 없으면서도 휴일이면 쉬어야 한다고 믿는 우리 보란 듯이 그들은 트랙터로 묵은 논밭을 갈아엎었다. 마늘과 양파를 심고 거두고, 다시 모내기를 하고…. 도무지 그들에게 ‘쉴 휴(休)’의 느긋한 날은 있을 법하지 않았다.
집보다 논과 밭에 머무는 시간이 훨씬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게으름을 각성하게 만들었다. 나름 종일을 분주하게 보내는데도 늘 빈둥거리는 듯한 줏대 없는 피해의식이 ‘자칭 베짱이’를 탄생시켰는지도 모른다. 결정적으로, 농 삼아 우리 집을 베짱이집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던 어느 날,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자타의 공인이 현실이 된 셈이었다.
두둑한 뱃심이라도 있었으면 마냥 행복한 베짱이 일 수 있을 터이건만, 개미들의 고군분투에 괜히 눈치를 보게 된다. 그들은 하나 같이 일하지 않는 자 유죄라고 무언으로 외치는 듯하다. 이것도 건드리고 저것도 매만진다. 코딱지만한 텃밭에다 요모조모 조각보처럼 작물을 심어보지만 개미들처럼 전투적인 마인드는 언감생심이다. 어차피 내 팔 내가 흔들며 사는 세상인데 왜 이리 전전긍긍하는가 싶기도 하지만, 고작 그들의 눈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를 찾아 엉덩이를 걸치는 것이 휴식이니.
지난 가을, 개미들을 흉내 내며 마늘도, 양파도 심었다. 덕분에 올봄은 그들의 건사만으로도 버거웠다. 눈 뜨면 달려가 그들의 안위를 챙기고 잡초라는 끊임없는 훼방꾼들과 사투를 벌이다 보니 꽃 피고 새우는 봄이 다 가고 있다.
오늘은 마늘밭 옆구리에다 허리가 뻐근하도록 고추 모종을 꽂았다. 은근슬쩍 개미인 척, 가뭄에 속을 태우고 장마에 동동거리게 될 것이다. 마음 편히 놀고먹을 만큼 배짱이 없는 베짱이 주제라 나날이 적어가는 귀촌 일기는 고단함으로 채색된다. 그러나 고단함이 주는 묘한 쾌감은 중독성이 있는 것이라서, 내 손에서 각색되어지는 우화는 일하는 베짱이가 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