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줄 / 김백윤

 

 

호수의 아침은 철새들의 울음소리로 시작된다. 먹이를 찾는 새들이 파닥이며 물살을 박차고 오를 때 호수는 깊은 잠에서 깨어난다. 자욱한 물안개 사이에 스며있던 고요가 철새의 날갯짓에 부서진다. 돋을볕에 반짝이는 물빛 위로 철새가 원을 그리며 날고 있다. 아침은 불쑥 찾아오는 게 아니다. 호수와 철새, 물안개와 햇살이 서로 어우러지고 연을 맺으며 아침이라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햇살은 바다를 지나고 길을 건넌 뒤 호수를 거쳐 초가지붕에 와 닿는다. 밤사이 우주를 품고 어둠을 지켰던 지푸라기 줄기 줄기가 빛을 받아 반짝인다. 초가는 햇살을 튕겨내지 않는다. 여느 지붕과 다르게 빛을 안으로 들여 안온한 색으로 거듭난다. 초가가 가진 특징이다. 이엉을 단단하게 묶고 있는 굵은 줄에 믿음이 간다. 가지런하고 야무진 품새가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하늘을 머리에 이고, 오랜 세월을 버텨온 의지가 마디마디 반듯한 형태로 거듭났다. 비바람에 쓸린 흔적과 불볕더위에 데인 상처는 아물고 덧나기를 여러 번 반복했으리라. 그래서일까. 오히려 단단해진 줄은 지붕을 꼭 끌어안고 있다. 70여 년 동안 고수해온 집이다. 이엉도 여러 차례 새것으로 바뀌었고 줄도 다시 매어졌다. 하지만 그것들은 동떨어진 게 아니었다. 하나이면서 전부이고 전부이면서 하나였다. 그렇게 이어지기를 반복하며 현재에 이르렀다.

초가는 제주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또한, 어머님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유산이기도 하다. 어머님의 숨결이 스며있는, 아직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무조건 희생하듯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다부지다. 이엉을 보듬는 줄과 줄을 원하는 이엉이 서로에게 깃들어야 지붕은 완성된다.

하나하나는 약하고 힘이 없는 지푸라기지만, 뭉치고 엉키면 이엉이 되고 지붕이 된다. 마치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우리가 되고 가족이 되고 사회가 되고 국가가 형성되는 것과 같다. 사람은 알게 모르게 수많은 인연을 만든다. 그렇게 이어지고 손을 잡듯이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그러나 이어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집줄이 끊어져서 지붕이 허물어지듯 사람의 연도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스스로 놓아버리기도 하고, 저절로 끊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인연은 행복의 원천이 되기도 하고, 의도치 않은 슬픔의 실마리도 된다. 억지로 이으려고 하면 끊어지기도 하고,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엉이 줄을 받아들이는 건 줄의 성질을 알고 있어서다.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있어서도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야 단단하게 이어갈 수 있다.

어린 시절에는 동네 집들이 죄다 초가였다. 그러던 것이 19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지붕개량이 이루어졌다. 우리 마을도 예외는 아니어서 하나둘씩 현대식으로 바뀌게 되었고 결국 우리 집만 옛 모습 그대로 남았다. 한때는 관리하기가 힘들어 현대식으로 바꿀까도 생각했다. 지붕을 덮는데 필요한 새(띠)를 장만하기가 힘든 이유였다. 예전에는 새왓(띠밭)이 있었다. 새를 채취할 시기가 되면 동네 사람들이 서로 힘을 합쳤다. 시대가 변하면서 예전의 새왓은 사라진 지 오래다. 농사가 기계화되고 무분별한 개간이 이루어지는 바람에 초지 대부분이 사라져버렸다. 지붕이 현대식으로 바뀌면서 새가 필요 없어진 이유도 한몫했다.

새를 구하기도 어렵지만, 더욱 곤란한 건 지붕을 제대로 교체할 기술자를 찾기 힘든 것이다. 초가 일색이었을 때 일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팔십을 넘긴 노인이 되었다. 그런 사정이니 지붕에 오를 엄두가 나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당시만 해도 지붕을 교체할 일손 구하기가 쉬웠으나 지금은 그런 기술을 배우려는 젊은 사람이 없다. 그만큼 필요를 느끼지 않아서일 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동네 어른들의 도움을 받았으나 이젠 어쩔 수 없이 민속촌 사람들에게 초가집 관리를 맡기고 있다. 그럴 때마다 영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예전처럼 집에 대한 이력을 잘 아는 동네 사람들이 해줬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더욱이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집이라 애착이 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은 인연의 연결고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간혹 버거울 때도 있다. 벗어버리고 끊어버리고 싶을 때는 가슴을 짓누르기도 한다. 그렇다고 선뜻 놓아버릴 수도 없는 게 세상살이 아니던가. 돌고 돌아 끝없이 이어진다. 그러니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시로 되돌아보고 점검해야 한다. 엉키면 풀어주고 각이 서면 어루만져주는 일에 소홀할 수 없다.

거센 비바람을 막아주고 무더운 여름도 비껴가게 하는 집은 어머님의 혼이 담겨있다. 어머님을 마음에서 놓지 못함은 초가의 뿌리가 인연에 맞닿아 있어서다. 하지만 어머님이 그랬듯이 나 또한 언젠가는 물러날 때가 오리란 걸 안다. 그렇더라도 오늘, 다시 초가집에 마음을 담는다.

아침 햇살을 받아 이엉이 반짝일 때 마음에도 빛이 일어선다. 그건 어떤 희망 같기도, 굳은 의지 같기도 하다. 굵은 집줄에 새겨져 있을 세월의 궤적을 되짚어보며 인연들을 생각하는 사이, 호수가 빚어놓은 맑은 바람이 가슴에 환한 무늬를 만들고 있다.

※ 집줄 : 초가지붕을 얽어매기 위해 새(띠)를 꼬아 만든 줄(제주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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