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운스 바운스 / 윤승원

 

 

세탁기가 윙윙거리며 돌아간다. 통 속의 빨래는 철썩 물을 때리고 물은 빨래를 휘감는다. 그럴 때마다 이불은 콩콩이처럼 통통 뛴다. 쳐다보는 내 심장도 따라 콩닥거린다.

겨울 이불을 세탁하기 위해 셀프 세탁방에 들렀다. 세탁한 빨래와 함께 바운스 페이퍼를 건조기에 넣어 돌리는 중이다. 섬유 사이에 향을 덧입히고 세탁물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다. 창밖은 어느새 완연한 봄이다. 활짝 핀 벚꽃 아래로 사람들의 웃음이 여기저기 피어난다. 봄이 spring인 것은 겨울을 밀치며 저렇게 사람이며 꽃들이 힘차게 튀어 오르기 때문이 아닐까.

바운스의 여러 의미 중에서 ‘~을 튀어 오르게 하다’는 뜻이 있다. 한때 활동이 뜸했던 가수 조용필이 다시 왕년의 주목을 받았던 노래가 <바운스>다.

―그대가 돌아서면 두 눈이 마주칠까 심장이 Bounce Bounce 두근대 들릴까 봐 겁나 (…) 처음 본 순간부터 네 모습이 내 가슴 울렁이게 만들었어―.

뭔가를 시작하기 직전에 유독 심장이 두근두근 댔다. 초등학교 입학 하루 전날, 새로 산 책가방을 메고 학교 갈 생각에 설레 잠을 설쳤다. 다음 날, 예쁜 선생님과 알록달록 옷을 입은 친구들을 보자 학교생활이 신날 것 같아 가슴이 콩닥거렸다. 중학교 땐 좋아하는 영어 수업 시작 전 유난히 얼굴이 상기되었고, 시험 치는 날은 늘 심장이 두근반세근반이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소개팅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다. 약속 날 아침엔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픈 줄 몰랐다. 마음속에 찜해둔 사람에게 애프터 신청을 받았을 땐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결혼식 전날 밤은 앞날에 대한 기대로 모든 것이 핑크빛으로 보였다. 건강하고 예쁜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꼬박 밤을 새웠다. 아이를 가졌을 땐 긴가민가 싶었지만 혼자 있을 땐 괜히 입꼬리가 올라갔다.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감이 교차했다. 조금씩 불러오는 배에 가만히 손을 대면 아이는 줄탁동시처럼 툭툭 발길질을 하며 내게 신호를 보냈다.

두 아이를 출산한 기쁨도 잠시, 어느 날 돌아보니 나는 없고 애들 엄마, 아내, 며느리만 있었다. 반복되는 일상은 권태로웠고 더 이상 가슴도 뛰지 않았다. 그러다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지자 당장 생계가 걱정이었다. 생활전선에 뛰어들었고 하루하루를 살아내기도 벅찼다.

그럴 즈음, 취미 삼아 홈패션을 배웠다. 커튼과 이불이 만들어지고, 아이들 잠옷을 입히고, 하나씩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성취감에 들떴다. 잃어버렸던 두근거림이 조심씩 찾아왔다. 그래도 뭔가 허허롭고 외로워져 글쓰기를 시작했다. 덮어두었던 책을 읽고, 자료를 찾으면서 글 속에 빠져 밤을 새우는 일이 잦아졌다. 여행을 좋아하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꽃과 나무들을 사랑하면서 비로소 힘든 삶이 탈출구를 찾은 듯했다.

사십 대 후반이 되자 갑자기 심장이 마구 나대기 시작하면서 무섬증이 일었다. 뜬금없이 무슨 일인가 싶어 한의원이며 병원을 드나들었다. 알고 보니 갱년기 시작을 알리는 징후였다. 그때 이후로 생리주기가 돌아오면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었다.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힘차게 뛰는 날엔 등을 말고 누워 가슴을 꼭 끌어안았다. 그럴 때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고치 속 같은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갱년기를 겪는 동안 힘이 들었지만 다행히 큰일 없이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 모두들 힘들어하는 갱년기이지만 어쩌면 지금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삶의 그래프를 그려보면 파도치듯 격정적인 순간도 있었고 완만한 곡선도 있었다. 시든 빨래가 다시 생기를 찾는 것처럼 지나온 삶의 얼룩진 부분들을 씻어내고 싶었다. 곰팡내 나고 칙칙한 시간을 세척하고 바운스 페이퍼를 첨가해 향기로 채운다면 이후의 삶은 # 처럼 살짝 반음이 올라가리라.

중년들에게 인기 있다는 파크골프를 배우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아이들이 다 크고 난 후, 남는 시간을 뭔가 새로운 것으로 채워보고자 시작한 것이었다. 제법 거금을 들여 장비를 마련하고 가까운 그린에 나갔다. 티그라운드에 공을 올리고 시원스레 티샷을 하면 가슴에 있던 무거운 것들이 다 빠져나갔다. 요즘은 파크골프가 주는 매력 때문에 그린에 나갈 때마다 마음이 두근댄다.

퇴직 이후에는 우리 들꽃을 실컷 만날 수 있는 ‘숲해설가’에 도전하고 싶다. 그리고 평생 가보지 못한 곳으로의 여행도 즐길 것이다.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적어봐야겠다. 언제 누구와 함께할 것인지도 미리 정해 두어야지. 여행의 참맛은 준비할 때가 최고라고 하지 않던가. 생각만으로도 벌써 설렌다.

설렘의 온도를 36.7℃라고 표현한 화가의 그림전을 본 적이 있다. 정상인의 36.5℃보다 살짝 더 올라간 정도이다. 사랑의 온도는 37℃, 이별의 체온은 정상보다 낮다고 한다. 참으로 흥미로운 표현이다. 화가의 생각에 공감하면서 여러 일에 온도를 붙여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듯하다. 친한 친구를 만날 땐 몇 도, 해외에 나가 있는 아이와 전화할 땐 몇 도, 혼자 산책할 땐 몇 도. 뛰는 심장을 느끼고 싶어 매일 달리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건조가 끝났다. 이불을 꺼내자 뽀송뽀송한 촉감에 향기롭기까지 하다. 훈훈해진 바람이 코끝을 간질인다. 창밖엔 아이들이 씽씽카를 타고 한 발로 바닥을 밀며 앞으로 나아간다. 아이들 웃음소리에 골목도 덩달아 뛴다. Bounce Bounce!

<에세이문학 202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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