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수(歐陽脩, 1007년 ~ 1072년)는 중국 송나라 인종 ~ 신종 때의 정치가ㆍ시인ㆍ문학자ㆍ역사학자이다. 자는 영숙(永叔)ㆍ취옹(醉翁)ㆍ육일거사(六一居士) . 시호(諡號)는 문충(文忠)이다.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다.

 

파리 / 구양수

 

 

  파리야, 파리야, 나는 네가 세상에 태어난 것을 슬퍼한다. 벌이나 전갈의 독침도 없고 모기나 등에의 날카로운 부리도 없어,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으니 천만다행이지만 기왕이면 왜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존재가 되지 못하는가?

 

  너의 몸집이 지극히 작으니 너의 욕심도 또한 별게 아니어서, 잔에 묻은 술이나 국그릇에 남은 국물이나 쟁반에 남은 생선 비린내 정도로도 족하겠구나. 네가 바라는 것이 이처럼 지극히 적으니 먹는 것이 조금만 지나쳐도 견디기 어렵겠거늘 무엇이 그리 부족해서 종일을 두고 윙윙거리며 수고롭게 쏘다니는가. 음식을 하는 기미만 보여도 쫓아다니고 냄새만 나도 용케 찾아 이르지 않는 곳이 없구나. 삽시간에 모여드니 누가 일러주더냐. 아니면 서로 연락하는 것이냐? 비록 몸은 작지만 해가 됨은 지극히 크구나.

 

  넓고 화려한 저택, 값진 네모난 침상에 누워 있어도, 더운 바람은 불어 답답하고 여름날은 지루하여 정신은 혼미하다. 기운이 쇠하여 흐르는 땀은 장국이 되고 팔다리는 나른하여 꼼짝할 수 없고 두 눈마저 어릿어릿할 때에, 베개를 높이 베고 한잠 자려고 하는 것은 그저 잠시나마 더위를 잊고자 해서이다.

 

  그런데 내가 너희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이처럼 나를 귀찮게 구는가? 어느새 모여들어 내 머리를 더듬고 얼굴을 치며 소매 속으로 기어들고 바짓가랑이를 들쑤시고, 혹은 눈썹에 엉겨 붙고 또는 눈꺼풀 위를 기어 다니니 눈을 감고 싶어도 다시 깨게 되고 팔이 저려도 휘둘러 쫓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공자님인들 어찌 꿈속에서 주공(周公)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장자인들 어찌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날 수 있겠는가.

 

  공연히 사내종, 계집종 모두 불러 커다란 부채를 들려서 부치게 해 보지만, 어떤 놈은 머리를 떨군 채 부채질하다가 팔에 힘이 빠져 멈추고, 어떤 놈은 선 채로 졸다가 나자빠지고 마니, 이것이 파리가 해를 끼치는 것 중에서 첫 번째이다.

 

  또 고래등 같은 저택에서 뜻이 맞는 친구와 귀한 손님을 모시고서, 술을 받아오고 안주감을 장만하며 대자리를 깔아서 술자리를 마련하여 모처럼 하루의 여가를 즐기려고 할 때, 갑자기 모여드는 수많은 파리 떼들, 너희 그 많은 무리를 내가 어찌 당해 낼 수 있겠는가. 그릇과 접시에 엉겨 붙고 식탁에 진을 치고 술에 취하며 뜨거운 국물에 빠져서 목숨을 잃고 만다. 탐욕을 부리다 죽었으니 후회야 없겠지만, 탐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아서 경계를 삼을 만하구나.

 

  더군다나 파리 가운데서 머리가 붉은 놈은 사람들이 꺼려서 이름 하기를 ‘경적(景迹)'이라 하는데 이놈이 한 번 음식에 입질을 해서 더럽히기만 하면 사람들이 모두 먹으려 들지 않으니 탈이다. 그렇다고 무슨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놈들이 무리를 이끌고 벗들을 불러 모아서 대가리를 흔들며 날갯짓을 하여 모이고 흩어지기를 순식간에 하여 가고 오는 것이 끊이지 않으니, 이제 막 주인과 손님이 예를 갖추어 술을 권하고 옷매무새를 바로 하여 위엄을 갖추어야 할 마당에 나에게 팔을 휘두르게 하고 발을 구르게 하며 몸가짐을 흐트러지게 하고 낯빛이 변하게 하고 만다.

 

  이런 처지에 왕연(王衍)인들 어찌 청담(淸談)할 마음의 여유가 있겠으며, 가의(賈誼)인들 어찌 탄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파리가 해를 끼치는 것 중에서 두 번째이다.

 

  또 육장(肉醬)이나 젓갈 같은 것은 일정 기간 동안 저장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항아리 뚜껑을 단단히 봉해야 하는데, 그것은 파리가 떼로 몰려들어서 여럿이 합세해서 공격하고 온갖 방법으로 틈을 엿보기 때문이다. 커다란 편육, 살진 고기며 싱싱한 생선 같은 맛있는 것에 이르기까지 뚜껑에 틈이 생기거나 지키는 하인이 혹시 어렴풋이 졸기라도 하거나 해서 조금만 방비를 게을리하여도 번번이 쉬를 쓸어서 수없이 번식하게 한다. 고기는 물이 흘러서 썩어 문드러지고 마니, 친한 벗이 갑자기 찾아와도 환대할 것이 없게 만든다. 이리해서 음식을 지키던 어린 종들을 근심하게 하며 주인에게 꾸중을 듣게 만들고 마니, 이것이 파리가 해를 끼치는 것 중에서 세 번째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큰 피해만 든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이루 다 말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이다.

  아, <지극(止棘)의 시>* 시경에 실은 것을 보면 옛 시인의 사물에 대한 박식함과 수사에 대한 정교함을 알 만하다 하겠다. 너를 나라를 어지럽히는 간신에 비유하여 풍자한 것은 참으로 당연하다 하겠구나. 밉기도 미울시고, 파리여!

 

 

*〈지극(止棘)의 시》란 〈시경>에 나오는 청승(靑蠅)의 시를 말하는 것으로,

“윙윙거리는 쉬파리, 가시에 앉다”라는 구절 때문에 <지극의 시〉라 하였다.

지극(止棘)에서 지(止)는 머문다는 뜻이고 극(棘)은 가시나무라는 의미이다.

이 시는 주나라 유왕(幽王) 때, 참소하는 사람이 나라를 어지럽히므로

시인은 그들을 파리에 비유하여 지은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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