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으로 칠해진 벽화 / 공순해
한밤중, 느닷없이 눈이 떠졌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창밖으로 하염없이 뻗어 나가고 있는, 망망대해 같은 하늘이 보였다. 기가 막혀 멍하게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참 속절없는 순간이었다. 그때 뭔가 반짝 빛나는 것이 보였다. 별이었다. 검은 비로드 위에 놓인 다이아몬드같이 반짝 빛이 부서지고 있는 별. 찰나, 그 곁으로 금속 광채가 어둠의 복판을 가로지르며 빠르게 지나갔다. 비행기였다.
끙 돌아누우며 나는 속말로 중얼거렸다. 삼라만상이 잠든 이 밤에도 별 곁을 지나 어디론가 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단 거지, 어젯밤 잠들기 전 가졌던 생각에 답을 주려고 별과 비행기가 내 잠을 지켜보고 있었나 보았다.
과거 나는 학생들에게 입버릇처럼 꿈과 이상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던 순진한(?) 교사였다. 나쁘게 말하면 꿈을 팔아먹은 장사꾼, 아니 꿈을 빙자해 그들의 미래를 사기친 사기꾼이었다. 꿈은 아름답지만 무자비합니다. 아무것도 책임져 주지 않으니까요, 라고 좌절을 느낀 과거의 어느 학생이 항변한다면 그에 대해 책임져 줄 말이 없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애틋하지만 허망한 꿈,
그래서 어젯밤 잠들기 전 결심했었다. 꿈은 고만 팔아먹자. 이젠 책임 있는 인간이 돼야지. 한데 별과 비행기가 불과 몇 시간 전의 다짐을 그만 허물어 버리고 말았다. 모두 잠든 밤, 저들은 왜 야간 비행을 감행해야만 하는가?
하긴 꿈이 없었다면 인류사가 다시 쓰여야 했을 것이다. 전혜린은 『먼 곳에서 그리움』이란 수필에서 말했다.
“~ 그것이 헛된 일임을 안다. 그러나 동경과 기대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새해가 올 때마다 기도드린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어떤 엄청난 일, 나를 압도시키는 일, 매혹하는 일, 한마디로 기적이 일어날 것을 나는 기대하고 있다. 허망한 일인 줄 알면서도, 올해도 마찬가지다. 먼 곳으로 훌훌 떠나 버리고 깊은 갈망, 나부끼는 머리를 하고.~
먼 곳에의 그리움(fernw도). 내 영혼에 언제나 고여 있는 이 그리움의 샘을 올해는 몇 개월 아니, 몇 주일 동안만이라도 채우고 싶다.
~ 모든 플랜은 그것이 미래의 불확실한 신비에 속해있을 때만 찬란한 것은 아닐까?
~ 동경의 지속 속에서 나는 내 생애의 연소를 보고 그 불길이 타오르는 순간만으로 메워진 삶을 내년에도 설계하고 싶다.
~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는 특권이야말로 언제나 새해가 우리에게 주는 유일의 선물이 아닌가 한다. “
인간의 한계 앞에서 무릎 꿇은 이 젊은 여자의 소망은 꿈이었다. 한계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 꿈이기라도 하듯.
전혜린이 기억나자 또 하나의 젊은이, 아니 단발머리 소녀가 떠올랐다. 고교의 선배였던 그는 재학 중 『꿈으로 칠해진 벽화』라는 단편소설을 써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 작품의 마지막 대목을 나는 지금껏 기억하고 있다.
“꿈은 아기 손에 쥔 고무풍선 같아요. ~ 꿈으로 가는 길은 고달파요. 하지만 간다는 자체는 즐거운 고행이에요.”
요렇게 깜찍했던 선배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 시위처럼 바른 지조 쏜살같이 힘차게, 겨레의 소금 되세. 우리 xx 여학교.’ 6년간 부르던 학교 교가처럼 어디선가 지조를 지키며 세상의 소금이 되어 살아가고 있을까? 즐거운 고행도 잘 수행하고 있을까? 그러고 보니 육체의 체액을 지켜 주는 물질은 소금이고, 영혼의 체액을 지켜주는 활동은 꿈이다. 꿈이 없는 인간은 외틀어진 오이처럼 시들시들해 보인다. 생명 없는 벽화도 꿈이 칠 해져 있을 때 생동감을 준다.
그 나이에 아직도 꿈 타령이냐고 누군가 힐난한다면 할 말은 없다. 좀 한심하긴 하다. 하지만 되묻고 싶다. 이 나이에 꿈을 갖는 게 왜 안 되는 일이냐고. 꿈은 유통기한 없는 정신 활동이다. 숨을 거두는 순간도 꿈을 잊지 않는 게 인간 아닌가. 종교를 막론하고 사후 복을 포기할 자 어디 있겠나. 그러므로 이제로부터 나는 새로운 꿈을 꾸기로 하겠다. 소금으로 해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꿈, 하지만 나는 매사가 아직 너무 서툴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욕심에만 얽매일 뿐,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잠은 그만 하늘로 올라가 별이 돼 버리고 말았다.
아뿔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