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플 굽는 여자 / 김정미

 

 

와플을 굽는 여자의 등이 동그랗다. 그녀의 미소가 와플을 담은 봉지 속으로 쏟아진다. 그 봉지 속으로 누군가 잃어버린 희망 한 봉지도 따라 들어간다. 집 앞 마트에서 와플을 굽는 여자. 와플을 재촉하는 줄 선 손님들 앞에서도 입가의 미소를 잃지 않는다. 그런 그녀는 이 천 원짜리 와플을 굽는 게 아니라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아름답고 소중한 삶의 가치를 굽고 있는 중이다. 상처 입은 이들의 영혼을 쓰다듬어 주는 듯 봄 햇살이 반짝인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대형마트 안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는 고소하고 달달한 냄새가 가득한 와플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와플을 사려는 사람들로 가게 앞은 긴 줄이 이어졌다. 길게 늘어 선 사람들 시선이 모두 여자에게 쏠렸다. 갈색 페라도 모자를 눌러 쓴 작은 몸집의 여자는 와플 기계에 반죽을 붓고 구워진 와플을 꺼내는 동작을 반복했다. 다 구워진 와플에 여자의 부지런한 손길 따라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딸기잼이 듬뿍 발라졌다. 주문한 와플봉지를 하나 둘씩 받아 든 사람들이 총총히 마트 밖으로 사라졌다.

봄 햇살이 페라도 모자를 쓴 여자의 흰 목덜미에 남실거렸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내 차례가 오기까지 끊임없이 반복되는 여자의 부지런한 손놀림에 집중했다. 순간 한결 같이 여자 입가에 가득한 미소를 보았다. 바쁘다보면 무의식적으로 얼굴표정이 굳어질 법한대도 여자는 환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고서야 난 여자에게서 와플이 든 봉지를 받아 들었다.

“바쁜데도…. 그 미소 참 보기 좋아요.”

나는 미소 가득한 그녀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꼭 말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후회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따뜻한 미소를 지니고 살기엔 결코 녹녹치 않은 삶이라고 말한다. 얼마의 시간을 더 보내고서야 욕망에 눈먼 삶이 투명해 질 수 있을까. 니체의 말처럼 양심이라 믿고 있는 것이 실은 보편성을 잃은 자신의 또 다른 내면의 소리는 아닌지…. 지금 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소유와 무소유가 공존하는 세계. 슬픈 우리의 자화상인지 모른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세상을 향해 탁발을 나선 승려 싯다르타가 깨달은 것은 四聖渧(사성제)이다. 사성제는 글자 그대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의미한다. 고통, 집착, 소멸, 방법, 즉 苦集滅道(고집멸도)로 정리될 수 있는 네 가지 가르침이다. 우리마음에는 불가피하게 고통이 찾아온다. 그 고통의 원인은 바로‘집착’에 있다. 즉 마음의 고통은 결과이고, 집착이 고통의 원인이다. 그렇다면 마음의 집착만 사라진다면 고통이 사라질수 있을까. 소멸은 바로 우리가 말하는 ‘열반’이다.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은 다름 아닌 내 영혼의 평화를 지키는 일이다. 하지만 그 평화라는 것이 성공을 통한 삶의 안정과는 분명 다르기에 비우고 비우는 일 자체가 나에겐 고통이다. 열반은 커녕 마음을 비우는 일 또한 내게는 쉽지 않다. 와플을 사서 돌아오는 동안 그녀는 내게 깊은 생각의 숲을 거닐게 했다.

행복하고 아름답고 건감사하다는 건 자신의 삶을 존엄하게 여기는 일이다. 하루치 밥값이 와플기계에서 벌집무늬로 구워지는 동안 주말인데도 늦은 퇴근을 서두르는 젖은 발자국들. 상처 입은 날개를 터는 새처럼 이 천 원의 달달한 희망이 달처럼 구워지는 봄 밤. 그 하루가 천천히 익어가고 있다. 어디선가 달을 보며 희망을 소망하는 이들의 와플 굽는 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 난 마트에서 만난 여자처럼 고소하고 달달한 희망을 굽고 싶다. 자박자박 봄길 밟는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아카시 나무 아래 새들의 그림자가 내려앉는다. 내 서늘한 정수리에 은빛 햇살과 함께 아카시 꽃잎들이 흰밥처럼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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