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림(秘林) / 배혜경

 

도시는 여름을 향해 팔을 벌린다. 여름이 지나면 초록 잎사귀들이 울긋불긋 꽃을 피우는 두 번째 봄을 통과해 정열의 언저리마저 다 태워버릴 휴식년이 찾아올 것이다. 영원한 휴식의 시간은 근사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을 태우지 않아도 되는 상록 난대림, 울창한 그 숲으로 가고 싶어진다.

세상에 같은 길은 없다. 초행길은 멀고 힘들지만 두 번째 길은 좀 더 가깝고 수월하다. 인생행로에도 두 번째가 있다면 좀 다를까. 사흘의 휴가를 나에게 주기로 하고 비행기에 오른다.

여덟 해 전 막바지 여름에도 꼭 그랬다. 가방 하나 달랑 메고 이른 아침 제주에 내렸다. 굽이감는 해안선을 따라 애월읍을 휘휘 다니다가 가지고 간 책에서 처음 보는 이름의 숲에 이끌렸다. 수수한 마을로 들어가 아담한 운동장이 보이는 납읍초등학교를 마주하고 납읍난대림 입구에 섰던 게 엊그제 같다.

그리웠던 숲에 다다르자, 포슬포슬 내리던 빗줄기가 굵어진다. 푸른 잎 성성한 후박나무가 고색창연한 일주문인 듯 우매한 객을 반긴다. 서서히 숲의 품으로 들어간다. 두 발로 걸어서 들어가지 않는 관계란 헛것이다. 바람이 잠 깨지 않은 아침 숲에 새소리만 간간이 백색소음으로 들려온다. 참말로 명랑한 소리다. 삶도 그렇게 가벼워야 하거늘. 잠시 무춤하다 다시 발을 놓는다.

온몸의 숨구멍이 뚫리는 것 같다. 눈망울만 쳐다보며 서로 거리를 두는 동안 마음의 거리는 어찌 되었을까. 이 거리가 안녕하면 참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스크 쓴 얼굴이 낯설어 피식 웃으며 마음 한편에 몰아낼 수 없는 의심과 불안이 바이러스보다 더한 공포였던지도 모른다.

나만 아는 숲일 리야. 숲을 독차지하니 나만 알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숲에 다시 오고 싶었다. 도심 가까이에도 잘 조성된 숲이 있지만 내가 그리웠던 숲은 그런 숲이 아니다. 인위적인 것, 의무적인 것, 사회적인 것들에서 놓여나고 싶었다. 두 발로 걸어서 들어가기 어려운 미천한 관계 속에서 자주 허탈감에 허우적댔다. 대도시에서 혼자 생활하는 딸이 고심 끝에 퇴사하고 한적한 곳에서 살고 싶어 하는 것도, 예순을 바라보는 남자가 자연인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자주 시청하는 것도 비슷한 마음이지 싶다.

초록 생명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 난대림은 금산(錦山)공원이라 불리는 1만3천여 평 땅이다. 원래 빌레왓(돌무더기)이었다고 한다. 풍수지리적으로 화재가 염려되어 액막이 나무를 심고 벌목을 금해 금산(禁山)이라 부른 것이 수백 년 세월이 흘러 ‘금지 禁’은 ‘비단 錦’으로 바뀌고 울창한 숲이 되었다. 원시림이 민가와 한동네에서 동숙하다니.

우산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새소리만큼 청량하다. 물기 머금은 흙 내음과 싱그러운 나무 내음에 머리가 맑아진다. 피톤치드로 씻기며 숲을 홀로 갖는 금쪽같은 시간. 처음 보았을 때 이 시원(始元)의 숲은 마냥 안겨들고픈, 내게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었지만 이번엔 숲이 오히려 친근하게 안겨든다.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삶이 주는 의외의 선물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 세상에 진실로 소유할 수 있는 건 모두 공짜다. 순한 눈과 열린 가슴, 느린 발걸음만 지불하면 될 것을.

시간을 거슬러온 듯 신비한 숲속에 나는 들어와 있다. 짙푸른 수음(樹蔭)에 우거진 넝쿨과 마삭줄 정령의 손길이 눌어붙은 영혼의 찌꺼기를 더듬는다. 약손이 쓸고 간 듯 온화한 저릿함이 퍼진다. 초록 물 내음이 허파에 스미자, 조이고 짓눌렸던 가슴이 한껏 펴진다. 여우비였던가. 우람한 나무가 치받든 쪽으로 고개를 드니, 그늘 짙은 숲의 빼꼼한 초록 틈새로 손바닥 반만큼 빛나는 하늘이 보인다. 반짝! 생의 환희도 그렇게 눈부신 틈에 숨어 있을 것이다.

저만치 원생림이 더 가까이 오라 부른다. 올망졸망 삐죽빼죽 돌길을 밟고 안쪽으로 들어서자 더욱 짙은 상록수림이 기다린다. 이름을 다 알 수 없는 난대 식물들의 영지(靈地)로 이끌린 나는 상록활엽수림의 위용에 압도되어 가닿을 수 없이 높은 곳을 우러러본다. 한결같다는 것, 늘 푸르다는 것은 무엇을 품고 무엇을 견뎌야 함일까. 작은 풀 한 포기일 뿐인 나는 나무처럼 의연하라는 숲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다. 옷깃을 여미듯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레 나아간다.

귓전을 떠나지 않는 새소리를 따라 왼쪽으로 올라가니 현무암 돌담 안쪽으로 기와집 한 채가 보인다. 마을제를 지내는 사당, 포제청이다. 포제단 터에 이끼 낀 바위가 묵묵히 비손하고 섰다. 예로부터 납읍리 유림촌 선비들은 영험한 기운이 서린 이 숲에서 영감을 얻어 시를 짓고 마을의 풍요와 무사 안녕을 빌며 제사를 지냈다. 시작(詩作)과 제사(祭事)는 서로 닮았다. 인간만이 벌이는 기원(祈願)의 한판 굿이다.

더 깊은 수풀로 들어간다. 크고 작은 바위 위로 소담하게 앉은 세월의 이끼가 포시럽다. 숲에서는 숨길을 다 헤아릴 수 없는 풀과 초록 덩굴이 어울렁더울렁 제 몸을 허적허적 날려서 산다. 몸피가 어마어마한 난대림 나무들도 제각각의 모양새로 서로 사이를 두고 기대어 일가를 이룬다. 굽은 나무든 곧은 나무든 자신을 친친 휘감는 초록 동종(同宗)을 기꺼이 안아준다. 갖가지 처음 보는 버섯들도 나무에 기생해 목숨을 잇는다. 서로 넘보지 않고 탓하지 않으며 자기 자리에서 말 그대로 자연스러워서 보배로운 생명! 서로 어여삐 여기며 제 모습을 지킨다는 건 얼마나 올바른 일인가. 서로 불쌍히 여기며 제 모습을 지킬 수 있게 해주는 건 또 얼마나 따뜻한 일인가.

발아래에 견고한 나무뿌리가 흙을 뚫고 올라와 있다. 사방으로 뻗어 나간 힘찬 뿌리가 무언의 말을 한다. 마음의 뿌리를 잊지 말라고, 그 출발지의 마음을 잃지 말라고. 늦잠에서 깬 한 자락 바람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비림(秘林)을 적시는 바람처럼 빗물처럼 시간의 춤은 또 흐를 것이다. 품 넓은 그늘과 영롱한 빛을 동시에 보여준 숲! 제 삶의 숲으로 새로이 걸어 들어가고 있는 하얀 얼굴의 딸에게도 숲이 들려준 목소리를 전하고 싶다. 지상으로 올라온 뿌리의 전언(傳言)을 간직하며 내 마음 시원(始原)의 숲을 마법처럼 빠져나온다. 이토록 홀가분할 수가!

<에세이문학 202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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