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전하는 말 / 반숙자

 

오래간만에 농장 일을 했다고 허리에 동티가 났다. 구부리기도 힘들고 걷기도 불편해서 파스를 찾았다. 아픈 허리에 붙이려는데 고개를 비틀어도 보이지 않고 거울을 보고 애를 써도 환부에 정확하게 붙지를 않는다. 파스 두 장을 가지고 실랑이를 하다가 소파에 몸을 던진다.

요셉은 이럴 때 가장 편한 간호사였다. 내가 과수원 일로 끙끙 앓는 저녁이면 파스를 찾아들고 내 방으로 와서 어깨를 두드린다.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으면 잠옷을 들치고 허리 여기저기를 꾹꾹 누르면서 더 아파하는 곳을 찾았다. 그리고는 먼저 자그마한 손으로 환부를 살살 쓸어주고 입으로 호호 분다. 뜸을 들이는 게 귀찮아서 빨리 붙이라고 면박을 줘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꼼꼼하게 붙인 다음 또 다독였다. 그리고는 “이제 다 나았다” 하고는 자기 방으로 갔다. 그때는 파스 붙이는 일이 화수분이었다. 화장대 서랍에 파스가 떨어지지 않게 준비하는 것도 그의 배려다.

요즘 나는 그 자그마한 손이 아쉬워 많이 허둥댄다. 베란다의 화초가 제멋대로 자라서 어수선해도 만지기가 싫다. 그가 있으면 하루도리로 들여다보고 떡잎은 떼어내고 구부러지는 것은 부목을 대어 바로세워주고 목이 마르다고 하는 화초에게 물을 주었다. 그때는 화초들 잎이 윤이 났다.

화장대 서랍이 빼지지가 않는다. 첫째 칸이 둘째 칸까지 물고 꼼짝을 안 해서 연사흘을 열지 못하고 불편하게 지낸다. 망치에 드라이버에 연장을 찾아내어 오전 내내 씨름을 해도 요지부동이다. 이런 떼 요셉을 불러대면 식은 죽 먹듯이 해결해줄 텐데 …. 나의 해결사는 지금 부재 중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 스스로 다짐을 해도 손도 마음도 의욕이 없다. 손을 놓는다는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느낄 뿐이다. 그는 손이 작고 앙상했다. 일을 많이 해서 손바닥이 까슬했다. 무명지와 새끼손가락이 약간 굽어서 병이 아닌가 걱정하는 그게 유전이라고 하면서 자기는 아버지가 도망가도 손가락으로 찾을 수 있다고 장담을 했다.

병석에 있을 때다. 몸에 병이 들어도 손톱 발톱은 자란다. 어느 날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다가 갑자기 두 손을 들어 손가락을 세우고 “나한테 덤비면 잡아묵는다. 어흥” 하면서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꼭 유치원 개구쟁이 모습이다. 그런 유머는 자기 손톱이 길다는 표시다. 내가 깎아 준 대도 막무가내로 혼자 깎는 노인은 평생 동안 내가 힘들어하는 꼴을 못 보는 사람이었다. 보름 입원한 병원에서도 면회를 가면 반가워 어쩔 줄 모르다가 30분도 안 돼 얼굴이 상했다고 집에 가서 쉬라고 어여 가라 손짓하던 사람이다.

그 작은 손은 부지런하고 따뜻했다. 체온이 일정 온도여서 겨울이면 밖에 나갔다가 들어가면 제일 먼저 그의 손을 잡는 게 일이었다. 한참을 잡고 있으면 막대기 같던 내 손이 따스해졌다. 그 작은 손으로 동네 이웃분들의 경운기가 고장났다면 들이고 고갯길이고 달려가 고쳐주었다. 손의 감각이 남달리 섬세하게 손재주 많고 잠시도 노는 손이 아니었다.

과수원을 접고 은퇴한 후로는 집안의 살림을 즐겁게 도와주었다. 그릇 하나를 닦아도 반짝바짝 윤이 나고 거실 바닥에 검불 하나 떨어져 있는 것을 참지 못했다. 시력이 좋아서 내 옷소매에 지스러기가 보이면 작은 가위로 잘라냈다.

혼자 밥을 먹는다. 그의 빈자리가 싫어서 접시 하나를 올려놓는다. 그가 했던 것처럼 반찬을 더는 그릇이다. 그럴 때면 그의 손이 전하는 말이 들린다. “밥 먹을 때는 프랑스 식으로 천천히 먹어.” 노상 급하게 먹어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내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던 말이다. “층계를 내려갈 때 난간 잡고 천천히 가. 밤에 이불 차버리지 말고 자.” 밤중에 가만히 이불자락을 덮어주던 손. 거룩하거나 빛나는 손은 아닐지라도 못생기고 따스했던 그의 손이 찬란한 생애처럼 내게 오는 가을저녁. 손이 마음이라는 말을 이제야 알아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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