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허구 문제 / 나의 수필 / 목성균
명색이 수필가이면서 수필을 잘 모른다고 하면 나를 등단시켜준 월간 ‘수필문학’에 체면이 안 서는 줄 알지만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등단, 이제는 8년여 수필과 마주 대하기가 무섭습니다. 쓸수록 어려워서지요. 그래도 쓰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이런 걸 가지고 팔자소관이라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문명(文名)을 떨쳐보자는 오기도 아니면서, 수필을 모르면서 아는 척 나를 기만하면서, 마치 시지프가 산꼭대기로 바위 돌을 굴려 올리다 떨어뜨리기를 계속하듯 나는 수필쓰기를 계속합니다.
수필은 이거라고 일가견을 내세울 수는 없다하더라도 나름대로의 수필의 문학 장르적 룰은 정해 놓고 쓰기는 합니다.
나의 룰이라는 것은 다름 아닌 거짓말(허구) 안 하기입니다. 수필이 나의 이야기를 붓 가는 대로 쓰는 것이라면 당연히 솔직해야겠지요. 그런데 나는 수필을 위한 약간의 거짓말은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약간의 거짓말이 어느 정도를 이르는 말이냐? 글쎄 그게 문제입니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그리 생각합니다. 솔직히란 말은 양심에 비춰서라는 말이니까 양심에 가책을 안 느끼는 정도의 거짓말은 해도 되지 않느냐는 생각입니다. 나를 위한 거짓말이 아니고 수필을 위한 거짓말은 해도 되지 않느냐는 것이지요.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고 하실 줄 압니다. 논리 정연한 학문적인 견해가 아니라 요령부득한 사견(私見)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편의상 저의 졸작 '歲寒圖'를 예로 들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졸작 ‘세한도’ 전문을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세한도
‘휴전이 되던 해 음력 정월 초순께, 해가 설핏한 강 나루터에 아버지와 나는 서 있었다. 작은 증조부께 세배를 드리러 가는 길이었다. 강만 건너면 바로 작은댁인데, 배가 강 건너편에 있었다. 아버지가 입에 손을 나팔처럼 모아대고 강 건너에다 소리를 지르셨다.
“사공-. 강을 건너 주시오.”
아버지의 고함소리는 저녁 강바람에 산란하게 흩어졌다.
건너편 강 언덕 위에 뱃사공의 오두막집이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노랗게 삭은 햇살에 동그마니 드러난 외딴집, 지붕 위로 하얀 연기가 피어올라 저녁 강바람에 산란하게 흩어지고 있었다. 그 오두막집 삽짝 앞에 능수버드나무가 맨 몸뚱이로 비스듬하게 서 있었다. 둥치에 비해서 가지가 부실한 것으로 보아 고목인 듯싶었다. 나루터의 세월이 느껴졌다.
강심만 남기고 강은 얼어붙어 있었고, 해가 넘어가는 쪽 컴컴한 산기슭에는 적설이 쌓여서 하얗게 번쩍거렸다. 나루터의 마른 갈대는 ‘서걱서걱’ 아픈 소리를 내면서 언 몸을 회리바람에 부대끼고 있었다. 마침내 해는 서산으로 떨어지고 갈대는 더 아픈 소리를 신음처럼 질렀다.
나룻배는 건너오지 않았다. 나는 뱃사공이 나오나 하고 추워서 발을 동동거리며 사공 네 오두막집 삽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팔짱을 끼고 부동의 자세로 사공 집 삽짝 앞의 버드나무 둥치처럼 꿈쩍도 않으셨다. ‘사공-. 강 건너 주시오’ 나는 아버지가 그 소리를 한 번 더 질러 주시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버지는 두 번 다시 그 소리를 지르지 않으셨다. 그걸 아버지는 치사로 여기신 것일까.
사공은 분명히 따뜻한 방안에서 방문의 쪽 유리를 통해서 건너편 나루터에 우리 부자가 하얗게 서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도선의 효율성과 사공의 존재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나루터에 선객이 더 모일 때를 기다렸기 쉽다. 그게 사공의 도선 방침일지는 모르지만 엄동설한에 서 있는 사람에 대한 옳은 처사는 아니다. 이 점이 아버지는 못마땅하셨으리라. 힘겨운 시대를 견뎌 내신 아버지의 완강함과 사공의 존재가치 간의 이념적 대치였다.
아버지는 주루막을 지고 계셨다. 주루막 안에는 정성 들여 한지에 싼 육적(肉炙)과 술항아리에 용수를 질러서 뜬, 제주로 사용한 술이 한 병 들어있다. 작은 증조부께 올릴 세의(歲儀)다. 엄동설한 저문 강변에 세의를 지고 꿋꿋하게 서 계시던 분의 모습이 보인다.’
새해를 맞이하여 어린 아들을 데리고 집안 어른께 세배를 드리러 가는 아버지의 이미지를 수필적으로 형상화해 본 것입니다. 이 글에서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은 아버지의 꿋꿋한 모습입니다.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 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존심을 이른 속담일 터이지요. 이 속담은 양반의 쓸데없는 자존심을 풍자한 속담일 수도 있지만, 양반의 자존심이 목숨보다 소중하다는 말도 된다고 봅니다. 얼어 죽는 한이 있어도 양반이 상놈(뱃사공)에게 구차한 소리는 안 하겠다는 아버지의 높은 자존심이 이 수필의 소재입니다.
‘사공 강 건너 주시오’ 그 소리를 한 번 지른 것은 신호지만 두 번 지르면 구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 아버지의 자존심과 한 번 더 ‘사공 강 건너 주시오’ 하고 자기 앞에 간청하기를 기다린 사공의 자존심간의 대치-. 여기서 ‘사공 강 건너 주시오’를 두 번 다시 안 하고 버티신 아버지의 자존심은 내 나이만큼씩 자라왔습니다. 그 자존심이 세속적인 내 삶에 하등의 도움도 못된 건 사실이지만, 못 되다 뿐 아니라 지장을 초래했을 뿐이지만, 나는 아버지의 강성(强性) 자존심을 존경하고 내가 그 강성을 물려받은 것을 후회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 내 마음이 이 수필의 주제입니다
여기서 나의 기억에 생생한 것은 저문 강변에 아버지와 같이 서 있었는데 무척 추웠다는 것과 강 건너편에 있는 나룻배는 좀체 건너오지 않고, 강가 사공의 오두막집에서 하얗게 저녁연기가 피어올라서 강바람에 산란하게 흩어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추위에 굴함 없이 팔짱을 끼고 부동의 자세로 서서 배가 건너오기를 기다리셨습니다. 풀을 세게 먹인 두루마기 자락이 펄럭펄럭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나부끼던 생각, 이것이 기억의 전부입니다. 그 외는 기억에 없는, 그럴 것이려니 하는 상상입니다.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나이 먹으면서 그 때의 아버지 모습이 점점 선명하게 살아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는 더욱 간절하게 그 때 그 추운 강변에 서 계시던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의 반골(叛骨) 남자를 소묘(素描)해서 세한도(歲寒圖)라고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여기서 앞에 말한 분명한 사실 외의 상상은,
첫째 사공 집 삽짝 앞에 서있는 늙은 버드나무입니다. 저녁연기 피어올라서 겨울 강바람에 산란히 흩어지는 납작한 강변의 오두막집, 그 집만으로도 꿋꿋한 아버지의 모습을 부각하는 배경 묘사가 될지 모르지만, 그보다 좀 더 감동적인 문학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공 집 삽짝 앞에 늙은 버드나무 한 그루를 세워 놓았습니다. 물론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의 늙은 소나무를 모방한 것입니다. 그래야 엄동설한의 저녁 강바람에 서있는 아버지의 꿋꿋함이 돋보일 것 같아서 문인화를 그려 넣은 것이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거기 늙은 버드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짓말을 한 것은 분명히 아니지요. 실제로 세한도의 장소인 달천강의 단월 나루의 상류인 괴강 배나무여울 나루의 사공 집 앞에는 늙은 버드나무가 한 그루 서있었습니다. 강변 사공의 오두막집 앞에 버드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는 상상이 무리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리 없는 상상, 이마저도 허구라서 안 된다는 것은 수필을 문예문(文藝文)으로 설자리를 박탈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 저의 견해입니다.
즉, 이 정도의 상상은 어디까지나 상상이지 허구가 아니라는 주장이지요. 허구란 소설의 기법 상 스토리의 개연성(蓋然性)을 설정하는 작업이라고 본다면 나의 이 상상 정도는 허구가 아니라 상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아버지가 주루막을 지고 계셨느냐, 안 지고 계셨느냐 입니다. 제 기억에 의하면 아버지는 평생 등짐이라고는 져보신 적이 없는 분입니다. 다만, 6. 25 피난 시에 바랑을 지신 기억 밖에는 없습니다. 따라서 그 강변에 세의(歲儀)가 든 주루막은 안 지고 계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의도적인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내 거짓말을 독자들은 양해하여 주리라고 믿습니다. 물론 고백했을 때 말입니다. 고백하지 않으면 거짓말한 것을 아는 사람은 나뿐일 것입니다. 나는 아주 지능적인 완전 범행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파렴치한 범행입니까? 저는 이 정도의 거짓말은 오히려 독자를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아버지가 주루막을 안 지셨다면 어른께 세배 드리러 가면서 빈손으로 갔을 거냐는 것이지요. 고기 한 칼 아니면 정종 한 병이든지 무엇이건 간에 들고 갔을 것 아닙니까.
그 때 어른께 세배 드리러 가는 사람의 행색은 통상 두루마기를 입고 주루막을 졌습니다. 주루막 안에 세의가 든 것이지요. 나는 지금도 그 행색을 아름다운 우리들의 전통풍습의 일면으로 기립니다. 아버지께서 어른께 올릴 세의지물(歲儀之物)은 분명히 가져가셨을 터인데, 그걸 손에 들고 갔든 주루막에 담아 지고 갔든 그게 큰 무슨 대수냐는 말이지요.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그 시대 세배 드리러 가는 행색에 맞게 그렸다고 해서 수필의 룰을 어겼다고 경고를 받아야합니까.
주루막 건은 분명히 아버지가 안 지고 계셨으니까 상상이 아니라 허구일 것입니다만, 그러나 이 정도의 픽션은 표현과 묘사의 수단으로 볼 수 없을까요, 이 정도의 거짓말을 했다고 지탄을 받아야 한다면 구태여 수필가라는 장인 칭호가 무슨 소용이냐는 말이지요. 굳이 수필이 ‘내 이야기를 붓 가는 대로 솔직하게 쓴 글’ 이라야 한다고 고집한다면, 그것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내 손자의 일기보다 더 진솔한 글은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한도에서 주루막을 소도구로 써먹은 것을 수필의 문학적 감동을 위한 최소한의 작문 조치이지, 수필의 본질을 흐트러뜨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내 생각이 궤변이라면 나는 사실상 수필의 격에 안 맞는 수필을 쓰는, 체격에 안 맞는 구제품 옷을 입은 것처럼 쑥스러운 몰골로 수필가인 체하고 서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나는 수필이 점점 더 무섭습니다.
나의 궤변에 대한 결론은 이렇습니다. 양심에 가책이 되는 거짓말은 수필의 문학적 기교라고 말할 수 없고, 양심의 가책이 안 되는 거짓말은 수필의 문학적 기교다라는 것입니다.
예를 하나만 더 들까요. 어느 깊은 가을날 여행지에서 낙조를 보았다고 칩시다. 조락의 계절감과 여수가 어울려 감상미(感想美)를 느끼게 되는데, 거기 마지막 코스모스 꽃잎 조용히 머물러 노을에 저문다는 거짓말로 그 현장감을 살렸다고 해서 수필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나는 수필에서 양심에 가책을 받는 거짓말은 내 이야기 자체를 꾸미는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세한도의 경우 엄동설한 저문 강변에 서있는 어느 부자의 모습에 감동한 나머지 그 모습을 숫제 훔쳐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왜곡한다면 이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그렇지도 못한 주제에 그런 척하고 나를 미화하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수필가의 이름을 더럽히는 파렴치한 작태(作態)일 것입니다.
내 이야기 내 생각을 그럴 듯하게 만들어 내는 기술은 써먹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았으면서 그렇게 한 척, 그런 식견도 없으면서 그런 식자인 체하는 것, 이런 짓은 분명히 자기 양심에 가책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수필을 쓰면서 그런 유혹을 얼마나 많이 받습니까. 실제로 나는 그런 유혹에 넘어가서 사이비 수필을 쓴 적이 많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그런 파렴치한 글을 안 쓰려고 합니다만, 인간의 취약성을 어쩔 수 없이 드러내게 됩니다. 그래서 수필이 무섭습니다. 뒤늦게 무슨 시집살이인지 모릅니다.
다만 앞에 세한도를 예로 들어 말씀드린 것과 같은 정도의 거짓말은 앞으로도 계속할 것입니다. 나는 수필에서의 거짓말 허용 상한선을 그 정도에 그어 놓고 수필을 쓰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만든 룰을 고집할 것입니다. 당신의 수필 사례를 말하라고 해서 말하는 것입니다만, 외람된 말이면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문학이 추구하는 진실은 사실적 진실이 아니라 허구적 진실이랍니다. 소설이나 연극이 거짓말이지만 그것이 향하는 곳은 진실이기 때문에 우리는 감동을 합니다. 문힉에서의 허구는 기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