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님 / 반숙자

 

그날 밤 우리는 조우했다. 제주도 서귀포 리조트에 들어서서 밖을 내다보는 순간 눈앞의 공간은 확실한 두 개 세상이었다. 암흑과 광명의 세상, 암흑의 세계에 분배된 빛의 향연, 화면은 뚜렷한 색채로 분할된 구도로 다가왔다. 어떤 거대한 미술 전시실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눈앞에는 숲의 어둠, 그다음에는 은하수 불빛이 길게 띠를 이루고 반짝였다. 그 너머에는 명멸하지 않는 불빛들이 온 밤 내 켜져 있다. 드문드문 거리를 두고 조금 가깝게, 조금 더 멀리서 그 너머는 깊은 어둠, 이상한 것은 은하수를 이룬 불빛들이 기별을 보내는 듯 명멸한다. 나를 보라고, 내가 여기 있다고.

 

가슴이 굳은 줄 알았다. 기쁜 일이 있어도 설레지 않고 슬픈 일이 있어도 요동치지 않는 가슴, 사실 이렇지 않았다. 작은 바람결에도 흔들리고 빗줄기도 노래가 되는 시간이 분명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심장에 굳은살이 박혀 갔다. 아마도 사람을 잃은 후였지 싶다. 그가 떠나고부터 거실 커튼이 열리지 않았다. 환하게 쏟아져 오는 아침 햇살이 온몸을 찔러대는 고통이었고 외로움이었다. 집안 곳곳 그가 남긴 체취며 손길이며 목소리가 허공에서 맴돌아 육체만 없지 공존하는 생활이었다. 이 시기를 지나면서 스스로 담금질하는 것은 살아내기였다. 목숨에 대한 의무였다. 그러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감성이 굳어간 것을 나이 탓이려니 했다. 이런 안간힘을 지켜보던 정인이 비행기 표를 구해 섬으로 떠난 것이다.

 

신기했다. 사람에게 저마다 사연이 있듯이 불빛은 그 기척을 보내느라 바짝이는 것일 게다. 첫 밤을 불빛에 취해 뒤척였다. 왜 나는 이 밤 잠들지 못하고 두근거리는 가슴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근년에 없던 일이라 자신이 신기했다. 마치 소녀 시절로 되돌아간 것일까. 아직 가슴이 살아있다는 또 다른 희망을 보는 것 같았다. 사실 글쟁이가 감성이 목석으로 변해가면 글을 쓸 빌미를 잃고 만다. 특히 나같이 이성보다 감성이 우세인 사람은 더더욱 그렇다.

 

몇 년 전 제주도에 왔을 때도 나는 불빛에 연연했다. 그때 불빛은 사람에게서 번지는 불빛이었다. 나는 왜 불빛에 이토록 취약한 것일까. 어떤 작가는 불빛에 민감하게 감응하는 사람은 내면에 외로움의 깊은 동굴을 지녔기 때문이라 했다. 사람마다 원초적인 외로움을 타고나는데 유독 더 시린 이들이 있는 것일까. 서성이다가 눕고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앉는 뒤채임이 창밖의 기척들로 잠들 수 없는 거다, 은하를 이루고 있는 불빛들이 어찌나 간절하던지, 나의 제주여행 첫 밤은 불빛에 취해 비몽사몽 보냈다.

 

깜박 잠든 사이 창문이 희끄무레하다. 간밤에 나그네를 참 못 들게 했던 은하의 불빛들은 사라졌다. 놀랍게도 내륙인의 심금을 휘어잡던 불빛들이 사라져간 곳은 바다였다. 간밤에 암흑과 광명의 극명한 경계를 보여주던 눈앞의 세계가 바다인 줄을 비로소 보는 순간이다. 놀람이다. 바다는 고요하게 저 있을 자리에 누워 있는 것이다. 밤새도록 떠 있던 불빛들은 고기잡이배였다. 사람들이 고단한 몸을 누이고 단잠에 드는 순간에도 어부는 고깃배에서 두 눈을 크게 뜨고 고기를 잡았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쯤 만선의 깃대를 펄럭이며 어부는 귀항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사람들은 식탁에 앉아 싱싱한 것, 더 싱싱한 생물을 찾고 맛있다. 맛없다 투정을 한다. 사실은 그 생선들이 거친 파도와 싸우며 얻은 어부님들의 목숨값인데, 쉽게 값을 매기며 가짜다 진짜다 흥정을 한다.

 

지난밤이 미안했다. 거기가 험한 생존의 투쟁 판인데 낭만 객이 다시 불빛 타령을 하고 감상에 젖어 아름다움에 취했다. 사실 바다 한 자락 보지 못하고 살다 늙은 사람이 제주해협의 야간작업을 알 리 없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어부님에게 이 글을 쓰는 것은 정직하게 땀 흘려 얻은 생산품으로 많은 사람에게 보시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어서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자신도 살고 남도 살리는 일이 숭고해서다. 땀 흘려 농사를 지어 밥이 되어주는 농부님에게 보내는 믿음과 감사도 마찬가지다. 투전판에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일보다 얼마나 정직하고 숭고한가.

 

더더욱 고마운 것은 맷돌 같은 가슴이 촉촉하게 젖은 일이다. 이제 운명하고 만 것 같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의문과 애정이 불빛을 촉매로 하여 살그머니 발화하니 세상을 얻은 듯 설레인다. 그것은 아직 살아있다는 확실한 신호여서다.

 

어부님,

밤새도록 당신의 작업을 지켜보았습니다. 그 불빛은 창밖을 지켰습니다. 세상은 상생의 세계, 그대님들에게 오늘 아침 밥상머리에서 갈치 한 토막 앞에 놓고 두 손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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