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거미 내릴 무렵 광대한 저수지 건너편 외딴
함석 지붕 집
굴뚝에서 빠져나온 연기가
흩어진다
단순하고,
느리게,
고요히,
오, 저것이야!
아직 내가 살아 보지 못한 느림!
―장석주(1954∼)
우리는 ‘깊은 심심함’을 잃어가고 있다. 심심하지 않은 것이 대체 어떻단 말인가. 백수를 조롱하는 말인가. 이렇게 반문한다면 나는 심심하기는커녕 점점 바빠지는 현대의 삶이 급기야 질병처럼 느껴진다고 대답하겠다. 현대인은 모두 바빠지는 병에 걸린 자이다. 오늘 바쁜데 내일은 더 바쁘다. 동시에 여러 작업을 수행하는 멀티태스킹의 인간이어야 하고 점점 더 많은 성과를 내야 한다. 이것을 철학자 한병철은 ‘과잉주의(hyperattention)’라고 표현한 바 있다. 멍해 있거나 생각에 잠길 시간은 사치나 쓸모없는 낭비로 치부된다. 잠시 짬을 내어 오롯이 연인이나 나 자신을 돌아볼 수도 없다. 돌아보면 머물게 되고, 머물면 뒤처진다. 서둘러 뛰지 않으면 우리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낙오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사실 우리는 바쁠 뿐, 크게 슬프지는 않다. 노동의 대가로 받는 것이 있고 일이 없으면 생계가 곤란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도 슬프지 않은 우리가, 하나도 슬프지 않은 이 시를 읽고 나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땅거미를 눈에 담을 수 있는 삶. 굴뚝의 연기가 무의미하게 흩어지는 모양을 그저 바라보는 삶. 풍경에서 내 마음을 발견하는 삶. 알지만 접하지 못하는 것들이 여기에 있다. 그래서 이 시는 달려 나가는 우리의 어깨를 붙잡으며 권유한다. 이보게 친구, 숨 좀 돌리게. 아주 잠시만 심심해 보세.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