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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봄엔 풀리게
내 뼛속에 얼었던 어둠까지
풀리게 하옵소서.
온 겨우내 검은 침묵으로
추위를 견디었던 나무엔 가지마다
초록의 눈을, 그리고 땅속의
벌레들마저 눈 뜨게 하옵소서.
이제사 풀리는 하늘의 아지랑이,
골짜기마다 트이는 목청,
내 혈관을 꿰뚫고 흐르는
새 소리, 물 소리에
귀는 열리게 나팔꽃인 양,
그리고 죽음의 못물이던
이 눈엔 생기를, 가슴엔 사랑을
불 붙게 하옵소서.


―박희진(1931∼2015)


이 작품은 ‘봄’ 더하기 ‘기도’의 작품이다. 기도가 등장한대서 꼭 기독교를 떠올릴 필요는 없다. 기도는 모두의 것이고 만고의 것이다. 불교도였던 시인 한용운도 기도를 아주 잘 했다. 1926년에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에 대해서 주요한은 ‘애의 기도, 기도의 애’라고 평가한 바 있다. 한용운은 종교인이니까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방식, 즉 기도를 시적으로 행했던 것이다.

놀랍게도 기도는 문학이 된다. 무려 가장 오래된 형식 중 하나다. ‘문심조룡’ 같은 책을 보면 ‘축맹(祝盟)’이라고 해서 신에게 드리는 기도와 인간에게 하는 맹세를 합해 기도의 문학으로 설명한다. 간절히 바라고, 마음에 새기고, 미래에 맹세하는 것이 ‘기도’다. 그것은 사람의 현재와 미래를 연결한다. 사람의 불가능성을 가능성과 잇는 희망 같은 것이 기도에 담겨 있다. 그러니 우리는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도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삶을 나는 삶에서도 소설에서도 보지 못했다.

오늘은 이 봄에 어울리는 기도 한 편을 찾아왔다. 뼛속까지 가득 찼던 얼음과 어둠은 모두 가고 생기와 초록만 가득하기를 바라는 시다. 읽다 보면 몸이 근질근질 풀리고 눈이 환하게 밝아온다. 이제 봄이 왔으니 우리도 봄이어야 한다. 간절히 바란다고 이뤄질까마는 기도마저 없으면 어쩌랴. 고대로부터 내려온 기도의 역능에 기대볼 뿐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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