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매의 반란 / 조이섭

 

 

서울로 떠나는 문우님과 이별 여행길에 하회마을을 들르기로 했다.

무심코 튼 라디오에서는 택배기사님들의 시위를 보도하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늘어난 업무로 과로사가 이어지는 데 따른 대책을 촉구한다는 내용이다. 걱정 반, 격려 반이 섞인 불편한 심기를 차창 밖으로 애써 날려 보낸다.

일행이 잘 정돈된 하회별신굿탈놀이 공연장에 자리를 잡고 앉자 탈놀이 마당이 이어진다. 양반선비 마당에 이르자 이매가 턱없는 탈을 쓰고 절뚝거리며 놀이마당에 들어선다. 이매가 쓰는 탈은 현존하는 9개 탈 중에서 유일하게 턱이 없다. 턱이 없는 관계로 이매의 표정이 천변만화로 변한다. 때 묻은 무명바지저고리를 걸쳤으나 불퉁한 배 한복판에 자리한 배꼽은 세상 구경하느라 어지럽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다섯 마당으로 구성하는데 들머리에 탈놀이 마당을 정화하는 주지마당을 시작으로 백정마당, 할미 마당, 중 마당, 양반선비 마당 등이다. 탈을 쓰고 놀이마당에 나서면 평상시에는 어림도 없던 신랄한 비판과 풍자가 받아들여졌다. 탈놀이를 하는 하루만큼은 폐쇄된 공간일망정 그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양반과 선비로 통칭되는 지배 계층에게 맞설 수 있었다. 탈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소통의 매개물로 놀이패뿐만 아니라, 구경꾼에게도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탈놀이에 등장하는 이매, 할미, 백정, 초랭이, 각시와 부네는 모두 가난하고 핍박받는 하층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반촌(班村)의 그늘에서 소작을 부쳐 먹거나 담살이를 할지언정 사실은 양반들 보호하고 돌보는 존재였다. 여름에는 양반이나 선비들을 대신하여 농사를 짓고, 겨울에는 장작을 패고 군불을 지폈다.

권력자들은 그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단 하루만이라도 그들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서 스스로 조롱받는 상대가 되기로 자처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하회마을 남촌 댁, 북촌 댁에서 놀이패를 초청하고 경비를 지원했다. 그러나 탈놀이 마당을 벗어난 바깥세상에서는 양반과 선비는 민초들을 수탈과 착취의 대상으로 삼았다.

양반이나 선비는 그들이 닦고 배운 학문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로 세우고 백성을 보살펴 주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네가 잘 살고 난 다음의 일이었다. 입신양명이 우선이었고 백성의 삶을 향상시키는 치국과 평천하는 그다음 차례에나 생각해 볼 문제였다.

놀이마당에 빠져드는 가운데 탈놀이 상황과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누구 할 것 없이 탈(mask; 가면)을 쓰고 다니는 우리의 일상이 묘하게 겹쳐 보인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한국의 방역이 대체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이 세계적인 평가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수준 높은 시민의식을 첫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온 국민은 방역 지침을 준수하고 마스크 없이는 집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않았다.

그다음으로는 방역 기관과 의사, 간호사와 같은 지킴이들의 노력이 컸다. 요양원이 코호트 격리되었을 때, 멀쩡한 간호사와 요양사도 자기 가정을 뒤로 한 채 환자들이나 어르신과 함께 지내며 지킴이의 의무를 다했다. 제대로 된 방호복도 없이 자신들의 의무를 다한 119구급대원, 집밖에 한 걸음도 못 나가고 격리된 사람들에게 생필품을 조달해 준 공무원의 뒷받침이 있었다.

바이러스 상황에서 비대면으로 일 년 넘게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돌보미의 봉사와 희생이 큰 몫을 했다. 특히 택배 배달원이 아침저녁, 심지어 새벽까지 출입문 바로 앞까지 생필품을 배달해 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배달 오토바이는 비가 오고 눈이 와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노력을 생계려니 폄훼하거나 가벼이 보아서는 안 된다. 그들의 활동으로 전국의 소상공인들이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도 일반 국민들은 그 옛날 양반이나 선비들의 행태처럼 지킴이와 돌보미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배달이 조금만 지연되면 과하게 항의했다. 콜센터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했을 때는 다닥다닥 붙어 앉아 일해야 하는 직원들을 위로하기는커녕 원망하고 백안시했다.

돌보미는 무쇠로 만든 로봇이 아니다. 바이러스가 오기 전에도, 온 다음에도 그들은 우리보다 가난하고 연약한 존재였다. 그들을 어루만져 주기는커녕 갑질과 무시로 그들의 사기를 떨어뜨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희생만 강요해서는 안 될 일이다. ‘고객은 왕이다!’라는 어쭙잖은 구호를 도깨비방망이나 되는 것처럼 휘두르는 행태는 코로나 이후의 세상에서는 없어야 한다.

양반들의 횡포에 화난 민초들이 탈놀이를 끝내고 마을 어귀에 둘러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뒤풀이하는 상상을 해본다. 내일이면 다시 양반님들의 수탈과 핍박에 시달릴 신세가 가련하다고 한탄하는 초랭이의 말을 이매가 중동무이로 꺾고 나선다. 이매가 폐쇄 공간인 탈놀이 마당에서 일상의 열린 공간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자고 반란의 깃발을 흔들고 나서면 어떻게 될까. 민초의 도움 없이는 단 하루도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허약하고 무능한 양반들의 허세가 단박에 드러날 것이다.

만에 하나 돌보미들이 감염되거나 과로로 드러눕게 되는 상황이 바로 이매의 반란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의 일상 파괴는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가장만 바라보고 있는 남은 가족은 어찌 될 것인가. 어두운 곳에서 돌보미가 울고 있다면, 밝은 곳으로 데리고 나와 일으켜 세우고 돌봐 주어야 한다. 그들 역시 우리와 똑같은, 아니 우리보다 세밀한 돌봄이 필요하다. 그들이 건강해야 내가 건강하다. 마스크를 귀에 걸고 일 년 넘게 살아 보니, 마스크 벗고 살 세상에서도 부끄럽지 않게 생각을 바꾸고 나를 가꾸어야 함을 알겠다.

하회별신굿탈놀이의 마지막 순서인 양반선비 마당이 끝난다. 공연자들과 연주자들이 모두 놀이마당에 나와 손에 손을 잡고 인사를 건넨다. 구경꾼도 함께 마당에 들어서서 모두의 미래를 위해 원무를 춘다. 탈놀이 마당은 지배층과 피지배층 간의 간극이나 갈등, 대립 관계를 청산하고 화합과 상생을 위해 노력하는 마당으로 승화한다.

온 세상이 코로나바이러스로 탈이 나도 단단히 났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정초에 시작하여 정월 보름이면 섬※에다 탈을 보관하고 축제를 접지만, 코로나 탈놀이는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어서 안타깝다. 아무쪼록 물먹은 솜처럼 무겁게 처져 버린 국민이 손에 손을 맞잡고 어우렁더우렁 춤추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빈다.

이제 일행은 놀이마당에서 마스크를 쓰고 살아야 하는 열린 공간으로 나가야 한다. 바이러스가 물러간 세상에서는 홀로 울며 절뚝거리는 이매가 반란을 일으키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염원을 새기느라 가슴이 먹먹하다.

 

※ 섬: 짚으로 엮어서 만든 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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