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야기] '살 만한 땅' 소개한 조선 후기 실용서, 자연·경제에 인심까지 고려

 택지리
 

 

"터를 잡고 살 만한 땅을 고르는 조건은 지리가 최우선이고, 생리가 다음이다. 다음은 인심이고, 그다음은 산수이다. 네 가지 조건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살기 좋은 땅이 아니다."

흔히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1690~1756)의 '택리지(擇里志)'를 '조선 후기 최고의 지리서'라고 말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딱히 정확한 말도 아닙니다. '택리지'는 지리뿐 아니라 18세기 후반의 정치·역사·경제·문화·산수 등 인문과 사회 다방면으로 두루 담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택리지'의 진가를 아는 사람들은 앞서 언급한 말에서 '후기'는 빼고 '인문'을 넣어 "조선 최고의 인문 지리서"라고 해야 옳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살기 좋은 곳으로 안동 하회마을을 언급합니다. 그는 ‘지리’ ‘생리’ ‘인심’과 함께 ‘산수’를 강조합니다. 산수를 통해 성정을 가다듬을 수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살기 좋은 곳으로 안동 하회마을을 언급합니다. 그는 ‘지리’ ‘생리’ ‘인심’과 함께 ‘산수’를 강조합니다. 산수를 통해 성정을 가다듬을 수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안동시
 

이중환은 명문가 출신으로 스물넷 젊은 나이에 관직에 나가 승승장구합니다. 하지만 30대 초반 남인의 반대 당파인 노론의 탄핵을 받고 역모죄까지 쓰고야 맙니다. 모진 고문과 오랜 유배 생활 끝에 명예는 회복됐지만, 다시 정계로 돌아가지는 못하죠. 관직에 나가지 못한 양반은 경제력이 없다는 말과 다름없습니다. 이중환은 '어디서 먹고살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고민의 결과물이 바로 '택리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 관심에서 시작되었지만 이중환은 30여년 동안 전국을 다니며 살 만한 땅과 그렇지 못한 땅을 찾아냅니다. 그는 살 만한 땅의 조건으로 지리(地理)·생리(生利)·인심(人心)·산수(山水)를 제시합니다. 네 가지가 잘 어우러져야 삶을 펼칠 만한 땅이라는 것이죠. 앞선 세 가지도 중요하지만, 특히 산수를 논하는 대목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줍니다. 현대인들은 오로지 재산 가치를 따라 명당자리를 찾습니다. 한강이 보이는 강남의 아파트가 비싼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죠.

하지만 이중환은 주거지에 있어 산수가 중요한 이유로 '집값이 비싸질 것'을 꼽지 않습니다. 오히려 "산수가 없으면 성정을 가다듬을 길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죠. 산수는 "심신을 즐겁게 하고 감정을 발산하게 하는 것"으로 여기서 산수는 단순히 산과 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 자연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말입니다. 삶의 터전은 무시하고 "그냥 산수만을 취하여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말은 오늘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조언인 셈입니다.

'택리지'의 가치는 국가가 국토지리에 관한 모든 정보를 독점하던 시기에, 한 사람의 오롯한 노력으로 우리 국토의 가치를 찾아낸 데 있습니다. 그것을 기반으로 당대의 다양한 정치·경제·역사·문화 등 삶의 양식들을, 또한 이 땅의 주인인 민초들의 삶을 씨줄과 날줄처럼 엮었다는 점에서 '택리지'는 지금 읽어도 손색없는 고전(古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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