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지성을 대표하는 석학(碩學)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26일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88세.
그는 지난해 12월 22일 동아일보와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시간이 없어 절박하다. 어쩌면 내일 해를 보지 못한다”고 밝혔다. 고인은 암 투병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죽음이 목전에 와도 글을 쓰겠다”며 집필을 이어왔다.
1934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6년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했다. 1955년 서울대 문리대학보에 발표한 ‘이상론’으로 신진 문학 평론가로서 가능성을 보인 그는 1956년 한국일보에 게재한 ‘우상의 파괴’ 비평문으로 문단에 파문을 일으켰다. 1960년에는 26세의 나이로 서울신문 논설위원에 발탁됐고 이후 한국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조선일보를 거쳤다.
고인은 1967년 33세의 나이로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로 임용돼 30년 넘게 강단에 섰다. 1973년에는 잡지 ‘문학사상’과 출판사 ‘문학사상사’를 설립했고, 1977년 국내 최고 권위의 문학상 중 하나로 꼽히는 ‘이상 문학상’을 제정했다. 고인은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막식 식전행사 기획자로도 활약했다. ‘화합과 전진’이라는 주제의식과 역동성을 모두 표현해낸 명문으로 평가받는 ‘벽을 넘어서’ 구호와 개막식에 등장한 굴렁쇠 소년 기획 모두 고인의 아이디어였다.
1990년 노태우 정부에서 초대 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고인은 당시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을 설립했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는 경복궁 복원계획을 수립했다. 미술 대중화에 기여한 국립현대미술관의 ‘움직이는 미술관’ 행사를 기획하기도 했다. 또 문화예술상(1979), 체육훈장맹호장(1989), 일본문화디자인대상(1992), 대한민국녹조훈장(1992), 대한민국 예술원상(2003), 3·1문화상 예술상(2007), 자랑스러운 이화인상(2011), 소충사선문화상 특별상(2011) 등을 받았다.
이 전 장관은 동아일보와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코로나 사태 등에 대한 통찰력있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독재자를 피해선 도망갈 수 있지만 지금은 도망가면 백신도 맞을 수 없다”며 “각국 지도자들이 백신을 배급해 생명을 살려주는 신과 같은 존재로 군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포스트 코로나를 이끄는 건 주류가 아니라 보리밭처럼 밟히고 올라온 마이너리티가 될 것”이라며 “사람들의 편견을 바로잡는 역할을 지식인이 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 지식인들은 정치, 경제에 종속됐다. 정치 밖에서 정치를 객관화하는 것이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 사태로 생명가치에 대한 중요성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 국가를 판단하던 기준인 GDP(국내총생산) 수치가 환자 수, 사망자 수로 바뀌었다. 물질 가치가 ‘생명 가치’로 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고인이 말년에 가장 큰 애착을 보였던 것은 ‘생명자본주의 운동’이었다. 그가 2014년 벽두에 출간한 ‘생명이 자본이다’는 ‘생명애’와 ‘장소애’ ‘창조애’라는 세 가지 사랑을 키워드로 우리 삶을 지배하는 산업·금융자본주의 모델의 대안을 탐색하는 책이다. 유럽과 미국발 금융위기를 지켜보며 생명 자본주의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어왔다는 그는 “생산이 아닌 살아있는 번식을 모델론 한 경제, 생명과 사랑이 녹아있는 경제, 돈이 자본이 되는 시대가 아니라 생명이 자본이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예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교수, 차남 이강무 백석대 애니메이션과 교수가 있다. 고인의 장녀 이민아 목사는 2012년 위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고 장례는 5일간 문화체육관광부장으로 치러진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