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진 교수 그림
지금부터 7년 전 일이다. 외국 여행 중 이유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돼 귀국했다가 응급실에 실려 갔다. 중환자실로 옮겨져 며칠을 보내고 난 후 병실에서 한 달을 보냈다. 당시 의사 선생님이 했던 말씀이 기억난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 후 “조금만”이라는 말이 나의 삶을 바꿔놓았다. 그 조금만이란 물리적 시간은 과연 얼마의 시간이었을까?
병원에서 새벽에 깨면 창문을 지나가는 달의 경로를 종이에 기록하며 회복의 시간을 기다렸다. 무엇보다도 어둠을 밝히는 도시의 따듯한 불빛이 그리웠다. 그 불빛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과 다짐을 하곤 했다. ‘살아서 나간다면’이라는 전제는 있었지만. 그 다짐의 무게중심엔 ‘조금만의 시간’이 자리했다.
지난 19일 밀양아리랑우주천문대에서 지구를 지나가는 소행성 1994pc1(7482)을 관측했다. 지구에서 193만 km 떨어진 거리를 지나가는 소행성이었다. 그 소행성은 지구와 달의 거리보다 약 5배 떨어진 곳까지 접근했다.
병원에 있으면서, 나가면 꼭 해야지 했던 것은 아주 사소한 일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편한 신발을 신고 한강을 산책하는 일과 일요일 아침 막걸리 한 잔을 앞에 놓고 소머리국밥을 먹는 것이었다. 요즘은 소머리국밥에서 간짜장으로 바뀌었지만. 소행성이 언제 지구를 공격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상황이든지 내가 병원에서 다짐했던 생각은 변함이 없다. 나에겐 낭비할 ‘조금만의 시간’도 없다는 것을. 지구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