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화 화 / 이 은 희

 

 

화化, 옷이 벗겨지는 찰나이다. 바람에 반쯤 떨어진 껍질이 툭 떨어진다. 붉은 나상이 적나라하다. 바람결에 하늘거리는 꽃 한 줄기, 감탄이 신음처럼 배어나온다. 방금 전까지도 잔털로 무장한 껍질 안에서 잔뜩 움츠렸던 꽃봉오리, 이제 갑옷을 벗고 고운 꽃잎을 화르르 펼치리라. 껍질을 벗는 모습은 언제나 볼 수 없다. 식물도 자존심이 있어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고 상대가 누구인가를 따지리라. 개으른 사람보단 부지런한 사람, 세상일이 내 마음 같지 않아 불면증에 시달린 자, 대낮보단 사랑하는 자에게 민낯을 보여주리라.

묘시에 깨어 있어야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개양귀비가 하나둘 털북숭이 옷을 벗더니 오월의 정원을 붉게 수놓는다. 절정에 다다른 꽃송이가 피고지며, 정원 구석구석에 붉을 화끈하게 지르리라. 사람들은 꽃 한 송이를 두고 ‘요염하다’ ‘단아하다’ 한마디로 쥑인다며 온갖 상찬에 침이 마른다. 식물은 말이 없는데 인간만 무시로 흔들리는지도 모른다.

화火, 활활 타오르는 불꽃, 그리스 신전 성화를 닮았던가, 사진의 배경은 짙푸른 하늘, 새빨간 개양귀비, 드넓은 하늘을 붉은 꽃송이가 떠받치는 형상이다. 마치 하늘에 투영된 깃발 같기도 하고, 날것의 붉은 심장도 같다. 사람들은 나에게 열정이 넘친다고 말한다. 좋아 하는 일 앞에선 물 불 안 가리고, 지칠 줄 모르는 나의 심장, 그 심장도 신열이 올라 저렇게 빨갛지 않을까 싶다. 아니, 어찌 좋아 하는 일 앞에서만 신열을 앓겠는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 앞에서 끙끙거리다 심장에 종종 불꽃이 일어난다. 그 불꽃은 쉬이 사그라지지 않아 몸속 구석구석에 반점처럼 부어올라 처방약을 달고 산다. 화로 달라진 심장을 서서히 잠재우는 대상은 역시 꽃이다.

일년초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심는 식물이다. 특히 개양귀비는 모종이 어려운 품종이라 꽃씨를 가능한 여러 곳에 넉넉히 뿌려 새싹을 솎아내는 것이 낫다. 꽃이 피고지고 열매를 맺으면, 장마가 오기 전에 부지런히 씨앗을 거둬야만 한다. 개양귀비와 끈끈이대나물 꽃씨는 마치 연필로 꼭 찍은 점처럼 씨앗이 작디작다. 볕에 바짝 마른 씨방은 빗살이 살짝 건들기만 해도 씨앗은 와르르 쏱아지기 때문이다.

지인은 번거로운 일을 왜 자초하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나도 나에게 묻는다. 내 안에 체증인 불 화를 꽃 화로다 다스린다는 응답이다. 일상에서 맞닥뜨린 상심에 솟은 화를 자분자분 잠재우는 화, 내가 전념하는 일은 직장생활과 글쓰기에 덤으로 식물 가꾸기와 그 식물을 지인에게 공유하기다. 처음에는 소소한 정원 가꾸기 정도였는데, 식물이 백여 가지로 늘어나니 할 일이 정도를 넘는다. 주말의 하루는 육신을 혹사시켜야만 일이 끝난다.

못된 근성이 발동한 탓이다. 골몰무가汨沒無價 일에 빠져 몸을 사리지 않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그럴 땐 일을 저지하는 곁님이 필요하다. 그의 손애 이끌려 방으로 들어오면, 침대에 시체처럼 허릅숭이처럼 삭신이 쑤신다고 구시렁댄다. 그것도 잠시 꽃이 보이면 다시 방문턱을 넘는다. 방금 전에 행위를 잊고 꽃에 미친 듯 즐거워하는 모습은,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진풍경이리라. 피로감도 피로 나름, 즐거움에서 오는 피로를 그 누가 알랴. 즐거운 노동을 버리지 못하는 화살, 꽃化을 떠나선 살 수 없는 존재이다.

화和, 짙푸른 우암산을 병풍삼아 들여놓고 붉은 개양귀비를 즐긴다. 하늘정원은 구속이 없는 절대 자유의 시공간, 장자의 소요유逍遙遊가 따로 없다. 정원에서 유유자적도 사나흘, 꽃의 재잘거림과 식물의 묘한 생태를 혼자 보기가 아쉽다. 급기야 수백 명이 어울리는 SNS에 식물을 올려 자랑한다. 태평양처럼 넓은 오지랖을 어쩌면 좋으랴. 꽃의 향기는 백 리를 가고, 사람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고 했던가. 씨앗을 뿌려 피어난 꽃을 이웃과 무시로 나눈다. 울산의 카친에게도 꽃씨를 주었더니 그곳에서도 하늘정원 새싹이 돋는다. 내가 나눈 꽃은 그냥 꽃이 아니다. 생화학 유기적 반응에서 일어난 엔도르핀을 사방으로 마구 정화하는 중독성 강한 식물이다.

노을빛 동살을 배경으로 더덕 줄기를 사진에 담는다. 위로 타고 오르는 본능의 더덕줄기가 마치 외다리의 새처럼 보인다. 문인이 쓴 끌 속의 ‘외다리 성자’가 바람개비 등 ‘뭐뭐’ 같다는 댓글이 오른다. 식물 줄기 사진 한 장에 각자 사유가 깊어지는 시간이다. 더불어 즐거운 대화가 이어지고, 침묵하던 지인의 이야기도 바라본다.

이웃과 마음을 나누는 일은 더없는 기쁨이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은 향기로운 조화를 낳는다. 꽃化 덕분에 마음에 맞는 분들과 살뜰한 정을 나누는 기회를 만든다. 마음속 불(화火)의 화신의 아드레날린은 자연이 만든 산신의 꽃化으로 잠재우고, 그 꽃을 SNS에 공유하니 세상과 조화(和)롭다. 억지로라도 웃으면 엔도르핀이 돈다고 했던가.

‘하하하’와 비스름한 ‘화화화’를 읊조려본다. 주위를 돌아봐도 행복은 물질의 소유가 전부는 아니다. 나의 소소한 행복은 좋아하는 풀꽃과 마주하며 식물을 정성껏 키워 이웃과 즐거움을 나누는 일. 꽃에서 삶의 균형과 조화를 이룬다. 오늘도 일상에서 지친 심신을 화化를 가꾸며 다스리고 몸속 세포의 긴장을 눅잦힌다. 눈앞에 꽃의 세계, 네가 만든 소소한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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