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힘이 세다 / 권현옥

 

 

 

아직 안 자도 되는 시간이구나. 저렇게 불빛이 찬란하잖아.

거실로 나가 보았다. 앞 동의 불빛이 띄엄띄엄 살아 있다. 불이 꺼진 창은 벽이 되었지만 편해 보였고 부러웠다. 창이 살아 있는 집을 보면 반가우면서 위안이 되었다. 하루의 끝을 잠에 밀어 넣고 어제와 오늘의 선을 긋고 싶은데 배턴 터치가 순조롭지 않다. 손을 뻗어도 잠이 받아주질 않는다. 괜스레 불안한 호흡, 터덜터덜, 급기야 의욕도 없이, 그러다 앞 동의 불빛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아직 안 자도 돼.

잠이 쏜살같이 달려와 낭패를 봤던 시절은 젊었을 때다. 형편없는 체력은 잠에게 참패를 당했고 ‘코끼리나 말처럼 두세 시간만 자도 살 수 있다면 좋을 텐데.’라며 욕심을 채우지 못한 일상을 잠 때문이라며 아쉬워했다. 잠을 덜 자며 일했다는 성공한 사람을 부러워했고 잠이 모자라 힘들다 하면서도 많이 잤다고 속상해했다. 그렇게 잠에게 인생의 삼분의 일을 내어주었다.

이제 다른 불안이 생겼다. 깨어 있으려는 욕심이 아니라 억지로 자보려는 욕망이다. 자야겠다는 바람과 생체리듬 사이의 불화가 생겼다. 반복되는 생활이 지루할 수 있었어도 시간만은 새로웠는데 잠을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해졌다.

불안한 분침과 의심으로 가득 찬 시침이 흐른다. 잠은 내 몸에 들어와 의식을 밀어내지 못하고 피부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의식은 관찰자가 되어 서성인다. 잠이 오는가, 오다 마는가.

내가 살아 있어 잠을 자는 것처럼 잠도 살아 있어 나에게로 오는 생명체다. 내 육체를 지배하고 의식도 어디에 밀쳐놓고 제멋대로의 군단을 불러들여 밤새 놀고 있잖은가.

잠은 ‘온다’와 ‘오지 않는다’나 ‘사라진다’로 표현한다. 잠은 나의 러브콜에 의존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체득한 생체리듬을 우선으로 고집하고 때론 내 느낌보다 앞서 달려가 내 몸을 관리한다. 제 습성대로 있다가 침략자처럼 못되게, 때론 간호사처럼 위무하듯 다가온다.

나는 잠과의 타협이나 싸움에서 약자였다. 오지 않는 잠에 지치고 쳐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하고 거의 다가왔다가도 변심하고 달아나면 우두망찰 당하는 편이다. 결국 나와의 싸움에 휘말린다. 해자(垓字)에서 허우적거리며 주마등같이 흐르는 일상을 되새긴다. 낮에 주고받은 말이나 하지 못한 일에 대한 아쉬움이나 과잉 반응한 부끄러운 일이 둥둥 흐르고 있는 것을 본다. 이 과잉의 생각은 과식이나 약물 과다복용 같다. 이 시간은 잠으로 비우려 계획했던 빈 공간이었잖은가. 되레 잡념으로 꽉 찬다. 니체 식으로 말하면 자신을 극복하고 화해하며 진리탐구를 잘하고 쾌활하게 활동해야 잠이 잘 온다는데, 나는 아직도 오늘과 내일의 욕망으로 나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고 있나보다.

잠, 요즘 나에게 야박하게 굴고 있지만 그래도 얼마나 기막힌 장치인가. 아플 때 쉬게 하고 심란할 때 리셋시켜주고 괴로울 때 예민하게 파고들어가던 동굴에 셔터를 내려주는 잠이다. 매일 자도 지겹지도 않고 모자라고 아쉬운 것, 항상 미쁜 존재였는데 이제는 쉽게 다가와주지 않아 얄미운 손님이 돼버렸다.

체득한 생체리듬이 지쳐가나 보다. 렘(rapid-eye-movement)수면의 행복이 그리워진다. 인생의 3분의 1인 20년 이상을 잤고 나도 내 삶과의 열애가 식어간다고 슬쩍 고백했으니 잠이 도도해졌나 보다.

‘나는 잔다.’를 속삭여보고 복식호흡을 하고 샤워를 해보고 뜨거운 물을 마셔보고 내 안의 것을 달래 본다. 그래봤자 나는 환자다. 호르몬의 지휘자라고 하는 멜라토닌이 생성이 안 돼서 그렇다는 이론에 풀 죽어있다. 따로 모셔올 호르몬의 지휘자도, 망가진 단원을 뽑아 없앨 수도 없다. 자는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낮 동안 살 일에 신경 쓰라는 말을 명심해도 소용없다. 현상대로 용인하는 일만 남았다.

다시 앞 동의 불빛을 바라본다. 켜진 불빛은 멀리서 이렇게 멋져보여도 들여다보면 다 쉽지 않은 하루의 끝 때문에 불빛 아래서 눈을 뜨고 있겠지. 학생이 공부를 하든, 직장인이 컴퓨터에서 못 떠나든, 퇴근하지 않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엄마가 앉아 있든… .

책이 있는 곳으로 가본다. 고요하다. 말을 하고 싶었던 책들도 입술을 닫고 책상 위 달력도 조용히 하루를 넘긴 숫자로 앉아 있다. 돋보기안경도 컴퓨터 화면도, 하루를 넘고 있다. 거실의 소파도, 화장실의 수도꼭지도 하루의 시작을 위해 숨을 죽이고 있다.

TV나 책으로 잠과 밀당을 해볼까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그래, 안자도 되는 시간이다. 낡은 생체리듬을 인정하자. 정확한 일도 이제 그만하자. 오늘과 내일을 나누는 일도. 내일을 위해서 자야 한다는 강박도.

잠을 기다리는 것은 내가 내일을 긴장하며 기다려서인지 모른다.

점점 앞 동의 불빛이 줄어들었다. 저 사람이 잘 수 있어서 위안이 된다.

다시 눕는다. 이제야 등 밑으로 손을 슬그머니 넣는 것은 잠인가.

<에세이문학 202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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