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옥(1920∼2004)
시인들은 때로 시작 노트라는 것을 쓴다. 신작시를 발표할 때, 시를 쓸 때의 마음이라든가 작품 해설을 짧게 붙인 것을 말한다. 사실 시작 노트는 흔하지 않다. 대개의 시인들은 설명을 삼간다. 시는 시 그대로, 읽는 이의 마음으로 날아가 살아야 한다. 거기에 시인의 해설을 얹으면 시는 무거워져 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나는 세상의 모든 시작 노트를 좋아한다. 그건 마치 자기 시의 셀프 뒷담화 같다. 게다가 시인들은 시작 노트도 잘 쓴다. 산문이어도 시 같은 산문일 때가 많다. 시보다 정보도 더 많이, 명확하게 담겨 있다. 그러니 재미가 없을 수 없다.
1970년대에 나온 책을 뒤적거리다가 김상옥 시인의 이 시를 보았다. 그 곁에 시작 노트가 놓여 있었는데 시인으로서의 자부심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시를 돈으로 바꾸고도 싶지만 흔들리지 않겠다고 했다. ‘시가 어떤 보배보다 값지고, 시인이 어떤 인격보다 빛난다’고 적고 있었다.
이건 세상의 주류와는 반대되는 말이다. 돈보다 귀한 것이 있다니, 이런 주장은 잊혀진 철학이며 변방에나 떠돌 신념이다. 그러나 잊혀졌다고 해서 잊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고상한 그의 자존심, 마이너가 된 다짐을 신뢰한다. 시인은 자고 나면 주름살이 느는 세상살이에서 덜 부끄럽게 살자고 말한다. 삼 일을 못 갈 다짐이래도, 한번 따라해 볼까. 지금은 햇살이 눈부신 계절이니까.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