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고두현 시인의 ‘횡단보도’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시다. 이 작품은 걸음을 멈췄을 때, 마음이 마구 쏟아지던 어느 날을 우리에게 돌려준다. 속절없이 슬픔에 패배한 결과, 쓰러질 듯 서 있는 우리가 이 시 속에 있다. 심장을 다른 곳에 빼놓고 온 것처럼 가슴이 텅 비어버린 우리가 이 시 속에 있다.
시인의 경우에는 소중한 누군가를 남겨놓고 멀어지는 중이다. 횡단보도를 건넌다면 한 단계 더 멀어지는 느낌이 들겠다. 그래서 이곳은 넘어가기 싫은 마음과 넘어가야 하는 마음이 싸우는 격전지다. 그래서 횡단보도 흰 띠처럼 드러눕고 싶다고 시인은 썼다. 아마도 그는 되돌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초록불이 들어왔을 때 길을 건넜을 것이다. 그래도 알 수 있다. 시인의 영혼 한 자락은 그날, 그 횡단보도, 그 아스팔트 위에 남겨져 있을 것이다. 우리도 그랬으니까 이 횡단보도를 모를 수가 없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