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부겐베리아 초록 넝쿨마다 빨간 색지로 접은 나비 떼가
와르르 몰려와 꽃이 되었다. 빨갛게 물든 얼굴들은 저마다 작고
하얀 꽃을 품은 채 웃는다. 이제야 새하얀 순수를 드러내는데
나는 그 꽃그늘에 앉아 불타던 세월이 내게 있었음을 보고 있다."
우리 집은 울타리가 없다. 텅 빈 뜰에 흐드러지게 핀 부겐베리아꽃
넝쿨이 울타리를 대신한다. 트인 정원에서 계절이 가져다주는 풍요로움과
불어오는 바람이 있어 자유를 숨 쉰다.
열린 마당에서 진실한 사귐이 이루어지듯 시를 통해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이천이십일년 초여름 이희숙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희숙
주님!
쓰러지고 시련을 받을지라도
탄소가 고압 속에서 다이아몬드가 되듯이
오히려 그 자리가 도약대가 되게 하소서
고칠 수 없는 희소한 질병으로
제한된 인생을 산다고 할지라도
열린 소망을 통해
영원한 꿈을 꾸게 하소서
가진 것 없지만
이웃과 나누고 공유하며
마음을 주는 부자 되기를 원합니다
늦은 글쓰기 인생을 출발했지만
서두르지
않고 정진하여
당신의 선하심을 그대로
옮길 수 있게 하소서
자랑할 것이 없음에도
받은 것에 대해 당연히 해야 할 감사로
그 증거를 삼게 하소서
나무가 잘렸음에도 불구하고
거룩한 자손들이 그루터기로 남아
그 곳에 싹이 트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