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너무 많은 에너지와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라 나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은 주제를 다룬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 글을 쓰라고 부채질하는 감정이 없다면 어디서 그 에너지가 나오겠는가?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나 미쳐버릴 듯한 분노와 마찬가지로 숨이 멎을 듯 차오르는 경외심도 글쓰기의 발로다. 끔찍한 사건이나 엄청난 고통을 경험한 사람은 그 경험을 글로 남기고 싶은 열망에 불탄다. 다양한 감정에서 탄생한 글을 프랑스에서는 ‘크리 드 쿠어’라고 부르는데, ‘진심 어린 호소’라는 뜻이다. 윌라 캐더의 유명한 말이 있다. “작가가 되는 건 쉽다. 정맥을 그어 페이지마다 피를 쏟으면 된다.”
많은 사람이 강렬한 이야기를 갖고 있지만 그만큼 영향력 있는 작가가 되기 위한 기술은 부족하다. 작가는 글쓰기에 필요한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격렬한 내면의 목소리가 입을 연다 해도 지나치게 감상적인 언어만 쏟아내기 쉽다. 그렇다고 기술이 전부는 아니다. 기술과 함께 진실한 감정이 필요하다. 강렬한 글에는 금모래를 뿌려놓은 듯 글 전반에 반짝이는 디테일, 독자가 무릎을 치게 만드는 놀라움, 더없이 적절한 은유, 빈틈없는 자제력이 필요하다. 글의 어조와 리듬은 교향곡처럼 변화무쌍해야 한다. 최고의 글은 독자의 호흡을 바꿔놓는다.
글을 쓰려면 대담해져야 한다. 작가로 성공하길 원한다면 좀 더 나은, 좀 더 다른, 아니면 최초의 무엇을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글이 자연스럽게 펼쳐지기를 원한다. 지금 이 순간을 스승처럼 신뢰하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차근차근 주장을 전개하다가 불현듯 의식이 날아올라서 시적 감응이나 개인적인 공상의 날갯짓에 휘말릴 때가 있다. 그런 충동을 애써 막을 필요는 없다. 너무 글에만 빠져 있다 보면 ‘딴생각’은 무시해야 한다는 유혹에 빠지기 쉽지만 알고 보면 그 ‘딴생각’이 금광일 때가 많다. 진짜 딴생각은 나중에 골라내면 된다.
독자에게 우리 생각을 직접적으로 전달할 필요 없다. 독자는 터득이 빠르다. 미묘한 세부사항은 독자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고, 빈칸을 채우는 방식으로 우리 글에 관여할 여지를 만들어준다. 특히 감정적인 소재를 다룰 때는 감정 표현이 적을수록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체호프는 이렇게 썼다. “독자가 연민을 느끼게 하고 싶다면 더 냉정해져라.”
우리 작가는 때로 자폐아, 에이즈, 다르푸르사태, 성 노예 등 누구도 떠올리고 싶어 하지 않는 문제를 독자에게 환기시킨다.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라고 요구한다.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려면 독자가 우리를 믿어야 한다. 만약 독자가 두려움 때문에 책을 덮는다면, 그들은 거기서 독서를 멈출 것이다. 독자와의 관계를 잘 활용해야 그들이 듣기 어려워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
메리 파이퍼 <나의 글로 세상을 1밀리미터라도 바꿀 수 있다면>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