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릴 것만 살리기 - 버릴 것과 살릴 것의 결정
과일을 잘 고르는 사람
시장에 갔다가 과일을 사게 되었습니다. 과일이 수북히 쌓여있는 과일전에서 아내는 다른 것을
사겠다며 나더러 바구니에 과일을 골라 담으라고 했습니다.
참외와 사과 몇 개를 사는 것인데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큰 것을 고르는 게 잘 고르는 것일지, 잘 생긴 것을 골아야 잘 고르는 것일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과일이 크고 잘 생겼다 해서 맛도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과일을 고르는 첫째 조건은 맛있는 걸 고르는 것일 것입니다.
수필 쓰기도 과일 고르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일을 잘 고른다는 것은 과일을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스럽게 맵시 있게 잘 깎아낼 수도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수많은 사과 중에서 맛있는 사과를 골라내는 일은 단지 사과의 외형으로 선택하는 조건이 아닐 것입니다.
나무에 열린 사과, 햇볕을 받으며 익어가는 사과, 주인의 보살핌을 받으며 정성스레 가꾸어진 사과, 그 과정이 결과인 사과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고, 사과를 잘 고르는 사람이란 그 일련의 과정을 사과를 통해 들여다보는 안목이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니 과일을 깎아내 와도 눈썰미 있게 맛있게 깎아내 올 것이고, 그런 안목이라면 사과를 잘 깎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수필 쓰기가 사과 고르기와 같다는 것은 선택해야 할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맛보다는 예쁜 모양만을 중시하거나, 무조건 큰 것만을 고르는 것은 좋은 사과 고르기라 할 수 없는 것처럼 수필 쓰기에서도 단어 하나를 선택하더라도 쓰임에 꼭 알맞는, 표현상으로 적합한 단어를 사용하고, 꼭 필요한 말로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선행되지 못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언어들의 조잡한 잔치상이 되어 아름다운 표현인 것 같은데 정작 무슨 말이며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조차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한 예를 들어보기로 합니다.
과일을 잘 고르는 사람은 과일이 맺히기 전의 꽃향기까지도 맡아낼 수 있는 투명하고 섬세한 감각을 지닌 사람이며, 투명하고 섬세한 감각을 지닌 사람이 과일을 깎아야 먹고 싶을 만큼 모양도 나고 맛있는 과일을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여기서 바로 좋은 과일 고르기와 같은 참신한 주제 찾기에 지식과 기술이 필요합니다.
이유식 교수의 <참신한 주제 찾기를 위한 10가지 착상법>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 참신한 주제 찾기를 위한 10가지 착상법
훌륭한 수필가가 되려면 일차적으로 풍부한 인생경험과 폭넓은 독서를 통해 다양한 교양체험을 쌓아야 하는 것이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다.
그리고 이런 바탕 위에 7가지의 자질이나 능력도 소유해야 할 것이다. 상상력. 연상력. 직감력. 분석력. 추리력. 창조력. 유머 감각. 위트 정신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런 바탕과 자질이 겸비되어 있어야 다음 10가지의 착상법을 능수능란하게 운용할 수 있을 것이다.
1. 가설(假說)에 입각한 착상
가령 석굴암에서 동해를 바라보는 대불(大佛)의 모습을 보고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워 볼 수 있다.
왜 대불은 가냘픈 심성질(心性質)이 아니고 비만형의 영양질(營養質)일까?
만약 대불이 심성질이라면? 이런 가설에서 우리는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그 당시의 유행적이고 전형적인 불상의 체형이 비만형이라면 후덕하고 인자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인가?
둘째 그것을 조각한 석공의 모습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천민계급이던 석공이 빼빼하다고 가정해 보자.
그 석공이 평소 자기도 비만형이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졌다면 그 욕망이 그 조각에 반영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가설을 통해 상상과 추리를 해 나가다 보면 거기에 걸맞는 참신한 주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2. 유사(類似) 착상
자연계를 잘 살펴보면 그럴듯한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
자연계 이외에도 습관이나 사고방식이 다른 유럽의 예 또는 다른 소재에서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
가령 공작과 노고지리의 대비를 통해 인간의 어떤 특성을 유추해 낼 수도 있다.
공작은 깃털이 아름답지만 날 수도 없고, 노래도 할 줄 모르는 반면 노고지리는 깃털은 볼품이 없지만 하늘을 자유롭게 날면서 멋진 노래를 한다는 사실을 통해 사람도 신이 부여한 각자 나름의 능력의 한계와 그 장점이 있기 마련이라는 점을 유추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문명의 한 현상을 맥루한이란 학자는 '인체 확장설'로 설명하면서 <눈-망원경. 다리-비행기. 귀- 음파탐지기> 등으로 화장되었다고 했는데, 이 이야기도 결국은 유추발상에서 나온 아이디어라고 하겠다.
3. 대비(對比) 착상
세계의 4대 성인들의 공통점을 비교법을 통해 찾아보아도 흥미로운 수필적 접근이 가능할 것이고, 반대로 대조법을 통해서 찾아도 좋을 것이다. 또 아시아에서는 톱을 당기면서 나무를 자르는데 미국에서는 톱니가 반대방향으로 되어 있어서 밀어내면서 나무를 자른다는 사실과 더불어 스푼을 사용하는 데도 미국에서는 밀어내면서 떠올리는데 우리는 앞으로 당기면서 떠먹는다.
이런 차이점을 대비하여 두 나라 사람들의 사고방식의 차이점을 도출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4. 의문을 품어보는 착상
왜 예수의 제자는 12명인가에 의문을 가져볼 수도 있다.
상식적으로는 유대민족의 12지파의 대표로 한정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만약 정대표, 부대표를 두었다면 24명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또 왜 여자는 한 사람도 없을까란 의문을 품어본다면 흥미로운 수필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5. 역(逆) 사고의 착상
기존의 개념이나 가치를 정 반대로 생각해보는 착상법이다. 수필의 묘미가 역설에도 있는 만큼 이런 착상법의 훈련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가령 자가용의 편리성 때문에 요즘은 자가용 홍수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거꾸로 자가용의 불편이나 위험에 초점을 맞추면 '무 자가용 상팔자'란 수필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또 '돈이 많으면 좋다' 라는 황금만능시대의 병폐를 꼬집고 강도나 도둑의 침입에 불안해하는 걱정으로부터의 해방을 노래하는 '돈 없음의 행복'이란 글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런 역사고 방식으로 이미 '흥부 격하론'이나 '놀부 변호론'이란 수필이 나왔으며, 소크라테스의 악처를 위하여 '크산티페 변호론'이 나오기도 했다.
6. 상식을 뒤엎어서 생각해보는 착상
이는 역사고의 착상과 비슷하다 하겠는데 상식 선에서 노상 사물이나 어떤 현상을 바라다보면 신선한 착상은 절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따라서 상식을 뒤엎어서 다시 생각해보는 노력을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7. 고정관념에서 탈피해보는 착상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면 새로운 것을 창안해낼 수 없다. 가령 가을에 관한 수필을 쓴다고 하자. 고정관념에 매달리면 '슬픈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 '결실의 계절' '독서의 계절' 중에서 어느 하나를 택하기 마련이고 그러면 진부해지기 쉽다. 그러나 반대로 '기쁨과 희망의 계절'에 초점을 맞추면 오히려 참신한 착상이란 평을 받게 될 것이다.
8. 관점(觀點)을 바꾸어보는 착상
사물을 관찰할 때 정면관찰과 측면. 후면. 수직. 수평. 입체관찰이 있을 수 있듯이 어떤 소재를 택하여 합당한 주제를 도출해내기 위해서는 관점을 바꾸어서 다각적이고 다양한 관찰이 필요할 것이다.
한 우물을 계속 깊게만 파는 것이 수직적 사고라면 동시에 여러 개의 우물을 파는 것은 수평적 사고라고 하겠다. 그런 방식이 오히려 물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을 높일 수도 있다.
9.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착상
낡거나 낡았다고 생각되는 지식이나 전통사고, 사상, 민속, 풍속 등에서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도 있다. 분만시 총각의 붉은 머리댕기를 복부에 얹어놓으면 순산한다는 속신을 심리적 무통분만설과 관계가 있다고 보는 해석과도 같은 것이다.
10. 하이브리드(Hybrid)에 의한 착상
이것저것 서로 다른 이질(異質)의 것들을 서로 결합시켜 보는 사고법으로, 발상의 전환을 위해 자기가 생각 하고 있는 것에 전혀 관계가 없거나 인연이 먼 다른 것을 끌어들여 둘러 맞춰보다 떠오르는 새로운 착상을 얻는 방법이다.
이상의 내용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재료가 많다고 음식이 맛있는 것도 아니고, 재료가 좋다고 좋은 집이 지어지는 건 아닙니다.
수필이란 음식, 수필이란 집은 필요한 것만으로 맛을 내고, 집을 짓는 것입니다.
한 송이의 꽃을 보고도 보는 사람의 심정에 따라 그 꽃이 슬퍼 보이기도 하고, 기뻐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곧 수필 쓰기는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는 가를 글로 옮겨놓는 것인데 그 생각 만들기를 '착상'이란 말로 쓰고 있습니다. 글쓰기의 첫 번째는 바로 바로 이 착상입니다.
가설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그와 현실적으로 비슷한 것을 생각해 보기도 하고, 그것과 대비되는 것을 생각해 보기도 하고, 거기에 의문을 품어보기도 하고, 그것을 바꾸어 생각해 보기도 하고, 비상식적으로 생각해 보기도 하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보기도 하고, 생각하는 관점을 바꾸어 보기도 하면 아주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택할 것과 버릴 것을 생각하는 것이고, 그것이 수필을 만들어 가는 주요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단어를 떠올린다고 해도 어떤 사람은 슬픈 사랑을 떠올릴 수 있고, 그냥 아름다운 사랑만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고, 가난한 사랑, 고통스런 사랑 등 사람에 따라 자신이 체험한 사랑에 따라 사랑의 느낌도 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다 소중합니다.
그러나 그것 모두를 다 수용할 수는 없을 수 있습니다.
더러는 있어도 빼놓고 넣지 않았을 때 더 맛이 있는 음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적당히 버릴 것을 버리고 취할 것을 취하는 것, 곧 모든 것이 다 수필의 글감이 될 수 있으되, 또 다 수필의 글감이 될 수 없기도 합니다.
아무리 귀한 것도 내 것이 아니면 소용없는 것처럼 수필에서의 '살릴 것만 살리기'는 버릴 것을 버리라는 말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