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회현동에 있고/당신은 마석에 있습니다./우리는 헤어진 것이 아닙니다./당신은 성북동에 살고 있었고/나는 명륜동에 살고 있었을 때에도/우리가 헤어져 있었던 것이 아닌 것처럼./나는 이승에 있고/당신은 저승에 있어도 좋습니다./우리는 헤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나는 일본에서 대학의 학생이었고/당신은 서울에서 역시 대학의 학생이었을 때에도/우리는 헤어져 있었던 것이 아닌 것처럼.
―박남수(1918∼1994)
5월은 만남의 달이다. 우리가 만남을 기뻐하는 이유는 헤어짐이 어렵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이별이 쉬워질 줄 알았는데 아니다. 연습하면 이별을 잘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그래서 만남은 쉽게 기뻐하고, 헤어짐은 어렵게 슬퍼한다. 만남과 헤어짐 사이에 놓인 감정을 그리움이라고 부른다. 그리움은 만남과 헤어짐 사이가 멀면 멀수록 짙어진다. 그러므로 이승과 저승 사이의 그리움만큼 진한 것은 없다.
그런데 한 시인은 달리 말하고 있다. 박남수 시인은 50대의 나이에 미국 이민을 떠났다. 가게를 열었다고 했다. 손으로는 잔돈을 헤아렸어도 마음은 한국에 두고 있었음이 여기 드러난다. 시인은 일찍 세상을 떠난 시인 조지훈(1920∼1968)을 생각하면서 이 시를 썼다. 그리고 미국에서 한국으로 보낼 원고 속에 이 시를 넣었다. 그런데 사실 이 작품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보낸 시가 아니라 이승에서 저승으로 보내는 편지다.
박남수는 여기 살고 조지훈은 저기 살아도 그들은 헤어진 것이 아니었다 한다. 박남수가 일본 살고 조지훈이 서울 살았어도, 박남수가 이승 살고 조지훈이 저승 살았어도 그들은 헤어진 것이 아니었다 한다. 이런 말은 세상 사람들은 믿지 않지만 시는 믿는다. 믿을 수 있어서 시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