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오시는 것 보고 안 잘래?"
"지금 잘래. 아버지 오시면 형이 문 열어드려."
"곧 오실 것 같은데?"
"더 이상은 못 기다리겠어. 졸린단 말야."
나는 밀려오는 잠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아버지는 동네 친구분들과 오랜만에 약주를 드시러 갔고, 어머니는 가게 일 때문에 파김치가 되어 셋째와 여동생을 데리고 자고 있었다.
형이 이불을 끌어내리며, "아버지 오실 때 맛있는 거 사 오실 텐데, 그래도 자고 싶니?" 했다. 나는 손으로 형을 툭 치며 피식 웃었다.
"피, 아버지가 언제 맛있는 거 사 오신 적 있어? 헛꿈 꾸지 말고 형도 같이 자자."
그러고는 이내 잠이 들었다.
얼마 후 잠결에 가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형이, "예, 나가요!" 하면서 방문을 열고 나가자 약주를 하셔서 기분 좋은 듯한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둘째는 자니?"
"예, 조금 전까지 아버지 기다리다 방금 막 잠들었어요."
"둘째는 먹을 복이 없구나. 자, 이거 먹고 자라."
뭔지 모르지만 종이 봉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먹을 것을 사 왔다는 소리에 잠이 확 달아났지만, 잠들기 전에 뱉은 말이 있어 냉큼 일어날 수가 없었다.
"군고구마네요. 그렇지 않아도 먹고 싶었는데……."
"길 건너 할머니 가게에서 사 왔지. 그 집 군고구마가 맛있다고 소문났더라."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그날따라 형은 군고구마 몇 개에 유난히 호들갑을 떨었다. 방으로 들어온 형이 이부자리를 걷어 올리면서, 군고구마 먹고 자라, 할 줄 알았는데 도무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형은 하필이면 군고구마 봉지를 누워 있는 내 코앞에 펼쳐놓고, "앗, 뜨거워. 맛있는데!" 하면서 쩝쩝, 소리 내어 군고구마를 먹었다. 잘 익은 군고구마의 달콤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먹고 싶은 마음에 침이 고이고, 그 침을 소리 나지 않게 넘기느라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지만, 그렇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형이 깨워주기만을 기다리며 양미간에 힘을 주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일부러 으응, 하며 발로 형을 건드렸다. 그래도 반응이 없어 눈을 살짝 떴는데도 형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혼자서만 군고구마를 맛있게 먹었다. 아버지가 내 몫까지 사 왔을 테니, 설마 형 혼자서 다 먹지는 않겠지. 그래도 다 먹어치우면 나만 억울할 터였다. 먹고 싶다는 욕구와 형이 깨우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겠다는 고집이 섞여 갈팡질팡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솟아나는 침을 꼴깍꼴깍 삼키느라 목젖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
웬만하면 자려고 했지만 난데없이 배까지 고팠다. 그 시절 형과 나는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플 정도로 식욕이 왕성했다. 게다가 그날은 아버지가 외출을 하는 바람에 가게를 조금 일찍 닫고 저녁도 보통 때보다 한 시간 정도 빨리 먹었더랬다. 얼마나 군고구마가 먹고 싶은지 이제는 아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정도였다. 큰 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문 형은 양 볼까지 실룩거리면서 또 다른 군고구마의 껍질을 깠다. 설마, 혼자서 다 먹을 작정은 아니겠지? 형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벌떡 일어날 텐데, 씨이…….실눈을 뜨고 형 혼자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슬슬 심통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몸부림을 치는 척하며 발로 형의 무릎을 세게 내리쳤다. 몹시 아팠을 텐데도 형은 어, 하더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내 발을 내려놓고는 이불까지 덮어주었다. 약이 올라서 그런지 형의 쩝쩝거리며 군고구마 씹는 소리와 꿀꺽꿀꺽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조금 있자니 형이 꺼억꺼억, 트림을 하며 가슴을 두어 번 쳤다. 그러고는 목이 마른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이때다 싶어 살며시 일어나 군고구마 봉지를 펼쳐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온전한 고구마는 한 개도 없고 빈 껍질만 수북이 쌓여 있는 게 아닌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이윽고 사발에 물을 담아 방으로 들어오는 형을 보자마자 나는 머리로 형의 가슴을 들이박았다.
"씨, 형 혼자 다 먹고……."
형은 꽈당, 소리를 내며 뒤로 나뒹굴었고 물 사발은 바닥에 떨어지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이불이 물에 흠뻑 적은 것은 물론이다. 졸지에 봉변을 당한 형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야, 니가 잠잔다고 깨우지 말라고 했잖아."
그래도 성이 풀리지 않은 나는 다시 덤빌 자세로 씩씩거리며, "그래도 그렇지. 같이 먹자고 깨우지는 않고 저 혼자……." 하다 말고 눈물을 징징 흘리기 시작했다.
"잠도 안 들었으면서 왜 안 일어나? 내 뱃속에 있는 거 다 꺼내 줄까?"
"그래!"
나는 군고구마 껍질만 수북한 봉지를 형한테 던지며 화풀이를 해댔다.
그날 우리 형제는 이불이 젖어 덮지도 깔지도 못하고 한겨울 외풍 센 방에서 오들오들 떨며 잠을 자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나는 내 책상서랍에 형이 먹은 군고구마보다 더 큰 군고구마 두 개가 내 몫으로 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재미있게 읽었어요. ㅎㅎㅎ 소설같은 수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