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추’라는 음식을 아시는지? 어릴 적에 예천 외갓집에 가서 처음 먹었다. 무슨 잔치가 끝난 겨울 점심때였는데, 도토리묵을 채로 굵게 썰어 뜨끈한 멸칫국물 육수를 붓고 볶은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와 김가루와 깨소금을 얹어 숟가락으로 훌훌 떠먹는 음식이었다. 태평추는 국어사전에도 아직은 오르지 않은 말이다. 차가워진 묵을 육수에 데워 먹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이 음식은 그 이름 때문에 더 끌리고 신비롭게 여겨진다.
고향 예천에 갔다가 밤늦게 술집을 찾아 어슬렁거리며 다닌 적이 있다. 예천군청 부근이었을 것이다. 그때 어느 음식점 유리문에 ‘태평추’라는 말이 적혀 있는 걸 보고 오락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순전히 이름 때문이었다. 지금은 일반 가정에서도 자주 해 먹지 않는 그 음식의 이름을 30년이 넘어 식당에서 만났으니!
나는 태평추가 구한 궁중 음식이라는 탕평채가 변해서 생겨난 말이라고 생각한다. 탕평채는 녹두로 만든 청포묵에다가 채소와 고기를 얹어 먹는 음식이다. 탕평책을 논하는 자리에서 먹었다고 하니 균형 잡힌 민주주의가 뭔지를 아는 음식인 셈이다. 문자에 어둡던 옛사람들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탕평의 의미를 잘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탕평채를 태평추로 잘못 알아듣고 묵을 데워 먹을 때 이 이름을 줄곧 써온 것으로 보인다. 세상은 태평하지 않았으니 묵을 먹을 때만이라도 태평성대를 꿈꾸었던 것, 어떤 곳에서는 ‘묵밥’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나는 태평추가 좋다.
내가 만나본 술꾼들은 대체로 술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마시는 편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즐겨 찾는 해장국은 취향이나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서울에는 청진동 해장국, 부산에는 대구탕, 대구에는 따로국밥, 청주에는 올갱이탕, 전주에는 콩나물국밥이 유명하다. 제주도의 몸국이나 전갱이로 끓인 각재기국은 제주에 가야만 맛볼 수 있다.
통영의 시락국은 생선뼈를 고아 시래기를 넣고 끓이는데 새벽시장에서 금방 사온 회를 곁들여 먹는 게 특이하다. 강이나 시내를 끼고 있는 곳에서는 민물 어탕집이 많고, 바다를 끼고 있은 곳에서는 겨울철에 물메기탕을 파는 음식점이 많다.
매생이는 남도의 바닷가에서 겨울철에만 채취하는 녹색 해조류의 하나다. 식초를 쳐서 무쳐 먹는 파래나 감태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것들보다 굵기가 훨씬 가늘다. 국을 끓이면 끈적끈적해지는데 숟가락으로 후룩후룩 소리 내며 떠먹을 수 있을 정도로 걸쭉해진다.
전남 강진의 백련사에 갔다가 매생이국을 처음 만났다. 입에 넣고 고기처럼 씹을 수 있는 건더기도 아니고, 맑은 국물도 아닌 푸른 것이 그릇에 가득 담겨 있었다.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술을 마신 터라, 나는 이게 도대체 뭔가 싶어 그냥 한 숟가락 떠먹었다. 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남도의 싱그러운 냄새가, 그 바닷가의 바람이, 그 물결 소리가 거기에 다 담겨 있었던 거다. 싱싱한 굴과 함께 끓인,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린 뜨거운 매생이국이 삼삼해지는 계절이다.
우리 어머니는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분이다. 그렇지만 군대에 간 외삼촌에게 편지를 쓸 때는 꼭 내게 받아쓰라고 시키셨다. 나는 방바닥에 엎드려 어머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을 편지지에 또박또박 받아 적었다. 그사이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어룽거렸다. 어머니가 볼펜을 들고 편지를 썼다면 아마 목이 메어 두 문장을 쓰기 힘들었을 것이다.
김용택 시인의 어머니는 아들이 감동적인 시를 한창 발표할 때 글을 읽지 못하셨다고 한다. 여든을 훨씬 넘긴 최근에야 문장을 쓰는 법을 제대로 익혔다. 연세 드신 어머니가 쓰는 몇 줄의 글이 아들의 눈에는 전부 놀라운 시로 보인다고 한다.
문맹자가 많던 시절에는 면사무소 부근쯤에 대서소라는 게 있었다. 각종 행정 서식을 대신 써주는 곳이었다. 그 시절에는 기자나 작가처럼 글을 잘 쓰는 명문장가가 따로 있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누구나 글을 읽고 쓰는 글쓰기의 대중화 시대가 온 것이다. 세상의 지식과 지혜를 하나로 통합하고 갈무리하는 행위가 글쓰기라면 이제는 글쓰기로 인생을 승부할 준비를 해야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전문적인 글쓰기 작가가 될 필요는 없다. 글쓰기는 자신의 글로 독자라는 타인을 물들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문학적인 글이든 실용적인 글이든 마찬가지다. 그걸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 당장 휴대폰으로 문자메시지 보내는 일 하나도 허투루 해서는 안 된다. 그것도 소중한 글쓰기의 하나다.